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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상 Jan 20. 2023

[소설] 빨간 우체통

2022 성대문학상 소설 부문 가작 수상작

https://www.skkuw.com/news/articleView.html?idxno=24456



은선은 자신에게 주어진 안락함을 사랑했다. 그는 부모님의 지원 덕분에 돈 걱정 없이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그의 가정은 화목하고 평안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친구들의 대화에서 가정 폭력이나 이혼 이야기가 종종, 주요한 화제는 아니었지만, 맴돌곤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은선은 가정에서의 평범함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친구가 은선의 안락함을 은근히 부러워할 때, 은선은 말끝을 흐렸다. “그런가…. 이번 아르바이트는 어때, 괜찮아?”


알 수 없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은 궁극적으로는 죄책감에서 비롯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말의 죄책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은선은 타고난 좋음을 누리면서 그것이 온전히 자신의 공인 양 떵떵거리는 부류를 혐오했다. 그리고 모순적이지만, 이러한 부끄러움은 은선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기초가 됐다. 은선은 생각한다. ‘나는 나의 안락함이 불공정하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어.’ 사실 이렇게 생각한 적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다른 이들이 나의 안락함을 비난할 자격은 없어.’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은선은 종종 두려웠다. 그러나 그는 또한 겁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먼저 시선을 피했다.


은선은 확고하고 큰 목소리로 싸우는 지환이 두려웠다. 지환의 목소리가, 자신의 세계를 무서운 기세로 침범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 목소리가 마치 은선의 고개를 꽉 부여잡고, 보라고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은선은 어쩔 수 없이 불편한 현실들을 바라보아야 했다. 은근히 외면해 오던, 그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불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 지환을 봤을 때, 은선은 가슴이 뛰었다. 지환과 대화하고, 그의 삶을 알고 싶었다. 지환을 끌어올리고 싸우라고 부추긴 것도 은선이었다. 아마도 그때 은선은 두껍고도 갑갑한 정은선의 껍데기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던 것도 같다.


지환과 처음 만난 것은 은선이 막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였다. 은선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공부에 몰두했다. 덕분에, 이전에 외면하던 것들을 아예 외면할 필요도 없는 삶을 살았다. 그런 문제들이 떠오를 틈조차 없었기에. 그러다가 아주 가끔 외면하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그때 은선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당장 내 인생에 여유가 있어야 남 걱정을 하는 거잖아. 나, 진짜 무료하고 편안했었구나 싶어. 삶이 좀 괴로워지니까, 그런 걸 생각할 시간도 없다, 야.”


속에 있던 말을 뱉고 나니까 정말로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토록 후련했던 적도 없었다. 속 답답한 세상에서 나 혼자 후련해도 괜찮은 걸까 하던, 아주 잠깐 스쳐지나가던 불안은 차치하고.


그때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들을 모조리 지울 수 있었던 건, 수능이라는, 쉽게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순하고 무의미하고 반복되는 무언가. 미리 공부한 전략을 대입해 문제를 풀고, 상념이 개입할 틈 없이 OMR 답안지를 작성하는 행위. 점수와 등급으로 환산되는 것들에 골몰하는 일. 그런 것들이 은선에게는 꽤 도움이 됐었는데.

대학에 합격한 건 너무 좋았으나, 은선은 자신을 지키던 좁은 울타리 하나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만 같은 극심한 불안을 느꼈다. 은선은 곧 다시 공허해졌고, 고민스러웠다. 그는 날씨가 좋으면 커튼을 열어 침대에서 햇살을 느끼고, 날씨가 좋지 않으면 더더욱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집과 이불의 따스함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것들은 은선을 환멸 나는 세상으로부터 그나마 지켜 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답지 않게, 밖에 나가 보기로 했다. 집과 이불도 아주 훌륭한 방패막이 되지는 못했다. 세상은 바로 마주하지 않아도 어차피 은선을 침범해 오고 있었다.


1365를 켜고, 처음으로 실적과 관련없는 봉사를 신청했다. 봉사 시간을 채울 필요도, 생기부에 봉사 기록 한 줄 적을 필요도 없이, 정말로 봉사하기 위한 봉사를 해 보기로 했다. 이런 시도들이 은선이 하고 있는 고민들을 조금 해결해 주기를 바라며. 은선이 신청한 봉사는 인재 사고 복원 봉사였다. 부실 공사로 산사태가 발생해서 집이 무너져 사람 셋이 죽었다고 했다. 그러나 건설사 측에서는 이를 극구 부인하는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사한 지 10년이 지난 주택가였다. 오래된 건물이라 안타까운 재해가 일어난 것뿐, 건설 과정에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허나 그들은 한 건설사가 설계와 감리를 도맡아 제대로 된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해선 철저히 묵인했다. 사실상 의혹이 받아들여져도 그들에게는 큰 문제가 없었다. 겨우 3개월쯤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건설사를 상대로 농성을 하는, 어쩐지 무료한 표정의 박지환이 있었다.


며칠을 서먹하게 지나치던 은선과 지환이 가까워지는 데에는 하루면 충분했다. 은선은 그날 봉사가 끝나고도 집에 가지 않고 괜히 그곳에 머물렀다. 봉사자들은 원래 어두워지기 전인 오후 6시까지만 일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저녁을 먹으러 떠났다. 은선은 매번 그 틈에 끼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으나, 지환이 농성을 멈추고 잠시 쉬는 것을 본 이상 그냥 집에 갈 수가 없었다. 괜히 봉사자들의 무리에서 어슬렁대다가, 누군가 “저녁 드시러 갈래요?” 묻자 화들짝 놀라 작게 아니요, 대답하고는 빠져나왔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지환의 시선이 느껴졌다. 은선은 애써 못 본 척하며 그 자리에 망연히 서 있었다. 지환이 먼저 은선에게로 다가왔다.


“저녁 안 먹어요?” 물었다. 은선이 고개를 저었다. “안 바쁘면 좀 걸을래요?” 이번에는 작지만 명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선은 그 잠깐의 산책 동안에 지환의 거의 모든 사정을 알게 되었다. 은선과 지환이 동갑이라는 것, 평생을 할머니 손에서 길러졌으나 최근의 사고로 그를 잃었다는 것, 그 이후 대학 등록도 포기하고 임시 거주지와 이곳, 그러니까 무너져 버린 옛 집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는 것. 은선은 그토록 자신의 관심을 끌었던, 지환의 무표정이 지닌 의미를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지환에게 농성은 세상을 변혁하겠다거나 보상이나 사과를 받아내겠다거나 하는 의지를 담지 않았다. 그건 그저 삶을 지속하기 위한 핑계 같은 것이었다. 삶 전체를 방치하고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고 생존 투쟁이었다. 은선은 깊은 분노와 울분이 지환의 세계를 전부 파괴해 버렸다고 생각했다. 지환은 더는 파괴할 것조차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며, 이제는 분노도 모두 소진해 버린 채 무력감에서 허우적댈 뿐이었다.


언제쯤 집에 가지, 은선은 슬슬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바람이 찼다. 가까운 사이도 전혀 아니면서 담담하게, 그러나 왠지 절박하게 모든 사실을 다 털어놓는 지환이 조금 부담스러웠던 걸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환은 좀처럼 은선을 보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먼저 벤치에 가 앉아 은선을 쳐다보았다. 은선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지환과 약간 떨어진 곳에 걸터앉았다.


가랑눈이 내리기 시작한 겨울밤이었다. 아마도 코끝이 빨개졌겠지, 생각하며 콧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찬 바람이 열린 옷 속으로 들어와 몸이 떨렸지만 굳이 옷을 여미지는 않았다. 그저 그 상태 그대로 두었다. 그날 밤은 조용했고, 그래서 어쩐지 은선의 움직임은 조심스럽고 신중해졌다. 고요한 밤 속에 지환과 은선의 이야기만이 있었다. 지환의 핸드폰은 두어 달 전부터 요금을 내지 못해 정지됐다. 은선은 지환에게 주소를 여러 번 불러 주었다. 지환은 주소를 여러 번 곱씹었다.


이후로 지환은 자주 편지를 보내 왔다. 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저 오늘 내 삶을 버티게 한 것이 무엇인지, 적혀 있었다. 어느 날은 아침에 일찍 눈을 떠서 살았고, 어떤 날은 지나가다 고양이를 보아서 살았다. 아무것도 살 만한 일이 없을 때에는 농성엘 갔다. 은선은 지환에게 늘, 하루에 하나씩은, 괜찮은 일들이 일어나길 바랐고, 그래서 편지가 올 때면 안심했다. 어떤 날에는 편지를 보내는 일 자체가 지환에게 살아갈 만한 이유가 되기를 바랐다. 길고 긴 염원을 담아, 은선은 짧은 답장을 보냈다. 주로 이렇게 적었다. “편지 잘 받았어.” 가끔은 한 문장 더 적었다. “내일도 보내 줘.”


날이 거듭할수록 지환의 편지는 점점 길어졌다. 하루에 하나씩의 일들을 겨우 해내며 살아가던 지환은, 점점 그 개수를 늘려 나갔다. 어떤 날은 이렇게 묻기도 했다. “신문사에 내 이야기를 보내 볼까 해. 글 쓰는 걸 좀 도와줄 수 있을까?” 은선은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제보 준비를 시작한 후로 지환의 표정은 많이도 달라졌다. 물론 은선은 그 후로 지환을 본 적 없었으나, 늘 그를 떠올리고 상상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담담히 이야기하던 지환은 이제 없었다. 대신, 분노하고 있었다. 초점 없던 시선이 이제 어딘가로 확고하게 고정되어 버린 듯했다. 지환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남겨진 사람들이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어. 단지 그것뿐이야.”


지환은 확성기를 들고 농성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랬을 것이다. 편지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은선은 지환이 쓴 이야기들을 읽고 또 읽었다. 은선은 10분씩 책상에 앉아 지환의 이야기가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수정하다가, 한숨 쉬다가, 잠들다가 하는, 그런 하루들을 보냈다. 결국 고친 글을 보내지 못했다. 그러기에 광주는 너무도 멀었다.


/


어느덧 개강이 다가왔다.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다. 다시 작고 작은 일들에 몰두했다. 그러니까, 오늘 시간 맞춰 수업을 듣고, 당장의 과제를 끝내는 일. 은선은 언젠가 피해입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쓸 작정이었다.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오랜 계획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국문학을 공부하고, 또 사회 이슈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를 복수전공해도 좋겠다. 그렇게 은선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가끔 지환의 편지가 눈에 밟혔지만, 하루 날을 정해 작은 상자 안에 전부 담아 두고 나서는 한결 편안해졌다. 아, 이 작은 상자에 모조리 담기는구나. 그토록 날 괴롭히던 너, 참 별거 아니었구나. 했다.


가끔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럴 때마다, 궁극적으로는 이런 방식이 지환 너를 위한 일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지금까지 그랬듯, 세상에 대한 관심의 스위치를 끄고 살아야 할 때가 있다. 그래야 일상에 몰입하고, ‘성장’이니 ‘발전’이니 하는 것들을 좀 꿈꿀 수 있다. 이런 삶을 살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지환 같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만한 자질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은선은 아직 지환의 이야기를 적어낼 자격이 없었다. 부적격자의 용기만큼 위험한 것이 또 있을까. 그저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라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지환은 편지를 멈추지 않았다. 나 여기에 두 눈 뜨고 살아 있어, 그러니까 내 얘기를 들어 줘, 하며 갈구하는 듯했다. 은선은 답장하지 않았다. 이제 지환의 분노는 은선에게도 옮아간 것 같았다. 은선은 편지에서 이런 문장을 보고서는 숨이 턱 막혔다. “너는 좋겠다, 무관심할 수 있어서.”


은선은 한 자 한 자, 힘주어 적었다. 글쎄, 나는, 아직, 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니까. 그러니까 날 좀 그만 괴롭혀, 라고 쓰려다가 됐다, 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거의 다 사라져 이제는 찾기도 힘든 빨간 우체통을 찾아다녔다. 이른 아침이었다. 거리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서 더 안심할 수 있었다. 다들 앞만 보고 빠르게 걸어갈 뿐이었다. 아무도 편지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은선을 쳐다보지 않았다. 지환에게 편지를 쓸 때면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우체국에 들렀었지만, 오늘은 우체국에 가 사무원의 눈을 마주하고 편지를 건넬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 눈 속에서 지환을 발견해 버릴 것만 같아서. 저 멀리에 빠알간 빛을 내뿜는, 우체통 하나가 보였다. 반가웠다.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거리의 사람들과 발맞추어 걸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췄다. 쓰레기통에 휴지를 버리듯, 무심하려고 애쓰며, 편지를 밀어 넣었다. 은선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 번이고, 우체통이 있는 자리를 돌아보았다. 걷다가 걷다가, 우체통이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그때서야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거리 사람들의 뒤통수만 빤히 쳐다보면서, 앞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그렇게 잊었다. 신문에서 한 남자애의 이야기를 마주하기 전까지. 기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명백한 인재였던 광주 건물 붕괴 사고의 원인은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주요한 원인은 겨울철 공사 중, 양생 기간을 지키지 않아 콘크리트가 제대로 굳지 않았다는 것이다. 균열된 콘크리트는 이들의 삶을, 말 그대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재 사고에서 대부분 그러하듯, 불량 콘크리트의 사용, 비전문 업체의 대리 시공이라는 경제적 ‘효율’이 관여했다. 겨울에 시작된 사고 피해자 유족들의 외침은 해가 쨍쨍한 한여름까지도 계속되었다. 여전히 굳지 못한 채로, 여전히 균열한 채 그 자리에 선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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