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픔픔 Nov 06. 2021

남편도 울 시간이 필요해

지금은 그를 도울 시간

집이 갑자기 고요해지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남편이 깜빡 잠이 들었나?'

'아님... 이어폰을 끼고 넷플릭스를 보고 있나?'


거실에도 없고,

화장실에도 없고,

굳게 닫힌 서재 방을 보니 여기 있구나 싶었다.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남편... 여기 계십니까?



문을 열었더니 남편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무언가를 들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고요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흐느낌과 함께...


남편이 들고 있던 것은 

어머님이 생전에 남편에게 남겨주신 편지였고,

남편의 플레이스트에는 

'엄마가 딸에게'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중한 이의 빈자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기 힘들다.



문을 열고 난 뒤 그 짧은 몇 초간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이 시간이 남편에게 너무 필요하기에, 돌이키고 싶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ㅠㅠ

'아........... 내가 바보였다.'


남편은 인기척을 느끼자 흘리던 눈물을 멈췄고,

나는 말없이 그냥 그를 꼭 안아줬다.

그리고는 다시 방문을 닫고 나왔다.




서로를 위해

감정의 빈자리를 내어주기


결혼 3년 차. 서로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르는 게 참 많다는 것을 발견하는 시기다. 결혼 직전 남편은 어머님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내드리는, 정말 큰 아픔을 겪었다. 오랜 시간 아파하는 그를 보며 때로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하는 답답함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것은, 그저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겪고 있는 아픔의 깊이와 넓이를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은 없기에... 내가 무언가 그것을 해결해주려 나서기보다 오히려 감정의 빈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신기했던 점은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던 남편이 곁에 묵묵히 있어주어 고마웠다는 표현을 해준 것이다. 그는 다 알고 있었고, 다만 아픔의 크기가 너무 크기에 나에게 다가올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었다.


시간 속에서 그는 점점 회복했고, 이전의 그보다 훨씬 단단해졌음을 느꼈다.




남편도 울 시간

지금은 남편을 도울 시간


방문을 닫고 나온 나는 안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남편과 똑같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엄마가 딸에게' 노래를 틀었다.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 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넌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 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매거진의 이전글 무이림에서 하루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