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사랑하는 지예에게
블로그로 서로 소통한 건 한 달 쯤이었어요.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이었죠. 전날 밤에도 지예는 글을 올렸다며 얼른 봐달라고 했어요. 늘 하던 말이었고, 늘 있던 일이라서, 그게 마지막 대화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죠. 그 무렵의 지예는 꽤 분주해 보였어요. 하루에 하나씩 글을 올리면서,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댓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글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어요. 특별히 이상하다고 느낄 만한 기색은 없었고, 그저 예전의 지예처럼 자기 세계에 열심히 빠져 있는 모습이었죠. 그래서 저는 그 밤도 그냥 평소처럼 지나간 하루라고 생각했어요.
다음 날도 별다를 게 없었어요.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잠깐 쉬고 있었죠. 그때 전화가 왔어요. 지예의 절친이었는데, 받자마자 울고 있더라고요. 말을 잇지 못하고 숨만 고르는 소리가 한참 이어졌어요. 지예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했어요. 괜찮다면 부천에 있는 병원으로 와달라고요. 그 말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들려서, 저는 한동안 대답도 못 했어요.
"보이스 피싱 아니죠?"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어요. 지예는 안산에 산다고 했는데 왜 부천이지, 무슨 일이 이렇게 갑자기 생길 수 있지, 계속 그런 생각만 맴돌았죠. 혹시 이상한 전화는 아닐까 싶어서 병원에 직접 전화를 걸어봤지만, 환자 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는 말만 들었어요. 그런데도 이상하게, 돈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게 더 마음에 걸렸어요. 그저 얼굴만 보러 와달라는 말뿐이었거든요. 그때도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누군가 잘못 말한 것 같았고, 조금 있으면 “아니다”라는 전화가 다시 올 것 같았죠.
결국 택시를 탔어요. 병원 주소를 말하고 나니, 그제야 현실에 발을 얹은 기분이 들었어요. 날은 겨울이었고, 2월에서 3월로 넘어가던 꽃샘추위가 있던 날이었어요. 택시 안 히터가 너무 세서 숨이 막히는 것 같았어요. 차 안은 답답한데, 창문 밖은 유난히 차가워 보였죠. 가로등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스쳐 지나가고, 신호에 걸릴 때마다 택시는 잠깐씩 멈췄어요. 그 사이사이에 지예가 했던 말들이 떠올랐어요. 죽고 싶다고, 빨리 끝내고 싶다고, 살아서 뭐 하냐고 했던 말들요. 보광동 집에서 같이 지내던 날들, 이불을 널던 모습, 치킨을 시켜 먹던 밤, 세부 여행을 이야기하던 시간들이 순서 없이 겹쳐졌어요. 눈물은 났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어요. 이게 정말 내 일인지 계속 확인하는 기분이었죠.
병원에 도착했을 때도 현실감은 없었어요. 먼저 와 있던 친구가 저를 보자마자 울면서 말했어요.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요. 의사가 오늘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대요. 그 말을 들으면서도 저는 계속 생각했어요. 어제도 카톡 했는데, 어제도 멀쩡했는데, 이게 말이 되나 싶었죠. 모든 게 거짓말 같았어요.
지예는 중환자실에 있었어요. 원래는 면회가 안 되는 곳이었지만, 상황이 급해서인지 시간을 정해 5분씩만 들어갈 수 있게 해 줬어요. 들은 말로는 의사는 이미 지예가 오늘 밤을 넘길 수 없다고 판단했데요.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가족들 인사를 해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준 거라고 하더라고요. 감사한 배려지만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저는 새벽이 되어서야 지예 얼굴을 봤죠. 그때 처음 알았어요. 사람이 눈을 깜빡이지 않는 모습이 이렇게 낯설 수 있다는 걸요. 너무 자연스럽지 않았어요. 동공반사가 없는 눈동자가 그렇게 무서운 건지 저는 몰랐어요. 지예는 아무 표정도 없이 초점 없이 눈만 크게 뜨고 있었어요. 침대 위에는 수많은 선들이 연결돼 있었고, 그 선들 덕분에 지예가 아직 이곳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꿈속 장면을 보는 것 같았어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데, 동시에 전혀 닿지 않는 느낌이었죠.
면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지예 가족 쪽에서 교회 사람들과 목사님이 들어가는 걸 봤어요. 마지막을 지켜준다는 말이 들렸던 것 같아요. 저는 계속 물었어요. 정말 방법이 없는 거냐고요. 울고는 있었지만, 그 상황이 내 일이라는 감각은 끝내 오지 않았어요. 그냥 잘 짜인 악몽 같았죠.
시간이 지나면서 지예를 알던 사람들이 하나둘 병원에 모였어요. 다들 아무 말이 없었죠. 사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들 병원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 있었고, 누군가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는데, 다들 저를 바라봤어요. 아마 제가 지예와 가장 오래 붙어 있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그 시선들이 부담스러웠지만, 동시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설명을 하면 이게 현실이 될 것 같았거든요.
"지예가 아침에 머리가 너무 아프고 토할 것 같아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대요. 병원에 가라는 말을 듣고 119에 전화한 뒤, 그때 바로 뇌출혈이 왔다고 했어요. 안산에는 큰 병원이 없어서 부천으로 옮겨졌다고요."
다들 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계속 고개만 끄덕였어요. 이해했다기보다는, 그냥 듣고만 있었어요. 평일 새벽 내일을 맞이해야 하는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죠. 저도 내일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에 택시를 탔어요. 정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기분으로 택시를 탔어요. 그때 집 방향이 같은 친구 한 명과 함께였는데, 둘 다 너무 지쳐서 “눈 좀 감자”는 말밖에 하지 못했죠. 창밖은 여전히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했어요. 꽃샘추위 때문인지 유리창이 뿌옇게 흐려져 있었고, 저는 그걸 멍하니 보고 있었어요. 지예가 있는 병실은 따뜻했을까, 아니면 나처럼 답답했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 모든 게 사실이 아니라면 좋겠다고, 잠에서 깨면 평소처럼 지예 글에 댓글을 달고 있을 것 같다고, 그 정도의 바람만 겨우 품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