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자서전을 쓰는 것이다.
워드 화면에 탭 기호 표시등 하나가 깜빡깜빡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표시가 마치 나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처럼 느껴졌다. 뇌의 신경계가 각막을 보호하려고 눈꺼풀을 자동으로 닫았다 뜨게 만드는, 그 생물학적 반응과도 닮아 있었다. 탭 기호는 마치 내가 무슨 글을 쓰기를 기다리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를 조용히 재촉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 공백에 단 한 줄도 채워 넣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켜보는 워드는 참으로 어색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는 대체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것일까.
글을 쓰지 않은 지 벌써 십여 년이 되었다. 예전의 나는 정말 쓰고 싶던 이야기가 많았는데, 지금은 단 한 글자 쓰는 게 너무 망설여진다. 글을 쓰고 싶던 열망도, 재능도, 욕심도 모두 사그라진 이 시점에 내가 왜 다시 글을 쓰고 있는지 나조차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늘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죽기 전에 자서전을 쓰고 싶다고, 꼭 그렇게 하고 싶다고. 내가 그렇게 주변에 떠든 것은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정말 글을 놓아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누구보다 큰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어릴 적 내 글은 정말 말랑거리고 부드럽다고 생각했다. 만득이처럼 만지면 그 모양이 바로바로 만들어지는, 촉감이 너무 좋아 계속 만지고 싶은 그런 글. 그런데 지금은 단 한 글자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딱딱하게 굳은 곧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직전의 폐기물 만득이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사실 글을 쓰지 않는 동안 그런 기분을 계속 느끼며 살아왔다. 내 감성이 삶이 굳어버린 그런 삶. 그래서 나는 계속 글을 쓰는 것을 꿈으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죽기 전에 꼭 이루고 싶은 꿈을 자서전 쓰기로 정해버린 것 같다.
굳이 그 많고 많은 글 중에 자서전이라고 말한 이유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그냥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꼭 내 지난날들의 일들이 타인에게 공감이나 교훈을 주지 않아도 되지 않는가. 그냥 내가 살아왔던 한 시절을 기록해서 남겨두고 싶었다. 나는 수필이 가장 진정성 있는 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소소한 삶의 이야기와 가치관을 문자를 남기는 게 가장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 낭만을 이제서야 실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왜 그 낭만을 지금에서야 찾게 됐나면.
그냥 내가 게을렀다는 사실을 그동안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십 년간 아예 글쓰기를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부업느낌의 웹소설도 몇 번 써보고, 몇 가지 떠오른 망상으로 소설도 몇 번 써봤지만 다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재능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진짜 쓰고 싶던 이야기가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왜 글을 쓰지 않느냐 물어본 적이 있다.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바빠서, 먹고사는 게 힘들어서. 사실 이건 패배자의 마인드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다시 글 쓰고 있어.
수필(手筆) 손 수에 붓 필. 손으로 직접 쓴 글. 어릴 적 장래희망을 묻는다면 수필가라고 적었다. 소녀였던 나는 그 하얀 종이에 써져 있는 장래희망 칸에 수필가라고 적으면 너무 뿌듯해했다. 나는 수필이라는 것이 너무 아름다운 행위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지금도 생각이 같다. 아름다운 문자로 내 생각을 남기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 것인지. 내 생각을 글로써 오롯이 담는 것.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워드에 있는 제목 없음.이라는 단어 말고 다른 제목으로 저장할 생각이다. 이를테면, 20대의 오지수. 30대의 오지수와 같은 제목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