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사케가 가르쳐준 혁신과 성장의 가치
최근 누리호 4차 발사 성공 뉴스를 접하며, 이 눈부신 성과 이외에 눈에 띄었던 것은 국내 위성을 우주로 띄우는 데 함께 참여한 다양한 기업과 스타트업들이었다. 여러 벤처 기업들이 큐브위성 탑재로 참여하며 국내 우주 산업 생태계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우주에서 작동하는 자동 인공심장 제작 3D 프린터 등 첨단 기술을 선보인 기업이었다.
국내 사례에 더해 일본에서도 흥미로운 우주 실험을 볼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이색적인 사례는 일본 대표 사케 브랜드 ‘닷사이(獺祭)’의 Moon 프로젝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닷사이는 미쓰비시중공업과 협력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우주 공간에서 사케를 양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 프로젝트는 2040년대 달 거주 시대를 상정해 우주 환경에서도 삶의 풍요를 연구하고, 장기 체류 중에도 술을 통한 여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관련 소식에 100ml 분량의 ‘닷사이 문’ 사케는 1억~1.1억 엔에 예약 판매되었으며 수익금은 우주 개발에 기부될 예정이라니, 참 기발하면서도 똑똑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사케(일본식 청주)를 넘어, 주류 브랜드에서 이렇게 진보적인 도전을 하는 기업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닷사이에 대해 찾아보게 되었다. 친근하진 않았지만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점이 많은 브랜드라고 생각하던 중, 최근 서울 레스토랑 알렌에서 열린 닷사이 콜라보 디너에 초대받아 브랜드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행사에는 사쿠라이 카즈히로 사장님이 방한하였고 운 좋게 메티즌 (월평균 600만 뷰를 기록하는 국내 리딩 F&B 기반 콘텐츠 커뮤니티 플랫폼) 매체와 인터뷰하는 자리에도 동석할 수 있었는데, 이 시간을 통해 느낀 점은 닷사이가 단순히 맛있는 술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할 뿐 아니라, 조금씩 지속적으로 진보하고 도전하는 철학을 실제로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Moon 프로젝트’가 닷사이의 도전을 증빙하는 가장 혁신적인 사례일지 모르지만, 이런 철학과 가치관은 다양한 방면에서 발현되고 있었는데.. 단적인 예로, 닷사이가 2023년 9월 미국 뉴욕주 하이드파크에 설립한 양조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북미에서 생산하는 사케라니!
일반적으로 일본 사케, 즉 니혼슈라고 불리려면 일본산 쌀과 물로 만들어져야 하지만, 뉴욕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이 주류는 ‘Dassai Blue’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현지 환경과 재료에 맞춰 제작된다고 한다. 이번 행사를 통해 처음 접한 이 뉴욕 프로젝트는 단순한 마케팅 시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눈여겨볼만했다. 다양한 국적과 문화가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상징적인 도시 뉴욕에서 술을 빚고, 이 술이 현지 사회에 하나의 문화로 뿌리내리길 바라는 방향성 자체가 이 프로젝트의 취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뉴욕 양조장은 단순한 생산 시설에 그치지 않고, 테이스팅 공간과 교육 프로그램까지 갖춘 문화·체험 공간으로 운영되며, 사케가 단순한 술을 넘어 문화와 경험, 글로벌 교류와 연결되는 상징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점을 보면, 닷사이는 변화와 혁신을 자신만의 색깔로 유연하게 흡수해 나가는 진보적인 브랜드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일본 브랜드라고 하면 ‘장인 정신’이나 ‘헤리티지’처럼 오래 지켜온 가치를 먼저 떠올려 왔는데, 닷사이의 성장을 접하고 나니 그런 고정관념이 오히려 부끄러워졌다. 단편적이지 않은 닷사이의 도전과 접근 방식이야말로, 이 브랜드가 해외에서도 진정성 있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양조장의 200년 역사를 차치하고) 지금의 닷사이 문화를 만들어온 것은 지난 35년간 이어진 끊임없는 혁신의 결과라는 점에서 이 브랜드의 도전은 개인적으로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더욱 인상적인 점은 이러한 혁신의 근간에 놓인 철학이 의외로 매우 직관적이고 단순하다는 사실이다. ‘누가 마셔도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술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경영 철학은 화려한 수사보다 본질에 집중하고 있달까! 닷사이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더 많이 파는 것도, 일본의 니혼슈를 대변하는 것도 아닌, ‘닷사이’라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이라고 느낀다. 사케에 담긴 내러티브가 사람, 도시, 그리고 경험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성장하는 것이 닷사이가 보여주는 도전 정신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연말이다. 정갈하고 올곧아 보이는 ‘닷사이 소노사키에(Dassai Beyond)’ 한잔이, 올해 나는 얼마나 소신 있게 한 해를 보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내린 많은 판단과 만족의 척도가 외적인 가치에만 치우쳐 있지는 않았는지, 해보지 않은 일이란 이유로 안전지대에 머물진 않았는지, ‘해내겠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소신 있게 해 왔는지, 어쩐지 한 잔의 사케에서 참 많은 서사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니혼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느낄 수 있는 깔끔하고 정제된 맛, 누가 마셔도 맛있다고 느낄 술. 그리고 그 신념을 ‘소노사키에(Beyond)’라는 이름에 담은 닷사이를 보며, 다가오는 2026년에는 조금 더 닷사이처럼(?) 살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혁신이라든지, 도전이라든지, 어쩐지 거창하게 들리는 말들도 그 기저에는 조금씩 성장하고 변화하는 시간의 겹이 있음을 이 브랜드가 몸소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내년에는 아주 작고 막연했던 것들이 하나씩 뿌리를 찾아가도록 도전하는 시간을 가지자 다짐하며, 올해 마지막 포스팅을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