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ecial J Jul 08. 2017

#10 Boracay never get old.

다시찾은 보라카이!

2010년 필리핀에 거주할 때 이후 2번째로 보라카이를 찾았다. 어찌나 뻔한 여행지인지, 한국에서 4시간이만 가는데다가 싼 티켓도 넘쳐난다. 나도 프로모션을 통해 15만원 내외로 인천-깔리보 왕복 티켓을 구매했다. 아무리 뻔한 여행지라고 해도, 겨울에 여름으로 여행을 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그렇게 다시 보라카이를 다시 찾게 되었다. 



역시 뻔하다.

보라카이는 역시 뻔했다. 한국사람이 못해도 30~50%를 차지하고 있다. 그에 맞게 한국업체들도 넘쳐난다. 어찌나 한국 사람이 많은지 마트를 가면 한국인가? 라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거리에 있는 삐끼들이 대부분 기초적인 한국말을 한다. 가끔은 아주 유창한 사람도 있다. 필리핀 가이드가 트와이스 노래(너무하다는 그 노래)를 틀면서 따라하고 있어서 신기해서 물어봤다. "어떻게 한국말을 그렇게 잘해요?" "나 한국말 잘해~ 쇼미더머니보면서 공부했지, 시즌1 제시나올 때부터 다봤어~." 흠...그래서 반말만 하나보다. 그렇다. 보라카이는 뻔했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최초의 식민지는 보라카이다 라는 말이 나올까? 그렇게 뻔한 여행지로 나는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뻔하지 않다.

하지만 나의 여행은 뻔하지 않았다. 여행에서 준비라고 1도 해본적이 없는 나였다. 특히 필리핀 여행에서는 말이다. 어디를 가든 코이카 단원들이 있었기에 가서 현지 정보를 듣고 어디를 갈지 결정하는 식이었다. 숙소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숙소를 정해본적은 없다. 아고다? 부킹닷컴? 그런 사이트가 있는 줄도 몰랐다. 내가 숙소를 구하는 방식은 경치좋은 혹은 편리성이 좋은 동네를 골라 집어 1~2시간 (가끔은 반나절 가깝게) 숙소를 10곳 정도 보고 결정하는 식이었다. 꽃보다 청춘에서 하는 무대포였다. 다행인 것은 한번도 노숙을 해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집에서 자야하는 위기에 처한적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번 필리핀에서도 그렇게 여행할 계획이었다. 나의 여행메이트는 동료와 친구의 중간쯤에 있는 직장동료였다. 처음에는 내가 큰소리 치며 전에 내가 묶었던 곳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가서 보니 7년전에 왔던 곳에 건물이 바뀌고 길이 바뀌어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는 것이었다. 동료의 표정을 살폈다.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숙소를 5개쯤 보고나니 조금 지쳐 보였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친구가 아니라 동료인게 다행인 순간이었다. 친구였다면 100% 화를 냈을 것이다. 그렇게 지쳐갈 때쯤 우리는 합리적 가격의 숙소를 찾았다. 그것도 흥정을 해서였다.

"우리 3일 머물꺼니까 좀 깍아줄꺼지?"


공항에서도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은 픽업 패키지를 통해서 공항에서 보라카이까지 이동을 한다. 하지만 이는 대략 5만원의 비용이나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나는 절반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내가 직접 가서 하는 것이다. (물론 불안감이라는 걸 수반해야한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필리핀어를 그럴싸하게 하는, 심지어 가끔은 half 필리피노 냐는 질문을 받았던 내가 아니가? 또한 관광지를 여행하며 깨달은 것은 관광지에는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역시나 공항앞에는 벤들이 보인다. "300페소 오케이?" 바로 오케이할 내가 아니다."아니아니(필리필어로.) 너 더 깍아 줄 수 있잖아" 어차피 떠나는 길이기에 벤 기사는 할인해 줄것이다. 더군다나 필리핀어를 사용한다면 말이다. " 그래그래 타, 대신 다른 손님들한테 애기하면 안되" 뒤를 보니 중국인 부부가 있다. "당연하지, 말 절대 안해"




그래도 보라카이는 보라카이다.

Boracay never get old. 내가 처음 보라카이를 여행했던 2010년에는 나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때는 어렸고 지금보다 훨씬 미성숙했다. 그랬던 만큼 사람들과의 트러블도 많았다. 하지만 신나는 일도 많았고 새로운 일들도 많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이도 많아졌다. 성숙한지는 모르겠으나, 나름대로의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게되었고 사람들과의 트러블도 덜 겪게 되었다. 대신 그렇게 기쁘고 행복한일이 있어도 그 감이 덜하게 느껴졌다.


보라카이는 여전했다. 어디서도 볼수 없는 새하얀 모래와 걷기 힘들만큼의 해변을 가지고 있었다. 파란하늘과 야자수는 여전했다. 노을도 여전했다. 세상을 빨갛게 물들여 모든게 아름다워보이는 시간을 만들었다. 해가 진뒤 보라카이도 여전했다. 지나가면서 경상도 사투리로 "여기 직이네" 하는 말하는 청년들을 보았다. 그 말그대로 직이는 곳이다. 불쇼, 파티, 모래 위에서 이태리 음식을 즐길 수도, 칵테일을 즐기며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그것도 매우 저렴한 가격에.


남들이 다가기에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아도, 

보라카이는

보라카이다.



내안의 불편함

필리핀을 여행할 때, 내 안의 불편함이 있다. 특히 관광화 된 관광지 말이다. 보라카이처럼.

보라카이 혹은 필리핀이 한국 최초의 식민지로 표현되는 것만 봐도 내가 가끔은 침략자로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너무 예민종자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래! 도! 여행과 관련된 모든 수발 드는 이는 필리핀 사람이고, 그런 서비스를 누리는 사람은 90%이상이 외국인인 것이 나는 불편하다. 필리핀은 사실 세계적으로도 서비스업 특히 가사일을 하는 가사도우미를 수출하는 나라다. 필리핀 사람이 중동쪽으로 많이 일하러 간다는 애기를 들었을 땐 몰랐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환승할 때, 면세점을 둘러보다가 나는 여기 직원의 다수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다소 충격적이었다. 가사도우미도 마찬가지이다. 홍콩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다가 학대당해서 죽은 필리피노라든지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세계화의 하인들"에서 가사도우미에 관한 내용은 볼 수 있다. 외국에서도 자국에서도 필리핀 사람들이 주변인이 되는 듯한 느낌은 항상 불편함을 준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런 감정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 짝이없다. 서로 공생이라고 하기에는 저울이 너무 한쪽으로 기운것 처럼 보여지는 것이다. 


언제가는 이런 불편한 마음없이 필리핀을 여행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9 오래된 놀이터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