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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리산팡팡 Sep 12. 2024

방학, 보호자, 노동시장

여름방학 4주, 겨울방학 4주. 

교사가 딱 미치기 직전에 시작되는 방학. 이제 엄마가 미칠 차례이다. 


방학을 맞이하는 엄마의 자세는 다분히 비장하다. 혼자 있을 시간이 부족할 것이 예상되니 밀린 브런치 약속을 서둘러 마무리 하고 방학 특강과 아이의 4주간의 스케줄을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완성해야 한다. 어디 한달 살이라도 가고자 하는데 극극극 성수기이다. 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떠나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 겨울방학을 기약해야 할 판이다. 그때는 꼭 미리미리 알아 봐야지 다짐해 본다. 


방학이 되면 특히 가슴이 답답해 지는 사람들이 있다. 직장맘들이다. 제일 걱정되는 부분은 아이의 점심이다. 아침에 점심밥 까지 식탁에 차려놓고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으라고 하기도 하고, 냉동식품을 에어프라이기에 돌려서 먹는 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른 출근일 경우는 아침부터 아이가 밥을 돌려 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두 끼를 차가운 밥을 먹을 아이를 생각하니 속상하다. 야무지게 스스로 잘 챙겨 먹으면 좋으련만 어린 아이의 손이 야무져 봤자 8살이다. 제대로 안 먹고 식탁에 그대로 두는 날도 많고, 학원 간다고 나가서 군것질로 떼우기도 한다. 아이의 건강과 성장에 대한 염려를 넘어서 점심밥이 그야말로 직장맘에게는 스트레스이다. 초등학교 2학년 까지는 돌봄교실을 이용할 수 있어서 그나마 돌봄을 가고 급식을 먹고 올 수 있다니 어떻게든 돌봄교실을 보내야 겠다고 생각하는데, 추첨이기도 하고 1학년은 보호자 동반 입퇴실이 가능하기에 픽드랍을 해줄 보호자가 반드시 필요하다.(앞으로 늘봄학교가 점차 확대된다고 하니 기대해 본다.)


여기서 보호자의 역할과 한계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겠다고 마음먹고 생각하는 보호자의 모습은 그간 생각했던 바와는 다른 견해를 갖게 한다. 올 해 여름은 전국이 폭염과 지엽적인 폭우로 힘든 시간이었다. 전국이 한 낮 온도 35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여름의 한 복판에 아들내미들은 오전부터 곤충을 잡겠다고 나가겠다고 한다. 나가는 순간부터 숨이 턱턱 막히고 짜증이 밀려온다. 목에 닿는 머리카락마져 신경질을 잔뜩 나게 하는데,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잠자리, 매미, 방아깨비 같은 여름에 만나는 신선한 곤충들을 채집하는 데 집중한다. 이러다가 애들 잡겠다 싶어서 시원한 얼음물을 중간중간 먹이며서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자기들도 너무 더우니까 물을 달라고 하기도 하고, 목에 차는 시원한 냉밴드를 꼭 차고 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무방비로 잠자리채와 채집통만 들고 얼굴이 시뻘개 져서 혼자 돌아다니는 아이들도 은근히 보인다. 부모 마음에 쟤는 괜찮나 싶어서 둘러 보면 물 한통 안 가지고 다니는 애들도 있다. 


'쟤는 엄마가 지금 집에 없나?' '그냥 저렇게 애를 내보낸 건가...' '부모는 애가 나온 걸 모르는 거겠지.' 싶어서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쉰다.


곤충 잡는 애들은 모두 한 마음이기에 누군가 한명이라도 "잠자리 잡았다."라고 큰 소리를 치면 다들 몰려 온다. 고추 잠자리를 잡았다는 아이, 저 쪽으로 가면 잠자리가 짝짓기를 많이 하고 있다는 아이. 자신들의 채집 무용담을 늘어 놓기 일수이다. 때 마침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시뻘건 아이에게 슬쩍 묻는다. 



"혼자 나왔어?" 

"네."  

"물 있니?"

"아니요."

"한 모금 줄까?"

"아. 아니요. 그게..."

"입 안 데고 마실래?" 

"네."

"더운데 조금만 있다가 얼른 집에 들어가." 


십중팔구 시원한 물을 달라고 한다. 지들도 더워 죽겠는 거다.  헤어질 때는 걱정되는 마음에 아이스 냉매든 물이든 하나 주고 오기도 한다. 곤충 채집 유니온 친구들은 대부분 고맙다며 받는다. 


부모와 보호자는 조금 다른 맥락이다. 물론 대부분의 부모가 아이의 보호자가 되겠지만, 아이들을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보호자일 것이다. 폭염에 물 한통 안 들고 나가게 한 부모는 과연 보호자의 역할을 한 것일까? (물론 아이가 말을 해도 안 들었을 수도 있다.) 아이가 어릴 수록 보호자의 역할이 크고 커갈수록 줄어든다. 아이가 나이에 맞게 성장하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스스로의 판단도 명확해 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이가 몇 살까지 일까? 그럼 반대로 언제까지 부모가 보호자의 역할을 하면 될까?



한국 사회는 아이를 키우기에 어찌보면 엄청 편리한 곳이라는 생각이다. 보호자가 해야하는 많은 역할과 인프라를 자본으로 살 수 있는 곳이다. 돌봄교실 픽드랍을 태권도 선생님에게 맡길 수 있는 곳, 아이의 점심 식사 상차림을 포함한 비는 시간을 돌봄선생님(혹자는 이모님이라고도 많이 부른다.)에게 요청할 수 있는 곳, 어플로 시간 맞추어 아이의 식사를 배달 시켜 줄 수 있는 곳, 많은 교과를 집으로 찾아오는 방문수업으로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방학이 되어 한참 아이의 점심밥 때문에 식사관련 컨텐츠를 검색하다 보니 이 죽일놈의 알고리즘은 아이의 도시락, 피크닉 박스, 점심식사, 밀프랩 등의 이름으로 수 많은 정보를 보여준다. 그런데 보다보니 '미국 엄마의 런치박스' '캐나다 엄마의 도시락' 이런 영상이 많이 올라 온다. 미국 아이들에게도 인기있는 삼각김밥이라면서 아이들이 한번 먹어보면 또 언제 싸올거냐고 아우성이라는 멘트가 달려 있다. 실제로 아직도 미국 등의 나라에서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지 않고 런치박스를 매일 싸서 다니고, 주마다 다르지만 12살까지는 등하교를 보호자가 반드시 해줘야 하며 3시간 이상 아이혼자 두면 안되는 곳들이 많다. 물론 미국도 우리나라의 시터인인 내니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고 애프터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을 좀 더 오래두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보호자가 해야 하는 역할은 분명히 많고 오랜 기간 해야한다. 어떻게 그 나라 부모들은 이게 가능한 걸까?


우선 부모가 직업을 유연하게 가지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한시적으로 외벌이를 하거나 한명은 반나절 근무를 하기도 하고 재택근무를 하는 등의 경우이다. 이는 유연한 노동환경과 외벌이 수준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임금수준이 수반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육아휴직 중인 상황에서 아이를 온전히 돌볼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한 마음이 크지만, 무급 휴직으로 급여가 없어지니 생활이 여간 빡빡한게 아니다. 반대로 사교육 시장이 활발한 한국에서 학원비는 엄청나고 안 가르치고 싶은데 아이가 배우고 싶어하는 것들이 많다. 공부는 차치하고 미술, 체육, 음악을 비롯하여 세상에는 재미있는 할 것들이 넘쳐나고 이런 배움은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는 데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려서 경험했던 많은 활동들이 지금의 나의 여가와 관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이런 저런 이유로 아이가 커 갈 수록 지출은 늘어나고 경제적 공백이 커갈수록 마음의 여유는 줄어들고 있다. 


인구 절벽에 맞닿아 있는 저출산 국가에서 출산율 증가를 고민해 보았을 때 노동시장의 변화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임금과 물가의 수준이 맞추어 져야 한다. 임금의 상향화는 업무 시간의 변화, 업무 행태의 변화 등을 분명히 가져올 것이다. 주6일 근무를 했던 시절을 지나 2주에 한번 있던 놀토(학교를 가지 않는 토요일)를 거쳐 지금의 주5일제가 자리를 잡았다.  주4일제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전업주부를 선택하며 커리어를 포기 하지 않고 유연한 근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다면 자녀 양육에서도 보다 보호자 역할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임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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