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소설 「박씨전」 비평
* 외부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작품에 대한 개인적 해석만으로 완성한 글입니다.
「박씨전」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박씨, 이득춘(상공), 이시백이다. 이득춘은 바둑두기와 옥저불기에서 재주가 월등하고 자신을 선관이라 소개하는 박처사를 보고, 박처사의 딸 박씨를 자신의 아들 이시백과 혼인시키는 것을 허락한다. 이후 이득춘은 박씨를 계속해서 총애하고 그 능력을 인정하나, 박씨의 흉측한 용 때문에 이시백을 비롯한 집안 사람들은 그녀를 박대한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비범한 예지 능력으로 상공과 이시백을 돕던 박씨는, 때가 되자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본래의 자태를 드러낸다. 후에 박씨가 추한 허물을 쓰고 있었던 것이 이시백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시백이 급제하고 박씨와의 관계도 원만해진 후, 호국이 총마가달의 난을 만나 병사를 요청하자 임경업과 이시백이 나서 호국을 구원한다. 그러나 호국은 이후 조선 장안에 있는 신인(박씨)을 없앨 계획을 짜기도 하며, 이후에는 조선에 쳐들어와 화친 언약을 받아내기까지 한다. 박씨는 이를 미리 예측해 우상에게 간언했지만, 간신 김자점의 계략으로 국난을 막는 데 실패한다. 이후 시비 계화와 박씨는 율대를 죽이고 용골대에게서도 승리하며 조선의 왕대비를 지켜냈다. 박씨는 이전의 공을 모두 인정받아 절충부인에 봉해지고, 이시백과 자녀를 낳아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
소설에서 박씨는 어질고 이해심 많은 여성이나 스스로를 현명하게 지켜내는 여성이기도 하다. 추한 용모 때문에 이시백에게 박대받을 때에도 그녀는 “저의 불민함이라 어찌 군자를 원망하오리까.”라고 말하며 관용적인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과거길을 떠나는 이시백을 돕기 위해 계화를 보냈을 때 “요망한 계집”이라는 말을 듣고서도 그가 장원급제하도록 도와준다. 또한 박씨는 허물을 벗은 후 이시백이 자신에게 사죄하자 이를 용서해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냥 관용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은 아니었다. 앞서 박씨의 관용적인 태도라고 언급한 대목 또한 박씨가 득춘에게 후원에 협실을 창건하여 달라고 부탁한 후 관용을 베푼 것이므로, 자신의 고난을 득춘에게 알리기 위한 박씨의 전략이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또한 박씨는 득춘의 조복을 만들 때 봉황과 청학을 아름답게 수놓음으로써 자신의 재주를 증명하며, 동시에 비유를 통해 상에게 독수공방하는 자신의 처지를 드러냄으로써 매일 서 말 녹을 받아낸다. 이후 허물을 벗은 후 시백이 미색만 생각하며 자신을 박대한 것에 대해 꾸짖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집안의 박대에 대한 박씨의 조용한 항의라고 볼 수 있으며, 박씨의 현명함과 전략적 태도를 보여 준다.
이처럼 박씨는 자기의 자리에서 가정을 보조하는 역할을 다하면서도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에 맞선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재능이 많은 박씨가 여성인 것을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대사가 자주 등장한다. 득춘은 박씨에게 “슬프다. 너는 진실로 영웅호걸이다. 남자로 되었던들 무슨 근심이 있으리오.”라며 박씨가 여자임을 안타까워한다. 상은 박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만일 박부인이 남자 되었다면 어찌 호적을 두려워하리오.”라고 말한다. 이는 아무리 비범한 박씨라도 여성으로서 한계를 갖기도, 핍박받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와 관련하여, 박씨는 허물이 벗겨진 후에야 이시백과의 관계를 극복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환대를 받고, (이득춘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비범한 능력을 더욱 잘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는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는 풍조를 비판한 것으로도 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외모를 드러낸 후로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됨으로써 여성 외모의 중요성을 부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여성으로서 박씨는 사회적으로 억압받기도 한다.
또한, 아무리 박씨가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일부 극복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신선의 딸이었으며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특출나고도 특수한 허구의 여인인 박씨를 치켜세우는 것만으로는 현실의 부당한 여성 차별을 온전히 비판하지 못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소설은 이러한 비판마저도 예상한 듯하다. 마지막에 호장들이 박씨에게 하직한 후 장안 물색을 거두어 잡아가는 장면에서, 잡혀가는 부인들은 박씨를 향해 슬프게 울며, “슬프다, 박부인은 무슨 복으로 이러하고, 우리는 이제 가면 생사를 모를지라.”라고 말한다. 소설의 허구적 상상을 통해 비범한 박씨가 무능한 남성들을 이기고 나라로부터 상을 받는 이야기를 그려내기는 했지만, 그처럼 비범한 능력을 가지지 못한 다른 여인들, 즉 현실의 대부분의 여인들이 여전히 쉽게 교환될 수 있는 집안의 재산으로 취급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이 당대 여성 보편의 설움을 대변할 수 있었으리라고 추측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소설의 제목이 ‘박씨전(박씨부인전)’인 것은 당대 여성의 이름을 표기하지 않았던 여성차별의 잔재라고도 볼 수 있으나, 더욱 폭넓은 다수의 여성들을 위로하고 대변하기 위해 이름을 특정하지 않았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덧붙여서, 박씨만이 아니라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여성에 중심을 두고 서사를 발전시킨 소설 구성은 매우 진보적이다. 오직 어질고 관대한 박씨의 모습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박씨의 모습을 담아낸 것처럼, 소설은 계략을 세우고 공작을 하는 (조선의 입장에서는) 악인 여성 또한 등장시킴으로써 다양한 여성의 성격을 드러낸다. 비록 적군이기는 하나, 호국에서 왕이 조선을 물리칠 계략을 짤 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던 것은 여성인 중전왕비였고, 이를 실제로 수행한 것은 여성 자객인 기홍대였다. 물론 기홍대의 미색을 이용하여 접근하고자 했던 것은 여성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는 데에 있어 한계를 드러낸다. 그러나 결국 기홍대는 이득춘이 아닌 박씨와 서로에게 속고 서로를 속이는 한판 승부를 벌인다. 여성 간의 싸움이 투기에서 비롯된 감정적 싸움이 아닌, 전략적이고 전투적인 투쟁으로 묘사된 것은 이전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이때 박씨는 순한 술을 마시고 매운 재를 뿌리는 등의 전략으로 승리하지만, 기홍대가 자신은 왕명을 받아서 왔을 뿐이라고 애걸하자 그녀를 꾸짖기만 하고 보내 준다. 이는 같은 여성에 대한 관용으로 해석할 수도, 박씨의 어진 마음씨가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듯하다.
또한 전투 장면을 묘사할 때, 이시백이 장군으로 활약하는 장면도 있으나 이는 소설 속에서 짧은 요약을 통해서만 다뤄지고 있으며,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박씨와 계화의 활약이다. 비범한 박씨뿐만 아니라 그녀를 돕는 계화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계화는 직접 율대에 맞서며 “장부라 위명하고 나 같은 여자를 당치 못하느냐”고 농락하며 결국 율대가 스스로 자결하도록 한다. 이처럼 소설은 다양한 성격을 갖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입체적이고 주체적인 여성들을 그려낸다.
한편, 소설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이득춘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분적으로는 무능하고 소심한 모습을 보인다. 이시백은 아버지 이득춘에게 4번이나 불려가 혼났음에도 박씨의 추한 용모를 미워하며 도통 동침하지도, 정을 붙이지도 않았다. 이후에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 박씨를 보고 욕정을 걷잡지 못하다가도 들어가지 못하고, “자연 얼굴이 붉어지며 말이 꼬질꼬질, 가슴이 답답, 숨을 쉬지 못하”며 제대로 사과하지도 못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꼬질꼬질’하고 찌질해 보인다. 박씨는 이런 시백을 우스워하면서 시백을 쳐다보지 않고 외면함으로써 농락한다. 이에 시백은 병을 앓기까지 한다. 심지어 적군인 율대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자결함으로써 계화에게 패했다는 점에서 무능하고 소심하다. 용골대도 “부질없이 조그만 계집을 시험하다가 공연히 장졸만 다 죽”게 했다는 점에서, 또 박씨한테 패한 후 율대의 머리도 돌려받지 못하고 애걸한다는 점에서 무능하다. 또 간신 김자점의 말을 믿고 박씨의 예언을 무시한 상도 무능한 왕이었다. 이렇듯 무능한 남성들의 등장은, 당대 권력을 가졌으나 이를 현명하게 활용하지 못했던 남성들에 대한 비판이자, 여성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가져다주는 풍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이득춘만큼은 그중 안목이 좋고 진보적인 관점을 가진 현명한 남성으로 묘사된다. 우선 득춘은 집안 모두가 반대하는 시백과 박씨의 혼인을 성사시킨다. 혼례를 치르기 위해 찾아갔을 때, 박처사댁을 찾지 못했음에도 약속한 날까지 기다릴 것을 고집한다. 박처사 댁에서 변변치 않은 식사 대접을 받고도 공순히 대답하며 이를 좋게 여긴다. 결혼 이후에도 모두가 박대하는 박씨를 유일하게 보살피며, 박씨를 박대하는 시백을 혼낸다. 좋은 안목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할 줄 아는, 겸양과 배려심까지 갖춘 득춘은 박씨의 든든한 조력자였다. 득춘의 존재는 여성 독자들에게 희망과 환상을 안겨 주기도 하나, 아무리 박씨처럼 비범하더라도 여성 혼자 힘으로는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씁쓸함을 반영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박씨전」은 다양한 여성의 여러 측면을 드러냄으로써 이들을 입체적으로 묘사했다. 당대 여인들이 겪는 한계와 차별도 담아냈으며, 무능하고 소심한 남성 권력자들을 보여 줌으로써 이들을 풍자하기도 한다. 또한 주인공의 조력자인 남성을 등장시킴으로써 희망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