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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미 Jun 04. 2023

방콕에서 (적당히) 헤매기

나의 지도책

하늘이 어쩐지 참 높고 맑다.

일부러 돌아 공원을 걸어 집에 가는 길, 내가 가는 방향을 가르쳐주는 건지 큰 별 하나가 떠있다.

어쩌면 위성일지도 모르겠고 위성일 가능성이 더 높지만 타고나길 문과인 내 감성이 별이라고 믿으란다.

안 보이는 것도 쉽게 믿는 세상에 눈에 보이는 저 반짝이는 게 별이라고 믿으라면 누가 못 믿겠어.


정말 못 믿을 만큼 밝게 빛나는 별을 따라 집으로 가는 길을 걸어보니 과거 여행자들은 정말 별을 따라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따라 목적지가 있는 듯 없는 듯 여행했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다녀봐야지 싶다가도 항상 구글맵을 켜는 나인데, 다음 여행은 정말 구글맵 없이 또는 종이 지도만 가지고 여행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여행 중에는 하늘도 많이 보고 멈추기도 자주 멈추지만 어쨌든 어디론가 가는데 왜 내가 사는 곳에서는, 지금은 그러지 못할까.

이곳에서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헤맬 수 있고 헤매도 괜찮은 타지로 자꾸 여행이 가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사진에 대한 글을 적어야지 생각했는데 또 다른 이야기만 한다. 사실 매일 말을 조금 해야지 다짐하면서 자는데 결국 그러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근데 정말 웃긴 게 이런 기록을 당장 다음 주에 내가 읽으면 내가 참 웃기고 귀엽고 가엽고 그렇다. ㅎㅎ. 난 이런 형용할 수 없는 감정과 글을 배출하는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미래의 나를 위한 확실한 요깃거리가 되니까.



어쨌든 이 사진은 방콕에서 쿠킹 클래스가 끝난 뒤 일단 저 방향에 카페가 많다니 가보자며 걸어가던 순간이다.

내가 뭘 찍으려고 했을까. 빛나는 색유리 조각인 거 같은데 멋지게 찍혔다기엔 익숙하지 않은 일회용 카메라의 렌즈를 가린 내 오른손이 너무 어설프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면 나도 나오고, 방콕의 햇빛도 나오고, 푸른 나뭇잎도 나오고, 맑은 하늘도 나오고, 방콕이라고 알려주는 태국어 간판도 나오고, 내가 멋들어지게 찍고 싶었던 유리조각도 나온다. 나름 분위기도 있고 뭐든 많이 나왔으니까 잘 나온 사진이라고 생각하련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어차피 구글맵 없이 종이 지도로 여행하지 못할 거라면, 이것저것 많이 나온 필름 사진들에 그 사진을 찍은 근처 지도를 내가 그려보는 건 어떨까? 지도는 공간을 이해하는 능력은 필요해도 엄청난 그림 실력은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내 기준 나에게만) 정말 멋진 지도책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음 그러니까 이 글에서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순간에도 하늘을 자주 보고 여유를 갖자 이런 거였는데 결국 또 산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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