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신혼부부의 좌충우돌 결혼이야기 #3
결혼 후 어머님의 첫 생신.
'시어머니 첫 생신은 며느리가 차려드린다'는 말 때문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코로나 시국에 나가서 밥 먹기도 애매하고, 여차저차 우리집에서 생신상을 차리게 되었다.
그래봤자 주문한 대게찜에 미역국이 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차까지 쓰고 이것 저것 준비에 반나절이 걸렸다)
어쨌든.
약속이 있으셨던 어머님은 시간 맞춰 오시고, 시간이 여유로우셨던 아버님은 좀 더 일찍 집에 도착하셨다. 주방에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 앉아계시던 아버님께서 다정한 말투로 나에게 물으셨다.
"그래 우리 애가 집안일은 잘 도와 주니?"
안그래도 그동안 집안일 때문에 쌓인 게 많았던 나는 "아니요^^"라고 웃으며 대답했고, 아버님은 "너 임마 그러면 안돼"라며 남편을 꾸짖어 주셨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아버님께선 나를 위해 좋은 마음으로 그런 질문을 던져주신 거라는걸 알지만, 사실 '도와준다'는 말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맞벌이를 하는 우리 부부에게 집안일은 '함께' 해야 하는 일인데, 왜 내가 남편의 '도움'을 잘 받고 있냐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거지? 이게 내 일인가?
사실 요즘은 '집안일을 돕는다'는 이 표현의 잘못됌에 대해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이런것들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이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아직도 보편적이진 않은가?)
그리고 한가지 에피소드를 보태자면 '남편이 집안일을 돕는다'는 이 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사람이 우리 엄마일지도 모른다...ㅎ
때는 바야흐로 약 13년전인 2010년즈음.
금요일 밤 친구들과 실컷 술을 마시고, 다 함께 우리집에 와서 잠을 자고 일어난 토요일 아침이었다. 엄마는 골골대는 우리를 위해 해장국을 끓여주셨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엄마와 친구들이 함께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럴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주제 '남자친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엄마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결혼할 남자를 만나면 집안일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렴. 그리고 '당연히 내가 도와줘야지'라고 말하는 남자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해"라고.
이 말에 친구들은 다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당연히 도와준다는 남자면 자상한 남자 아닌가요? 좋은 남자 아닌가요?'라며 물었고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도와준다'라고 말하는 건 기본적으로 그 일이 여자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거라고. '같이. 함께 해야지' 라고 말하는 남자와 만나야 한다고. 너희는 맞벌이 하면서 남편에게 집안일을 '도움'받지 말라고. 그건 너희가 온전히 해야할 일이 아니라고. (아, 물론 우리 부모님은 아직까지도 맞벌이를 하고 계시고, 그래서 엄마는 그런 것들에 대해 평생 쌓인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준다'라는 표현은 너무나 당연하고,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지 않던 표현이었다. 스무살 젊은 세대이던 우리에게조차 그 날 아침 엄마의 말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1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 친구들은 그 얘기를 한다. 그 때 어머님의 그 말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 말씀으로 인해 생각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아버님의 질문을 받고 나는 12년간 잊고 살던 그 토요일 아침이 떠오르며 잠시 생각이 많아졌다.
이렇게 또 한번. 7년을 만나고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서로의 가족에 대해 모르는게 투성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하루가 지나갔다.
앞으로 나 잘 해 갈 수 있겠지.....?
#신혼일기 #며느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