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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경석 Aug 07. 2019

스포츠가 싫은 사람들을 위한 대변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고독함에 대하여

수년에 한 번씩은 ‘거참, 겁나게 외롭구먼’하고 느껴지는 시기가 있는데, 요즘이 바로 그런 시기다. 이렇게 적고 나면 ‘흐음 억센 시련이라도 겪은 건가’하며 걱정 어린 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다름 아닌 월드컵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고 적적히 할 게 없어지니 자연스레 좋아하는 치킨집에 가게 됐다. 맥주의 청량함과 치킨이 지닌 바삭함의 중화가 초여름 저녁에 분위기를 달게 만끽하도록 돕고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이 고즈넉함이 깨져버리는 데에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어느 국가와 맞붙는지도 모르는 월드컵 경기에서 한 선수가 골을 넣었기 때문이다(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모른다). 치킨집 내부는 일순간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피차 파워레인저를 마주한 유치원생 서른 명에게 둘러싸이기라도 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되자 구석 자리에 앉아있던 나와 (마찬가지로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동기는, 동해 바다에 간헐적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우오오오! 하는 그 소리에 지쳐 비(非)월드컵존이라도 구비해달라고 간곡히 애원하고 싶었다.


허겁지겁 치킨을 먹어치우고 그곳을 빠져오면 끝날 줄 알았는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월드컵에 대한 향연은 집에서도 계속된다. 텔레비전을 켜니 몇몇 방송사는 결방까지 하며 경기 생중계를 펼치고 있었다. 단체 메신저와 SNS에는 시답잖은 월드컵 얘기와 유머들로 가득 찼다. 나는 마치 타임머신 시간을 잘못 조정해 18세기 한양에 떨어진 과학자라도 된 듯한 심정이었다.


이런 나날들이 이어지는 요즘. 이렇게 나 홀로 아무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있으면 상대적 고독감이 한층 두터워진다. 뭐 그렇다고 스무 살 영화학도의 고독감을 걱정한 국제축구연맹(FIFA)이, 수십여 년간 이어져 온 전통적인 글로벌 행사를 끝내줄 리가 만무하다.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라도 들어가 ‘스포츠가 즐겁지 않은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해달라!’라는 청원서라도 올려볼까 3.8초 정도 생각해보게 된다. 이뤄지지 않을 상대를 바라보는 발라드 노래 속 주인공이라든가, 홀로 스푸트니크호에 오른 웅견(雄犬) 라이카라도 헤아릴 수 있을 지경이다.


이런 지경에 당도하니, 4년마다 비(非) 스포츠 소수자들을 악랄하게 괴롭히는 월드컵이 어쩌다 유래됐을지 생각해봤다. 꽤 오랜 상념에 둘러싸였는데, 아무래도 월드컵은 인터넷이라는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 출현하기 이전, 줄곧 실시간 검색어에서 볼 수 있는 디△패치의 역할이 아니었나 싶다.


월드컵이 창설된 것은 1930년도의 일이다.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1차 세계대전의 풍파를 간신히 넘기고, 위태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지구인들의 심경이 고요한 호수 같았을 리 만무하다. 그중 우루과이는 1차 세계대전에 중립을 굳게 지키며 안정적인 정세를 보였는데, 거대한 자연재해처럼 휘몰아친 대공황을 막아낼 여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대공황 이후. 세계적인 축산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직업을 잃은 우루과이 아버지들은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기르던 가축들을 헐값에 처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많은 우루과이 어린이들은 “으아앙, 우리 피터를 데려가지 말아요오오.”하는 울부짖음이 남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자식의 울음 앞에서 눈이 핑 돌아버린 우루과이 아버지들은 “얼른 이 지긋지긋한 대공황을 끝내고 일자리를 내놓아라!”라는 광화문 촛불 시위에 버금가는 자태로 몬테비데오를 가득 메꿨다. 지도자는 장관들을 긴급히 소집했다.


“참, 이거 곤란한 상황이구만.” 지도자가 말했다.

“저… 지도자님 이건 어떻습니까? 국제적인 축구 대회를 열어 보는 겁니다.”

“장관,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인가? 대공황에 축구는 무슨 축구!”

그 말에 다른 장관들이 모두 키득키득, 거리기 시작했다.

“생각해보십시오. 몸도 마음도 헬숙해져 있는 요즘. 대중들이 돈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게 축구입니다. 축구!”

“흐음”

“국제적인 축구 경기를 개최한다면, 태클 타이밍을 두 번이나 놓쳐버린 선수 얘기나 한가득하며, 대공황이나 정치 대한 생각은 달나라에 뒤편으로 던져버릴 것이다, 이 말입니다.”

“오호,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일세.”

웃음소리는 점점 잠적하더니, 수군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지도자는 얘기했다.

“당장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줄리메(각주―FIFA의 3대 회장이자, 월드컵 창시자)를 불러오게!”


그렇게 국제적인 축구 경기. 월드컵이 태어났다. 이는 매우 효과적이었고, 연예인 스캔들 기사를 띄워 다른 사건을 무마시키는 디△패치의 기초적인 토대를 다져 놓았다. 이후 타 국가의 정치가들 또한 자국에서 경기를 펼치겠다며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보냈고, 4년마다 세계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덥히는 국제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라는 게 내 추측입니다. 하하. 솔직히 말하지만, 이제 곧 열리게 될 부천국제영화제나 저번 달에 개최됐던 미스코리아 경연 대회가 스물일곱 배쯤은 더 흥미롭다. 이쯤 되면 월드컵에 감흥 하지 않는 우리―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해 주시길. 우리가 그런 같잖은 술수에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매우 큰 오산이니까. 허허허.


  ―Epilogue

불현듯 무언가 떠오른 지도자가 말했다.

“그런데 장관, 혹시 축구를 싫어하는 작자들이 깨나 있으면 어떡하나?”

“지도자님. 그런 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 생각이 있습니다.”

“계획을 좀 얘기해주게! 축구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영화학도가 어딘가에는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건 굉장히 쉬운 문제입니다. 축구 대신 다른 장르를 대입시키면 됩니다! 이를 테면 국제적인 영화 대회를 만들거나, 어여쁜 여인들을 가득 모아 두고 으뜸의 미인을 선별해내는 대회는 어떻습니까? 대회 이름은 음… 무슨 무슨 영화제나, 미스 우루과이 정도면 어떨까요?”

“과연 대단하군! 당신은 역시 천재야! 내가 영화학도라도 별 수 없겠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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