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감히 탈옥을 하시겠다고요?

아빠가 육아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된다면

by 김지수

이 글을 시작하면서 친한 후배와 선배들의 핀잔이 쏟아졌습니다.


“미쳤어 형? 무슨 조선시대 꼰대, 즉 고구려 시대적 발상이야?”

"육아 대디들이 힘들다고? 야, 나는 와이프가 비행을 나가서 내가 다 키웠다”

“엄마도 힘든데, 왜 아빠만 탈출해? 마초이즘 같은 거야?”


하지만 외쳐봅니다.


"이건 혼자서 쇼생크 탈출하겠다는 게 아니라고요~~"


힘든 엄마들, 그리고 선 후배님들. 육아 대디 한번 응원해줄 수 없을까요. 혼자 쇼생크 탈출을 해보겠다거나 교도소 탈옥을 조장해 보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빠는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주인공다운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아빠는 가정의 연출자입니다.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멋진 가장이 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습니다."

- <아이의 사회성 아빠가 키운다> 중에서, 임영주 지음, 노란우산 2012


시대가 변했습니다. 육아에서 아빠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졌습니다. 물리적으로도 역할이 더 해졌지만 실제로 아빠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도 강조되는 시대에 와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말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아빠의 육아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힘을 내야 하는 이유이지요.


아빠의 생각이 건강해지면 집안에 활기가 돕니다. 아빠가 리딩해야 아이들도 신납니다. 집보다는 흙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 밖으로 손쉽게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빠입니다. 심지어 아이들의 사회성은 아빠에게서 배운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다시 말해 아이를 위해서는 아빠의 생각이 가벼워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아빠가 건강하면 오늘 하루도 좌절 놀이 중인 엄마에게도 강력한 힘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허무해하는 아빠를 질책하지 마시고, 그 들이 힘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세요.


retro-1321078_1280.jpg <어머님, 그 흰 용기 말고요. 힘을 낼 수 있는 용기 말이에요>


몇 년 전 허무함에 잠을 못 이루던 육아 천재 시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긴 터널의 끝은 '사치스러운 감정'이라고 정의 내린 뒤 마음이 편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아등바등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기 위해서였죠. 답은 쉽게 찾아지질 않았습니다. 시간만 흘러갔고 이 느낌의 원인을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져 갔습니다. 메모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원인을 찾기 위해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출퇴근을 반복하고 멍 때리는 일상이 계속되던 날, 우연히 다시 읽어본 그때 그 메모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진단이 나왔습니다.


"나, 남자다”

“이 허무함의 원인은 ‘홍길동’ DNA가 그리워서다”


진단으로 내린 병명은 '홍길동 DNA'였던 것이었습니다. 호형호제하지 못하는 그 홍길동의 모습이 아니고, 도둑질이나 도적질을 해보고 싶은 모습도 아니었습니다만, 남자답게 행동하고 정의롭게 살아 나가야 할 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긴 늪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육아에 빠져있었기에 나를 잃고, 남자의 모습을 잃어 가는 느낌 때문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아이와 함께 행복에 겨워도 모자랄 판국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새로운 울 타기라 만들어지고 그 속에 갇혀버린 듯한 느낌,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온전하게 나를 위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시간이 그리웠던 것이었죠.


심지어,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업무 따위는 내일로 미루고 헐레벌떡 퇴근을 했지만 막상 집 앞에 다 달아서는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는 제 모습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 버튼에 압력이 가해지는 순간 나 만의 시간은 단 1분도 생기지 않겠구나라는 잡음이 머릿속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드라마 <미생> 최귀화 배우님의 열연 같은 모습이 저에게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러다가는 내가 망가지고 내가 가족들 조차 망가트릴 것 같았습니다.


201497031414888899.jpg "아, 행복한데 집에 들어가기 싫다"#tvN 드라마 <미생> 중에서


불현듯 과거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유턴'을 꿈꾼 것은 아니지만, 과거를 그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였던 춘의 삶을 누리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행복이 과거의 행복과는 너무 다른 부류의 것이라 당황스러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해보고 싶었던 것들 이나 아직 이루지 못한 것 들을 해 내보고 싶은 '시간'과 '여유'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방전이 돼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 낡은 자동차처럼 사는 것 같아 허무해졌습니다. 그래서 깊은 늪으로 빠져들 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무언가를 더 배우고 싶어 졌습니다. 궁금한 과제는 더 알아보고 싶어 졌고 언젠가는 꼭 도전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다시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습니다. 놀랍게도, 계획이 생긴 그 날 그 시간 이후로 허무했던 육아 천재의 방황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렵게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됐지만 현실을 똑같았습니다. 육아 분담이 줄어들거나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모든 것이 다시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육아 자체를 즐겼던 시간은 추억이 되어버렸지만, 육아가 끝나면 찾아오는 나만의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잠들면 해보고 싶었던 일을 '기획'할 수 있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때문에 다시 또 하루하루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painting-421036_1920.jpg <아니라니깐요. 이런 탈출 아니라고요. 그러지 마세요, 현기증 난다고요>


어쨌든, 저는 ‘목숨 걸고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호리호리한 와이프에게 떠 넘기듯 ‘탈옥’하는 것은 아니었고 깜깜했던 기분에서 탈출했습니다. 그 시간을 견뎌내고 오늘까지 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메모장이 없었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지 섬뜩합니다. 육아도 다시 즐기게 됐고, 아이가 잠들면 원하는 공부도 했고, 심지어는 책까지 출판해서 베스트셀러 작가까지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와이프에게 역할이 몰려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와이프의 용기와 응원 아래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고 터널에서 탈출 성공했습니다.


육아 선배, 그것도 터널에서 탈출 성공한 육아 선배가 오늘도 육아에 지친 아빠를 위해 마음의 평온을 찾는 법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합법적으로 육아를 탈출할 수 있는 아빠의 전략이라는 과격한 이름으로 말이지요. 동물 습성을 숨기고 사는 이 시대의 착한 젊은 남자-아빠들과 대화를 본격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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