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문학이 심리학을 knock 하다 - 정적 강화물
‘장미색 비강진’ 남편에게 찾아온 피부질환입니다. 3주 전 등에서 시작한 분홍색 반점은 가려움도 없고, 통증이나 전조 증상도 없이 팔, 다리를 제외한 온몸으로 번졌습니다. 부랴부랴 근처 피부과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는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한다며 피검사를 제안했습니다. 3일 후, 피검사에서 특별한 징후가 나타나지 않는다면서 차트 가득 알 수 없는 기록을 끄적이며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그렇게 또 3일분의 처방을 받고 바르는 연고를 바꾸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약이 독했는지 남편은 계속 잠을 잡니다.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그렇잖아도 예민한 큰 아이는 아빠의 몸을 볼 때마다 속상해합니다. 작은 아이 역시 그 훌륭한 서치 실력으로 어떡하든지 병명을 알아내기 위해 애씁니다. 아빠 몸에 연고를 발라주면서 속상해하고, 울컥해합니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 같아 건강식을 챙겨주면서 지켜보았지만 며칠째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점점 퍼져갔습니다.
진단명을 못 찾아내는 의사에 대한 불신이 처방해 주는 약에 대한 의심으로 번지면서 남편은 바르는 약이 효과가 없다고 의아해합니다. 그래도 의사가 시키는 것이니 일단 해 보고 안 되면 다른 병원으로 가보자고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여전히 진단명도 원인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불확실은 우리 가족을 공포와 불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의사의 태도에 이제 불안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자꾸만 번지는 반점을 보면서 그저 답답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뭐든 한 번 시작하면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다른 병원을 검색했습니다. 피부질환을 전문적으로 하는 리뷰 좋은 한의원이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알아내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운 마음을 안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몸을 본 한의사는 단박에 ‘장미색 비강진’이라고 진단명을 내립니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생기는 것으로 별다른 원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10~40세 청 ․ 중년층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4~10주 후에 자연 소실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일단 병명을 찾은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번에 알아보는 의사에 대해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반면 며칠 동안 증상도 알아내지 못하고 불안만 조성했던 피부과 의원에게는 화가 났습니다. 흔한 증상은 아니지만 피부 전문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봤어야 할 정도로 인터넷 검색을 하니 알 수 있는 질환이었습니다. 병원에 별점 테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가지 않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7월 월간 밀리로드〉창작 지원 프로젝트의 ‘논픽션 우수 작품’에 당선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와중에 지난 목요일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이게 뭐지? 링크를 통해 정보입력을 하라는 요청에 순간 보이스 피싱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해 밀리의 서재 고객센터에 문의를 하니 당선이 맞다는 답변이 왔습니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글로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다니 기쁘면서도 당황스러웠습니다.
7월 31일 밀리의 서재 밀리로드에 첫 글을 연재하면서 형제들이 있는 단톡방에 사실을 알렸습니다. 막내 동생이 묻더군요. “얼마 버는데?” 대답을 못했습니다. 공부한다고 무던히 애쓰고 있는 누나를 지켜보는 동생의 안타까움이 묻어난 말입니다. 앞으로 벌겠지 라는 말로 대충 얼버무렸지만, 책을 써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스스로도 의아했습니다. 35년 전 처음 소설로 신인문학상을 받을 때도 상금은커녕 오히려 책을 사야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품도 졸작이지만 불명예스러운 당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 이력에 소설 당선이라는 것을 결코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상금 100만 원을 준다고 합니다. 이런 프로젝트가 있는지도 모르고 7월 31일 마지막 날 3편의 글을 올렸는데 이것이 에디터들의 눈에 든 모양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저에게 찾아와 주었네요. ‘막내야 누나 글쓰기로 돈 벌었다’ 단톡방에 기쁜 소식을 알렸습니다. 형제들이 모두 축하해 줍니다. 글 쓰는 일은 힘들고 지난한 일입니다. 뜻밖의 보상이 강력한 정적 강화물이 되어 오늘도 저를 끄적거리게 만듭니다.
스키너(Fredrick B. Skinner, 1904~1990)의 조작적 조건형성에 의하면 강화는 반응의 빈도를 증가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강화물은 반응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말합니다. 강화에는 정적 강화와 부적 강화가 있습니다.
정적 강화는 행동이 강화물에 의해 뒤따를 때 반응의 빈도가 증가합니다. 이러한 정적 강화물에는 칭찬, 상, 안아주기 등이 있습니다. 반면에 부적 강화는 행동에 뒤따르는 혐오 자극을 제거하여 반응의 빈도를 증가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험을 잘 본 사람에게 화장실 청소를 면제해 주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문학이 심리학을 knock 하다’ 남편이 지어 준 책 제목입니다. 제목을 잘 지어 선정되었다고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밀리로드 측에서 연재가 완결되면 심사를 거쳐 종이책 출간도 고려한다고 합니다. 책이 되어 나올 그날을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합니다.
세 모녀의 고군분투 Summer School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남편이 1박 2일 외출을 하는 바람에 세 모녀끼리 조용히 해단식(?)을 했습니다. 작은 아이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치킨과 맥주 콜라와 함께. 3주 동안의 짧은 시간이었고, 각자의 스케줄과 사이클로 인해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나름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서로의 노고를 칭찬해 줍니다.
큰 아이는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임용시험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시험장소가 본인이 졸업한 대학 근처로 배정되었습니다. 익숙한 곳이니 긴장이 조금이나마 줄어들겠지요. 호텔을 예약하고, 기차표를 예매하고 잘 알아서 하는 아이여서 해줄 것이 없습니다. 작은 아이는 오늘 개학입니다. 앞으로 수능 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겠다고 말합니다. 당연한 것 아니냐는 표정으로 반문하니, 2학기에는 학교에 출석하지 않고 집에서 수능 준비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을 체감합니다.
한 주가 또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주는 큰 아이에게 정말 중요합니다. 부디 본인이 노력한 만큼 결과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