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지루함에서 탈출할 수 있는 아빠의 전략
아버님들, 아이 키우기 힘드시죠?
제 나이 30대 초반,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되어있었습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아니 열심히 준비를 했었는데도 불구하고 팔 위에 얹어져 있던 아이의 무게는 너무 묵직했습니다. 막막함이 묵직함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울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는 이 녀석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시간은 흘러 30대 '육아 아빠'의 시절은 일단락이 되고 중년의 초입으로 들어왔습니다. 울고 있던 그때 그 아이는 어느덧 8살이 되었습니다. 팔을 짓누르던 그 아이는 시원섭섭하지만 아빠의 품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 뒤로 이 녀석의 여동생이 무임승차하여 하루하루 팔 근육이 노쇠해져 갔지만, 첫째와의 추억은 그렇게 희미해져 갔습니다.
조금은 숨통이 트입니다. 두 아이가 마늘을 다 먹고 '사람'이 되어 동굴 밖을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연하고 불안했던 육아 시절의 고민들은 아직도 여전히 한겨울 칼바람처럼 매섭게 날아와 뺨을 때리긴 합니다. 시간이 흘러 아이의 아빠라고 불리는 게 익숙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것들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어쩌면 그때 그 고민처럼 이 녀석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대해 깔끔한 대답을 찾지 못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왕 아빠가 된 이상, 멋진 아빠가 되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목표가 뚜렷해지니 흥에 겨워 누구보다도 열심히 퇴근 후 육아에 전념했고 육아 서적은 물론 동영상 강의도 섭렵했습니다. 이 녀석과의 시간은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 했습니다. 더 큰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6살이 되던 해에는 엄마도 없이 겁 없이 미국 여행까지 다녀왔습니다. 모든 것이 서투른 처음 아빠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육아 천재라고 불려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육아 대디'가 되었다고 자부했습니다. 모든 것이 즐거웠고 신기했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 육아'를 했다기보다는 '육아 천재'가 되기 위해서 마치 자기 계발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페이스 조절에 실패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갑자기 큰 벽과 함께 허무함이 찾아왔습니다. 무엇이라 정의하기 힘든 허무한 느낌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생물학적 우월성을 갖춘 아이들 엄마의 '본능적 우월감' 앞에서도 힘 빠짐 같은 허무함까지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이 재미있었고 많은 것에 후회 없이 달려들어 '육아 천재'가 되었다고 자부했지만 결국 엄마를 찾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는 자격 지심 같은 열등감 같은 것도 찾아왔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회사일로 며칠 야근이라도 하게된 날에는 주말에 마주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마치 처음 보는 택배 기사 아저씨를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생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푹 빠져 재미를 갖고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들이었는데 갑자기 한계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허무함은 어디서 찾아온 것일까요. 한참을 고민해 봤습니다. 병든 닭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육아는 계속되어야 했고 그 역할은 엄마의 몫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점점 더 엄마의 체력이 방전되어 가는 걸 보면서도 고민은 계속됐습니다. 흥미를 잃은 채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던 그 순간과 원인을 찾으려 애써봤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이 기분은 사치스러운 기분 같았습니다. 아이들과 레슬링하느라 실신해 버린 엄마를 바라보니 병든 닭처럼 모든 걸 내려놓은 한때 '육아 천재'의 고민은 백화점 명품관의 사치스러운 물건 같았습니다. 쓰러진 엄마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최고의 엄머가 되겠노라고 멋진 중장기 비전을 세운 그녀, 뭐든지 다 잘하고 싶은 워킹맘, 계획대로 해 보겠다며 일기장에 치밀하게 세워 둔 각종 '육아 Action Plan'이 가득한 그녀가 쓰러져있었습니다. 하지만 냄새 배긴 현실과 타협하고 또 타협하느라 매일매일 좌절하는 사람은 정작 엄마였을 텐데도 아빠는 계속 사치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빠들은 이해할 겁니다.
“낭자. 나는 밖에 나가서 신선한 고기를 채집해 오겠소”
이 시대의 아빠들은 선사시대의 선배 형님들처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육식 따위는 하지 못할 지라도 육아 따위는 모른 척할 수 없는 것이 요즘 아빠라는 걸 아빠들은 이해할 것입니다. 채집 본능을 잃어버린 요즘 시대의 아빠들이지만 최선을 다해 보아도 '모성애적 파워' 앞에서는 한 없이 부족하고 작은 존재로 전락해 버리는 느낌을 남자들은 이해할 것입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것 같을 때 찾아오는 공허한 기분을 남자들은 이해할 겁니다.
"허허. 그런 발상을 하다니. 역시 나만 고생하는 게 맞았어…”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면 하소연할 곳이 없다는 점입니다. 행여나 아빠의 육아 고충이 발각 되기라도 하면 와이프의 강력한 반사는 기본 옵션처럼 되돌아옵니다. 제대로 된 전투에 참가하지 않아서 생기는 '전쟁 중 공허함'이라고 폄하해버립니다. 그리고는 진짜 전투에 참가하고 나면 이런 고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핀잔을 줍니다.
이 쯤되면 아빠들은 의심을 하게 됩니다. 혹시나 내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아이 키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아닌지라고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 하면 주저 없이 '내 아이를 낳은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아빠들을 보면 꼭 그렇지 많은 않아 보입니다. 저 또한 육아 대디가 된 것은 인생 최고의 경험이고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깐요.
그래도 해소가 되지 않는 아빠들의 육아 허무함.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두엽을 자극하는 뇌과학.....' 같은 의사 선생님의 뭔가 있어 보이는 해석이나, '살면서 겪는 고민 중에 그런 고민은 고민도 아니야'라고 랩 배틀 하시는 선배님의 말씀. 죄송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그냥, ‘낭자. 오늘 내가 신선한 사슴 고기를 잡아 오겠소’라고 외치고 싶은 본능을 숨기며 살고 있는 우리의 젊은 대디(Daddy)들이 오늘의 호스트입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고 동년배의 '아빠-남자'가 겪게 되는 장르 불명의 공허함은 분명 존재합니다. 아빠들은 그 갈림길에서 세월아 내 월아를 외치며 외딴 길로 빠지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시 빨리 허무함에서 탈출하고 싶은 사람과 모여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합법적으로 육아를 탈옥할 수 있는 아빠의 전략’이라는 과격한 주제로 엉뚱한 이야기를 나누며 회피가 아닌 해소를 해보려 합니다. 더 건강하고 튼튼한 아빠가 될 수 있도록 젊은 아빠들을 위해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