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의 변주를 경험하다
10월 마지막주 월요일, 제2회 Next Gastronomy 2025 Korea 포럼이 파라다이스 시티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포럼은 La Liste(라 리스트) 1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세계적인 미식 거장 Guy Savoy (기 사부아) 셰프와 Eric Ripert (에릭 리페르) 셰프가 연사로 참여했으며, David-Pierre Jalicon (다비드-피에르 잘리콩), 이규민, 배진범, 김경연 등 다양한 전문가들도 함께해, ‘헤리티지와 지역성을 담은 미식 문화의 현재와 미래’와 ‘글로벌 소비자 트렌드에 부합하는 차세대 미식 경험’을 주제로 강연과 대담을 진행했다.
국내에서도 F&B 관련 다양한 행사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번 포럼은 관련 산업을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고자 하는 취지가 인상 깊었다. 구체적으로, 첫 번째 세션에서는 건축가 다비드 피에르 잘리꽁의 ‘헤리티지를 잇는 건축 철학이 미식 분야에 주는 영감’ 그리고 한식진흥원 이규민 이사장의 ‘전통과 지역에서 출발하는 한식 미식 문화의 국제적 확장과 미래 가치’ 강연을 통해서, 전통이 어떻게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어진 두 번째 세션에서는, 라이프스타일 및 소비 트렌드를 해석하는데 데이터가 매우 신뢰도 높은 지표로 활용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모빌리티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석하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와 데이터 인사이트를 적용한 VIP 플랫폼 전략은 실생활에도 접목되는 내용이라 흥미로웠다.
포럼이 크게 두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지만 전반적인 인사이트는 결국 하나의 공통된 흐름으로 귀결된다고 느꼈는데 이는 - 헤리티지와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혁신이 오늘날 글로벌 소비자 트렌드를 주도하며 차세대 미식 경험을 제공하고,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각도에서 F&B 산업을 조명한 이번 포럼을 통해, 미식이 더 이상 단순히 ‘맛있는(美) 음식(食)’을 먹고 즐기는 행위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이제 미식은 ‘음식을 통한 오감의 경험’ 그 자체를 의미하며, 그 영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음이 분명한 현상이다.
특히 에릭 리페르 셰프가 언급한 사찰음식은 이 흐름을 대변하는 대표적 사례로 보였는데 - 사찰음식은 단순히 한국의 식재료와 조리법을 넘어, 인내와 겸손, 자비심 등의 가치관을 체험할 수 있는 K-문화로서의 미식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식의 경계가 확장되는 현상은 외부의 자극이나 일시적인 트렌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인사이트도 주목해 볼 만했다. 기 사부아 셰프가 대담에서 강조했듯,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혁신의 원천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
이번 포럼을 통해, 다양한 시도와 창의적 변화의 근간에는 개인과 지역,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문화적 헤리티지에 담긴 진정성이 자리하고 있음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한 혁신, 과거와 달리 한식으로 분류되는 범위의 다양성도 이를 잘 방증한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완벽한 한식 조리법을 통한 맛의 구현보다는 오감을 자극하는 경험에 집중하는 미식 문화 또한 의미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 어쩌면 이런 현상은 경험의 밀도와 빈도가 높을수록 소비자의 가격 저항성이 낮아지는, 이른바 ‘경험경제(Experience Economy)’의 한 측면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해 본다.
단순히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오감을 자극하는 특별한 경험을 창출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특히 몇 년 전부터 눈에 띄었던 ‘We Are ONA’라는 스튜디오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022년 Simon Jacquemus의 결혼식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접하면서, 자크뮈스 디자이너의 감각을 야외 공간에 그대로 구현한 주체가 어디인지 검색하다 알게 된 에이전시 ‘위아오나(We Are ONA)‘.
이 크리에이이티브 컬리너리 그룹은 파리를 시작으로 전 세계 각지에서 몰입형 팝업 다이닝을 선보이는데, 다양한 협업을 통해 식사를 하나의 경험으로 연출하는 특징으로 미식과 예술이 교차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특정 공간에 국한되지 않은 그들의 다이닝은 한 끼의 식사를 통해 매우 사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소비자의 뇌리에 특별한 추억을 남기기 때문이다.
비록 ‘위아오나‘의 작업이 헤리티지를 논하기엔 역사가 짧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내는 가치와 경험의 방식을 헤리티지를 기반의 창의적 변주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경험의 확장을 향한 이들의 치밀한 설계는, 감각 또한 하나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분야를 가로지르는 혁신을 매 프로젝트마다 증명하며 새로운 헤리티지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지 않은가, 감히 생각해 본다.
미식, 패션, 디자인, 예술 등 서로의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 점점 무의미해지고, 이 모든 것을 하나의 문화로 바라보게 되는 요즘이다. 소프트파워(soft power)’를 관통하는 것은 종종 애매하고 모호하게 ‘감각적’이라는 말로 치부되곤 했지만, 이제 그 감각 또한 치열하고 정교한 설계의 영역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미식’이라는 주제를 통해 확인해 본다. 감각의 영역은 더 이상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의 경험이 중첩되며 형성되는, 설계 가능한 언어이자 전략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감각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구체적인 경험의 장면 속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파리 7구의 한 비스트로가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도 그곳이 구글 평점 4.5점을 받았거나 라리스트 상위권에 올랐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투박했던 계절의 공기와 식당 안의 온도, 그리고 그 식사를 함께한 사람들과의 좋은 감정이 남긴 감각의 잔상 덕분일 가능성이 더 큰 것이다.
오늘날의 똑똑한 브랜드는 이러한 ‘감정’을 잘 활용해 감각 기반의 장기적 충성도를 구축하고, 소비자와 브랜드 간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는 전략을 실현하고 있다. 이제 단순히 음식이나 리테일에서의 단편적 경험을 넘어,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가치를 어떻게 학습시키고, 감각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된 경험을 전달할지가 더욱 중요해진 시대임을 다방면으로 실감해 본다.
헤리티지 기반의 창의적 변주, 그 기저에는 이처럼 치밀하고 치열한 관찰이 자리하고 있음을 느낀다. 감각은 결국 특정한 개인의 경험을 통과해 문화가 되고, 그 문화는 다시 또 다른 경험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나는 어떤 감각과 스토리를 가진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곧 내가 어떤 문화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혁신이라는 화려한 포장지 이면의 정성적 경험의 잔상이 한 개인을, 그리고 개인을 아우르는 집단을 움직인다는 사실은 비단 식문화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