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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마담 Nov 28. 2019

든든한 형님의 등짝 스매싱

2019 서울시향 만프레트 호네크의 <말러, 교향곡 1번>

말러라는 송곳


어쩌다 보니 발레 외 다른 공연을 끊다시피 했어요. 오케스트라 연주는 거의 1년 만에 관람합니다. 간만에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 오도록 만든 건 'Titan (거인)' 이라는 <말러 교향곡 1번> 이죠. 워낙 좋아하는 작품인데 서울시향 연주라 설렜습니다.


이 곡은 직설적으로 힘차고 희망을 주는 결말때문에 인기가 많습니다. 신비로운 도입부, 흥겨운 무곡, 평온한 자연을 떠올리게 하고 용기를 불어넣는 팡파레, 때론 긴장하게 만드는 밤기운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1889년 초연에서 참담한 비판을 받았어요. 평론가와 애호가들 모두 엄숙한 교향곡에 장난이 심했다는 평을 합니다.


낭만주의 끝물이던 당시 브람스와 바그너로 양분된 세계에 말러라는 송곳이 튀어나온거죠. 청중들은 브람스의 엄격한 형식을 따르는 고전주의 교향곡에 익숙했습니다. 바그너의 혁신은 주로 오페라/음악극에 치우쳤죠.





그가 담은 가치


말러는 전통따위 집어던졌습니다. 요즘의 가요와 같은 민속음악을 덧입히고, 팡파레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며, 불협화음을 특징으로 세운 교향곡이 좋은 평가를 받기엔 이른 시대였어요. 참고로 당시 말러는 '작곡도 하는 지휘자'로 작곡가보다 실력 있는 지휘자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말러 교향곡 1번은 작곡가 본인이 '나의 시대는 올 것이다' 라며 온갖 혹평에 투쟁하여 극복한 음악 같아요. 결국 요즘엔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처럼 음악사 흐름을 바꿨다고 인정받죠. 또한 많이 연주되는 작품 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거야 제 생각이고, 말러는 니체의 초인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해요. 불완전한 제약을 이겨낸 인간의 모습을 담았을 듯 합니다. 또한, 만년에 북유럽 대표 작곡가 시벨리우스에게 '교향곡은 세계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했어요. 초기 교향곡부터 세상사 모든 걸 담으려고 노력했을 겁니다.



[잠깐]

https://classicmanager.com/playlist/116469 

위 혹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클래식 매니저'에서 <말러 교향곡 1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에서 바로 연결될텐데, 우측 하단 '박스 화살표'를 클릭하고 웹브라우저로 실행 혹은 상단에서 '클래식 매니저 전용앱'으로 실행하면 음악을 들으며 리뷰를 볼 수 있습니다.
전체 악장 듣기가 부담되면, 4악장부터 듣길 권해요^^



거인의 발걸음


그의 취향과 유년 시절 기억도 담고 있습니다. 별장을 알프스에 짓고 작곡에 몰두할 정도로 자연 속에서 평온함을 느꼈다고 해요. 현악기의 미세한 떨림으로 만들어낸 신비로운 기운이 현악파트 전체로 퍼지며 연주되는 1악장은 그가 느꼈던 자연을 담은 듯 합니다.


어렸을 때 살던 집 근처 병영에서 들려오던 팡파레 또한 깊은 인상을 주었다고 해요. 먼 곳에서 들리는 팡파레 효과는 그 기억의 단편을 불러온 듯 했습니다. 1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이 곡이 가고자하는 바를 미리 보여주 듯 하이라이트가 울리는 데 평온한 자연 속에서 깨어나는 '거인'이 연상되더군요.


2악장은 흥겹고 왠지 친숙합니다. '렌틀러'라는 민속무곡이 울리죠. 말러가 남긴 설명에는 어느 한 청년이 마음에 드는 여인을 발견했을 때의 순수한 행복을 그리고 있다고 하지만, 제겐 '거인의 깨어남'을 축하하는 어느 시골 동네의 축제같은 느낌이 듭니다.


마냥 신나진 않았어요. 어느 순간 음울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1악장도 마찬가지였죠. 그 암울한 기운이 가장 많이 묘사된 건 3악장입니다. 마치 밤길, 그것도 숲 속의 밤길을 묘사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길 잃은 '거인의 한숨'이 들리는 듯 해요.


이 악장에선 팀파니 연타와 함께 연주되는 부분에 눈길이 많이 가더군요. 저만의 느낌이지만 왠지 트로트 기운도 느꼈습니다. 유명하다는 동요 '마르틴 형제'를 패러디한 멜로디 부분이죠. 본인이 작곡한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일부분도 인용했습니다.


1악장부터 3악장까지 세밀한 음마저 모두 살렸다는 만프레트 호네크의 지휘는 여러 감정을 느끼도록 했어요. 활기찬 시골에 있는 분위기, 트로트처럼 세속적인 느낌과 우울한 음악까지. 탄탄하게 설계되어 연주하는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팡파르


4악장을 처음 들으면 깜짝 놀랄수도 있어요. 매우 세게 연주하라는 포르티시모 총주로 긴장 넘치게 시작합니다. 하지만, 흙귀인데도 뭉뚱그려 들리지 않았어요. 각각의 악기가 날세워 꼼꼼하게 채워졌어요. 촘촘하게 엮여 들리는 음들이 빼곡했습니다. 와중에 목관의 독주 연주가 잠깐씩 들릴 땐 청명했죠.


마지막 악장은 하이라이트가 두 번 있어요. 첫 번째 팡파르는 거인이 몰락으로 떨어지는 걸 보여주기 위한 장치죠. 진정한 승리로 단번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비웃습니다. 하지만, 익숙한 음악에 갑자기 눈물이 흘러 놀랬어요.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시 혹독한 세계로 떨어진 것처럼 음악은 어두워요. 그걸 헤치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에선 풀 오케스트라 속에서 빛나는 환희가 펼쳐집니다. 두 번째 하이라이트는 감명 깊었어요. 현악기로 쌓인 폭풍을 뚫고 나온 금관악이 한 번에 연주될 땐 빛무리로 뻗치는 거 같았습니다.


벅찼어요. 거인이 다가오는 듯 압도되어 갔습니다. 마침내 종지가 찍힐 땐, 풀죽은 제게 위로를 넘어 ‘이 자식이~ 마~ 뭘 그런 걸 가지고’ 털어내라며 듬직한 형님에게 등짝 스매싱을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음반 이미지, 사진출처: 구글이미지 검색



참고

1. 스티브 존슨의 <말러, 그 삶과 음악>

2. 황진규씨가 쓴 네이버캐스트의 말러 교향곡 1번

3. 프로그램 노트


관람정보

1. 관람일시 : 2019년 9월

   1) 이전 관람 : 2016년 7월

2. 공연명 : 2019 서울시향 만프레트 호네크의 말러 교향곡 1번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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