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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Oct 31. 2019

마법에 빠진 시간, <르네플레밍 리사이틀>

[공연을 담은 리뷰] #7


[저기요~, 잠시만요!]


https://classicmanager.com/playlist/113794 


(위 혹은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클래식 매니저'에서 공연 Play List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서 바로 연결이 될텐데, 우측 하단 '박스 화살표'를 클릭하시고 사파리나 웹브라우저 

혹은 상단에서 '클래식매니저 전용앱'으로 실행하면 음악을 들으며 리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갸우뚱, 첫 인상


16만원과 35만원, 르네 플레밍과 안나 네트렙코의 동일한 공연장 R석 가격입니다. 현 메트 오페라를 대표하는 디바는 누구일까요? 티켓 가격으로도 짐작하셨겠지만, 플레밍은 지난 6월 월간지 <객석>에 실린 인터뷰에서 쿨하게 답했습니다. 안나 넵트렙코가 아니겠냐고.


이름을 많이 접해 기회가 되면 그녀의 공연을 관람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유튜브에서 노래를 듣고는 갸우뚱했습니다. 낮고 두터운 중저음에 소프라노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답답했죠. 소리가 밖으로 뻗지 않고 안으로 먹는 듯 했습니다. 이후 오페라 아리아 등을 들을 때 찾지 않았어요.


솔직히 르네 플레밍의 공연을 예매한 건 세계적 명성을 가졌는데 예상보다 싼 티켓 가격때문입니다. 프로그램 리스트를 보니 아는 곡도 있더군요. 미리 음원을 구입해서 들었는데 아리아를 비롯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가곡에 뮤지컬 넘버까지 다채로웠습니다. 예매하고서야 그녀의 매력이 궁금해졌습니다.


궁금해진 매력


전성기가 지났다 해도 거침 없는 활동입니다. 2주만에 홍콩과 중국, 타이페이를 거쳐 서울로 아시아 투어가 마무리되는 일정이었어요. 일본이 빠져 있어 의외였습니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 걸 본지는 간만이었어요.


먼 발치였지만 음악평론가 장일범씨도 오셨더군요. 그리고 JTBC의 클래식 방송 <고전적 하루>를 진행했던 김호정 기자도 봤습니다. 두 분은 저를 모르겠지만, 친구를 만난 거 같이 반가웠어요. 젊은 분들도 많아 주인공의 명성을 짐작케합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지인을 기다리는 들뜬 분위기였어요.


반주를 맡은 피아니스트 하르트무트 횔와 무대를 나오는 발걸음이 당당했습니다. 금발, 큰 눈, 적당한 몸매, 곱게 늙어가는 느낌, 'The Met : Live in HD'의 해설자로 친숙한 첫 인상은 아메리칸스타일(?)의 미녀처럼 보였어요. 반기는 청중의 박수를 잠시 만끽하고 망설임 없이 야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에 나오는 '연약한 우상, 타이스여'를 불렀어요.





갸우뚱이 매력으로


노래가 시작되자 청중들 대부분 좀 더 잘 듣기 위해 집중하는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성악 공연을 처음 본다면 이때 조금 실망할 수도 있어요. 스피커와 이어폰에 익숙해서 소리가 작게 들릴 수 있습니다. 점차 나아져요. 귀가 아날로그 노래와 음악 소리에 차츰 적응할 때까지.


저도 처음에 '어? 왜 이렇게 성량이 작지?' 싶었습니다. 하지만, 1부 중후반부턴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몰입됐어요. 두터워 답답하게 느꼈던 중저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형광등처럼 나를 둘러싼 공간을 환하게 감싸주었습니다.


'연약한 우상, 타이스여' 마지막 프레이즈 고음 파트로 갈 때는 아슬아슬하더군요. 알토같은 인상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저음에서 고음의 경계를 넘어갈 때 스포트라이트처럼 또렷하게 치솟는 소리는 짜릿했어요. '와~' 입이 벌어졌습니다. 한 국가를 대표했던 디바의 저력이 느껴졌어요.


감성적인 1부


'안녕하세요(한국어)', '한국을 다시 찾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 첫 곡을 부르고 15년 만에 다시 찾은 그녀의 첫 소감이었습니다. 앞으로 자신이 부를 곡을 설명해주는데 영어라 잘 못 알아들었어요. 아쉽지만, 이럴때는 뭐~ 다른 분들 웃을 때 같이 웃으면 됩니다.


극적인 아리아로 단번에 무대를 휘어잡고 흥겹고 감성적인 가곡들이 이어졌어요. 그 중 '카디스의 처녀들'은 무척 좋아하는 곡입니다. 발레 작품 <코넬리아> 작곡가로 익숙한 들리브가 만들었으니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드레스를 잡아 앞뒤로 흔들며 플라멩코적인 춤사위를 곁들이며 부를 땐 어깨가 들썩였습니다.


호흡 조절을 못해서인지 레가토가 끊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노련하게 넘어가더군요. 또한, 배우였습니다. 곡에 따른 감성을 표정과 몸짓까지 이용해 전했어요. 1부 중반부 이후 브람스의 리트(독일 예술가곡)가 쭉 이어졌어요. 고독한 작곡가의 따뜻한 감성이 전달된 '달밤(Mondnacht)'에 마음이 찡했고, 친숙한 '자장가(Wiegenlied)'를 들으며 촉촉했습니다.



공연사진, 사진 출처 : 예술의 전당



열정적인 2부


청중의 마음을 살살 녹인 1부 였다면, 2부는 친숙한 뮤지컬 아리아와 이태리 가곡, 그리고 오페라 아리아로 이루어져 열정을 더했습니다. 르네 플레밍은 성악을 하기 전 재즈 가수로 데뷔할 뻔 했다고 해요. 그 특기를 살린 'Somewhere over the rainbow'는 자유로운 감성을 맘껏 뽐냈습니다.


여세를 몰아 관객의 호응을 이끈 <왕과 나>에 나오는 'I whistle a happy tune'은 즐거웠어요. 휘파람을 부르지 못하는 플레밍을 위해 곳곳을 청중의 휘파람이 채웠습니다. 유쾌했어요. 쉬지 않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Somewhere'로 모두를 어디론가 데려갔습니다.


오페라 <메피스토펠레>의 아리아 '어느 날 밤, 깊은 바다 속에' 부를 때는 드라마틱 소프라노가 되어 현란한 기교를 보여주었습니다. 아마 앵콜곡을 빼면 오늘 부른 곡 중 가장 어려운 노래의 선곡이었어요. 그녀도 부르고는 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힘들었다는 너스레를 보여주며 진심을 살짝 내비쳤습니다.


몰아치는 감격


이탈리아의 국민적 작곡가 Tosti의 '4월(Aprile)'이 나올 때부터 마음이 점차 벅찼어요. 밝고 흥겨운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어 레슨까지 받았던 '아침의 노래(Mattinata)'가 공연의 마지막 곡이었는데, 같이 따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신났습니다.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노래의 흥인지 당시의 감명인지 되살아나 다시 가슴이 벅차네요. 그 감정 그대로 르네 플레밍을 향한 청중의 호응은 끝날 줄 몰랐습니다. 그녀가 준비한 앵콜곡들 또한 주옥같았어요. 'Summertime' 이라는 소개 멘트에 감탄사가 여기저기 터져나왔습니다.


두 번째 앵콜곡을 소개할 땐 제목을 못들었습니다. 피아노 전주가 나오자 마자 '아~' 저도 모르게 짧게 탄식이 나왔어요. 너무나(*100) 좋아하는 독일 가곡입니다. 불과 지난 주까지 레슨을 받았던 R.Strauss 의 '헌정(Zueignung)'이었죠. 이 곡을 들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거든요.



오페라 <루살카> 공연 모습,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그녀의 마법


소프라노가 부르는 건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두텁다고 느낀 중저음과 경계가 불명확하게 뻗는 고음, 곡과 잘 어울렸습니다. 대략 2분 정도의 짧은 노래인데, 그 순간 모든 사념이 사라지고 그대로 음악에 묻혔죠. 3번째 앵콜까지 이어졌는데 '시그니처 아리아'라고 소개했습니다.


눈치채셨나요? 바로 그 곡입니다. 오페라 <루살카>에 나오는 '달에 바치는 노래(Song to the moon)'! 누구 하나랄 것도 없이 소개를 듣자 아이돌 공연처럼 감탄사와 박수가 터졌어요. '드디어~' 라는 심정이 아니었을까요? 마지막 앵콜곡이라는 걸 느꼈는지 음정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습니다.


무대에 빠져든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요? 작품이 아닌 리사이틀이나 콘서트에서 이 정도의 감명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앵콜까지 두 시간 여를 내리 달린 플레밍은 음악을 노래로 그려주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청중에게 최소한 제게 '달에게 바치는 노래'로 헤어 나올 수 없는 마법을 걸어 놓았어요.






[공연정보]

1. 공연명 :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 리사이틀 (Renee Fleming Recital In Seoul)

2. 관람일 : 2017년 7월 3일(월)

3. 공연장 :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4. 출연자

 1)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Renee Fleming)

 2) 피아니스트 하르트무트 횔(Hartmut Holl)

5. 프로그램

 1) 1부

  마스네: 오페라 <타이스> 중 '연약한 우상, 타이스여'

  포레: 만돌린

  생상스: 저녁 바다

  들리브: 카디스의 처녀들

  브람스: 세레나데 "달은 산 위에"

            5월의 밤

            달밤

            내 사랑은 초록빛

            자장가

            허무한 세레나데

 2) 2부

  헤럴드 알렌: "오즈의 마법사" 중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리차드 로저스: "왕과 나" 중 '즐겁게 휘파람을 불지'

  번스타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어딘가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중 '난 참 예뻐'

  마누엘 폰스: 작은 별

  카를로스 고메즈: 내 발라드의 검은 머리 여인

  토스티: 4월

  보이토: 오페라 <메피스토펠레> 중 '어느 날 밤, 깊은 바다 속에'

  푸치니: 오페라 <쟌니 스키키>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레온카발로: 아침의 노래

 3) 앵콜

  거쉰: <포기와 베스> 중 '썸머타임'

  R.슈트라우스: 헌정

  드보르작: 오페라<루살카> 중 '달에게 부치는 노래'



https://youtu.be/7E6HQkiocmY 

(르네 플레밍 'song to the moon', 영상에서 재생되지 않으면 위 url을 클릭하시면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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