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법, 문화예술 생태계를 지탱하는 힘

예술법의 사회적, 경제적, 예술적 역할

by sseonni side up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언젠가부터 신년을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는 듯 거창한 목표를 앞세우기보다 하루하루를 주체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일상을 쌓아보자고 생각했다. 아주 사소한 예를 들어보면,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는 것을 지양하고 하루 일과에 이끌려 시간을 보내기보다 내가 예측하고 주도하는 일정으로 하루 보내기 등. 매일을 이렇게 단순하지만 능동적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매 달 등의 주기로 (소위 메타인지처럼)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며 앞으로의 (목표가 아닌)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조수용 『일의 감각』

P.76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이 정해지면, 거기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그 주변을 계속 맴돌며,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좋아해 보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감각의 시작입니다.

P.95 그 지루할 정도의 오랜 변화를 통해 제가 가장 구현하고 싶었던 게 바로 '안정감'입니다.


큰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 2025년에는 관습처럼 굳어진 내 성향과 취향을 다듬어보는 하나의 분기점으로 만들어보자 생각한 것은 최근 조수용 작가의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심신일여(心身一如) -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말처럼, 생각이나 고민보다 행동이 다듬어진 마음 상태를 만들어주는 경우가 많기에 올해는 부단히 그리고 의식적으로 내 주변의 것들을 좋아해 보려고 노력해야겠다. 긍정적인 말과 열린 마음으로 취향의 모수/범위를 넓히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환경과 안정감이 무엇인지 차분히 묻는 과정. 모르긴 몰라도 결국 중요한 것은 ‘선택하지 않아야 할 것을 버리는 용기’라는 말을 실천하게 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고와 경험을 많이 해보자고 결심하며, 문득 처음 브런치 포스팅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그때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느낀 시선과 고민을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해 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실제로 그때그때의 관점을 글로 정리하다 보니 문화예술의 경계가 생각보다 모호하고 수동적인 위치에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았음을 깨닳았다.


좋은 답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좋은 화두를 던지는 것이 먼저인 법!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런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아주 진부하지만 어쩌면 가장 먼저 해보았어야 할 예술의 범위에 관한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려 한다.


"문화예술의 범위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고, 이 생태계는 어떻게 보호받고 확장하고 있을까?"


크게 예술 산업은 세 가지로 역할로 - 창작적 역할을 하는 예술가, 기획적 역할을 하는 기획자, 그리고 행정적 역할을 하는 관리자-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구성은 다시 크게 두 개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예술가와 기획자를 본 생태계의 운영자(player)라고보고, 예술 산업의 범위를 규정하고 생태계를 확장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행정가를 시스템 (backbone)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대중은 이 생태계를 더욱 원활하게 발전하고 안정적인 활동을 지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탁월한 성과를 내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star player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획기적인 이벤트나 인물만큼이나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행정적 역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그럼 여기 행정적 역할은 어떤 것을 말할 수 있을까?


행정적 역할은 크게 '금융과 법'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번 포스팅에서는 (그동안 언급한 적이 있었던 금융이라는 자본적 측면 이외에) 예술의 범위를 규정하고 그 용도성에 더 실질적인 영향을 제공하는 '예술법'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문화예술계(Art & Culture) 도식화 이미지 ⓒsseonni side up




예술의 범위와 역할을 규정하는 예술법


우리는 '예술'이라는 것을 정의할 때 어떤 개념과 정의를 떠올리고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미(美)'와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실제로 이마누엘 칸트는 '판단력 비판 (Critique of Judgment)'이라는 책을 통해서 예술을 미학적 경험으로 정의하며, 이러한 미적 판단은 개인적 취향을 넘어 보편적인 판단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칸트의 주장으로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라는 범위에 포함되는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 시각적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는 작품들도 많을 뿐 아니라 - 괴기스럽다고 느끼는 예술작품도 많다 -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이 타인에게도 동일한 미적 감정을 유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체감할 수 있다. 고로, 예술은 반드시 아름다움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지 않으며, 훌륭한 예술작품 및 예술가에 대한 평가 또한 시대 및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되고 변화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다양한 정의와 개념 및 가변성을 모두 포괄하여 실생활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예술이 사회와 산업에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규범과 역할을 규정하는 질서로서 우리는 '예술법'을 두고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캐슬린 김 『예술법 』

P.30 예술은 반드시 미가 아니다. ‘좋은' 예술에 대한 평가가 시대나 장소에 따라 다르듯, 미에 대한 기준 또한 시대별로 제한된 의미를 지녔으며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예술법의 역할 1. 사회적 가치


이번 포스팅을 하면서, 법적인 지식이 전무한 내가 '예술법'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세계를 논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술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행정적 역할 중 하나로서 법체계를 이해해 보고, 예술법이 이 생태계의 영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비전문가적 시선에서) 정리해 보려고 한다.


가장 먼저, 예술이 사회의 문화적 가치와 윤리적 기준을 반영한다고 보고, 예술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능하며, 공공의 질서와 안전을 보호하고, 표현의 자유와 책임을 조화롭게 다루는 사회적 역할로서 예술법을 살펴보려 한다.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기울어진 호(Tilted Arc)* 사례] - 관련 기사 링크


미국의 정부 건물 및 상업용 건물에 설치된 예술작품들은 종종 공공미술과 관련된 법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와 관련한 다양한 사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로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작품 사건'을 언급할 수 있으며, 관련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작품 (출처: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20170719.010300811090001)


1981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연방청사 광장에 설치된 리처드 세라의 강철조각판 ‘기울어진 호(Tilted Arc)’는 (연방정부 건물을 지을 때는 건축비용의 0.5%에 해당하는 금액을 예술작품 설치에 지출해야 한다는) 연방정부 규정에 따라 제작된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이 설치되자마자, 해당 작품이 사람들의 자유로운 보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논란에 휘말렸으며, 17만 5000달러짜리 작품의 철거를 둘러싼 청문회가 열렸다고 한다. 예술계 인사들은 작품의 장소적 특수성을 강조하며 철거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고, 연방정부 직원들은 작품이 자신들의 유일한 휴식처를 방해한다고 항의했다. 치열한 논쟁 끝에 결국 배심원들은 4대 1로 철거를 결정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미국 정부가 작가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계약에 의해 작품의 소유권은 정부로 이전되었기에 정부의 소유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등이 판시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위의 사례 하나로 예술법의 사회적 가치를 보호하는 역할을 뒷받침하기에는 역부족이겠지만, 공공 미술이 대중의 심리와 사회적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그것이 법적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당 사례에서는 작품이 철거되었지만, 반대로 회사가 단순히 작품 제작비를 지불했다고 해서 소유권이 이전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 존재하는 VARA(Visual Artists Rights Act)예술 작품의 변경, 훼손, 제거를 제한하며, 예술가에게 작품에 대한 도덕적 권리를 보장하는 법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고로, 공공장소에 설치된 예술 작품을 무단으로 변경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법적 책임을 초래할 수 있음은 물론, 예술 작품을 하나의 사회적 가치로 인정하는 안정장치로서 예술법의 역할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예술법의 역할 2. 재산적 가치의 보장


다음으로, 예술법이 보호하는 예술품의 재산적 가치를 다음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좌) Georges Rouault의 Circus Trainer(1915) / (우) Georges Rouault의 The Crown(1907)


[ 조르주 루오(Georges Roualult) vs 전속 아트릴러의 상속인들 사이의 법적 분쟁 ]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는 살아있을 때 806점의 미완성 작품을 자신의 전속 아트 딜러에게 제공하기로 하였고, 이 작품들은 갤러리 작업실에 두고 작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아트 딜러가 사망한 것을 계기로 발발하였는데, 미완성인 806점의 작품에 대해서 상속인들은 루오의 작품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했였고, 아트딜러 상속인들은 작품의 소유권과 관리권을 주장하며 법적 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법원은 '저작인격권'의 원칙에 따라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의 주인이며 스스로 완성작이라고 인정하기 전까지 양도 및 매매가 불가능한 점을 들어 이전의 계약은 무효라고 판시했다고 캐슬린 김의 『예술법』에 언급되어 있다.


이 사건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미묘할 수 있는 예술작품의 상속과 소유권 문제를 다룬 사례라는 점과, 예술작품의 재산적 가치와 저작권에 대한 개념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책에는(p.161), '많은 경우 원저작자는 작품의 출간을 위해 저작권을 출판사에 양도한다. 타인의 고용에 의한, 즉 법인 등의 사용자 기획하에 업무상 작성하는 저작물인 업무상 저작물의 경우에는 창작자의 사용자가 저작권자가 된다. 결과적으로 저작권은 작품 창작보다는 시장의 유통 과정에서 많이 이용된다'는 내용도 나와있다. 실제로 예술가가 자신이 창작한 작품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예술작품의 재산적 권리가 창작자와 상속인에 의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음은 매우 당연한 권리이지만, 이런 당연함이 보편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예술 생태계를 보호하고 있는 중요한 안정장치라고도 생각한다.


추가적으로, 관련 내용을 찾아보다 문득 과거에 미술 시장에 발을 들였던 때가 떠올랐다. 본래 미술시장은 작품을 작가에게 직접 받아오는 '프라이머리(Primary) 마켓'과 이미 거래된 작품들이 거래되는 '세컨더리(Secondary) 마켓'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프라이머리 마켓에서의 거래는 상대적으로 명확한 비율로 이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세컨더리 마켓에서는 작품이 재판매될 때마다 거래 상황이 달라지는데, 한 작가의 초기 작품이나 특정 시기의 작품이 1차 시장에서 판매되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현상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창작자인 작가가 해당 수익의 이익 배분에 참여하지는 못하기 것이 대부분이기에, 과거에는 작가 입장에서는 아쉬운 마음이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다 - 물론, 작품의 가치가 시장에서 인정받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말이다.


이런 마음은 필자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최근 예술법을 공부하다 보니 실제로 관련 쟁점을 해결하고 재산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하여 '추급권' 또는 '재판매 로열티 제도'라는 것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이 제도는 1920년대 프랑스가 베른협약에 따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사망한 예술가의 유족들을 돕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독일, 영국 등에서 인정되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도입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 법이 도입되는 것이 미술시장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양가적 의견이 있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안정적인 미술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미래에 한국에도 예술품의 경제적·재산적 가치를 보다 세부적으로 다루는 법들이 도입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예술법의 역할 3. 문화적 가치의 보장


마지막으로, 2016년 한국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던 단색화 대표화가 이우환의 위작 논란 사건을 언급해보려고 한다 - 이 사건은 8년 만인 2024년에도 완결 나지 않은 듯 보인다 (관련기사).


이우환 '선으로부터(1978)'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268DOP5KTF)


[2016 이우환 위작 논란 사건]


2016년 한국의 거장 이우환의 작품을 둘러싸고 위 논란이 터졌다. 화랑업자와 골동품 판매상은 알고 지내던 작가에게 위작 판매 수익금의 50%를 대가로 4점을 모작하게 한 뒤 가짜 서명을 했으며, 이 중 3점의 위작판매로 13억 2,500만 원 상당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이 사건은 위작 방지와 예술품의 문화적 가치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는데, 예술법이 작품의 진정성을 어떻게 지키는지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예술법은 저작권 보호를 통해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문화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작품의 진정성과 창작자의 의도가 존중될 수 있도록 한다고 보여진다. 또한, 위작 방지를 통해 작품의 문화적 가치가 훼손되는 것을 막고, 작품이 불법 복제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아주 단편적인 사례이고 이 사례가 비단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는 것에만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예술법이 예술작품의 사회-문화적 영향을 고려하여, 그 가치를 법적으로 지키고 있다는 것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예술법이라는 울타리가 예술의 사회•경제•문화적 역할을 보호하고, 관련 생태계의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조금이나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위의 내용은 비법조인의 시선에서 아주 단편적인 면모만을 조명한 것이지만, 이번 포스팅을 통해 의도했던 바는 문화예술 생태계를 지탱하는 구력은 뛰어난 예술가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기획자뿐만 아니라, 이들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재산적, 문화적 보호적 장치를 제공하는 행정적 시스템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해보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예술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그 변화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흐름을 반영한다는 점. 예술법 역시 이러한 가변성에 대응하며 하나의 유기체처럼 문화예술 생태계를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것이 필수적이란 점을 깨달으며, 잠시나마 복잡하고 어려운 예술법의 영역으로의 첫 번째 시선의 확장을 마무리해 본다. 다음 포스팅까지 stay tuned-!



캐슬린 김 『예술법 』

P.43 결국 예술품의 진품성이나 가치성은 법원의 증거 형량, 예술 전문가들의 안목, 시장의 반응 중 어느 한 가지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