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잔인한 그 이름 4월 - 공감적 이해
작은 아이 학교 설명회와 담임선생님 상담을 다녀왔습니다. 학년별로 진행되는 설명회에 3학년 학부모는 70여 명 정도 참가했습니다. 저녁 7시에 시작해서 1시간 동안 학교 활동과 선생님들 소개 그리고 25학년도 대입전형에 대한 안내가 있었습니다. 사실 목표는 담임선생님을 뵙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로 간단하게 인사와 상담은 드렸지만, 아이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보고 수시로 갈 수 있는 학교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는 같은 여학교를 나왔습니다. 사실 큰 아이 때는 이렇게 상담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쁘기도 했고, 수시 성적에 크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동생만 신경 쓰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아 조금 미안합니다. 생각해 보면 스스로 야무지게 입시 전략을 세운 아이가 정말 대견합니다.
작은 아이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과 가고 싶은 대학이 명확합니다. 그래서 학생부 종합 전형을 좀 더 신경 써야 하기에 선생님과의 상담이 필요합니다. 아이와 3차에 걸쳐 상담을 진행 한 내용을 보여주시면서, 교과 세부 특기 사항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실험과 활동을 독려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을 직접 뵈니 더욱 믿음이 갔습니다. 의견이나 생각이 확고한 아이가 선생님을 신뢰하고, 다양한 활동과 보고서를 작성하는 모습에 안심을 합니다.
25학년도 입시 사정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재학생도 작년에 비해 15,000명이 증원되었고, 의대 정원 확대로 재수생이 역대 급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예측은 입시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합니다. 아이는 성격상 결코 재수 생활을 견딜 수 없습니다. 부디 입시에 성공해서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서 맘껏 꿈을 펼치기를 빌어봅니다.
저는 임상심리사 2급 실기 시험에 도전합니다. 작년 필기 합격 이후 너무 많은 일을 벌여 놓아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한 달여의 시간이 남았습니다. 2차 실기는 필답형으로 답안을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1차에 비해 외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의견을 묻는 논술 시험도 아니고 정확한 답을 요구하는 문제 유형은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무조건 반복해서 외워야 할 것 같습니다. 나이도 나이지만 절대 멀티가 안 되는 두뇌입니다. 사실 다른 일들과 함께 병행하는 것이 부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전에 또 마음이 설렙니다. 이제 수험생이 되었으니 아이들의 마음을 더 이해할 수 있겠지요.
인간중심상담에서는 촉진적 관계형성의 기술 세 가지로 ‘공감적 이해, 긍정적 수용, 일관적 진실성’을 제시합니다. 그중 공감적 이해는 ‘감정 이입적 이해’라고도 하는데 상대방이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사적 세계를 정확하고 민감하게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타인이 가진 감정, 의견, 가치, 이상, 고민, 갈등 등을 그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보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대방의 내면행동까지 이해할 수 있어 ‘제3의 귀(눈)이라고도 합니다. 이때 최고 수준의 공감적 이해는 표면적인 감정은 물론 내면적인 감정에 대해 정확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저는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곧 중간고사로 고통스러워할 학생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교수자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공감을 최대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 일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일 테니까요.
큰 아이 방 구조를 조금 바꾸었습니다. 도배와 장판 공사가 마무리되고 공간을 차지하던 옷장을 빼고 2단 헹거를 들여놨습니다. 방이 훨씬 넓어졌습니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 공부하는 큰 아이를 위해 쾌적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더 넓어지고 잘 정돈된 방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합니다.
깨끗하고 예쁜 언니 방이 탐났나 봅니다. 작은 아이도 언니 방처럼 꾸미고 싶다고 합니다. 결국 똑같은 헹거를 구입했습니다. 작은 아이 방도 깔끔해졌습니다. 사실 며칠 갈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지요.
저도 봄을 맞아 조금씩 정리를 시작합니다. 최고의 청소는 버리는 거라고 했지요. 쓰지 않고 쌓아 놓았던 물건들을 미련 없이 버립니다.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4월을 맞이합니다.
3월 모의고사를 보고 돌아온 작은 아이가 아빠에게 선물을 내밉니다. 당근에서 샀다면서 명품 향수를 건넵니다. 나이가 드니 남편은 향수에 애착을 보입니다. 아빠의 마음을 읽은 아이가 생일 선물로 향수를 선물합니다. 당근에서 싸게 구입했다지만, 명색이 명품 향수는 값이 비쌀 텐데 용돈을 모아 산 모양입니다. 남편이 참 행복해합니다.
오늘 저녁은 큰 아이가 일본 특제 소스로 치킨을 만들었습니다. 닭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즐기는 메뉴입니다. 특히 딸이 만들어 준 것이라 더욱 맛있게 먹습니다. 삶이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네, 행복하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상황이 조금은 답답하지만, 우리 가족을 보면서 누군가는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식들에게 응원받지 못하는 가장이 많다고 남편은 말합니다. 사실 딸들을 키우면서 아빠가 느낄 소외를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우리 딸들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챙깁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요.
느리게 천천히 가고 있지만, 이런 날들이 언젠가 추억으로 남아 힘들 때 위로가 되겠지요.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정 안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가족은 디오니소스(술의 신)를 심판관으로 모시고 오늘도 하나가 됩니다. 작은 아이도 함께 동참할 날을 그리면서 말이지요. 힘든 길, 한 사람이 가는 것보다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말이지요.
날이 참 좋습니다. 우리 세 모녀에게는 더욱 잔인한 4월이 되겠지요. 치명적인 봄의 유혹 아래에서 세 모녀의 고군분투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