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입시생의 고백
초등학교 5학년, 부모님께 허락받은 TV 화면 속에서 나는 드라마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처음 봤던 드라마는 대장금이라는 드라마였는데, 이영애가 연기하는 그 세상이 어찌나 매료가 되던지. 나도 저런 하나의 세상을 쓰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변변한 말재주가 없어 친구들 사이에서도 소심했던 나는, 나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 주인공들을 종이 위에서 재창조하고 싶었다. 저녁 10시, 어둠 속 브라운관 밖으로 새어 나오던 빛줄기가 끊이지 않던 그날, 나의 꿈은 드라마작가로 정해졌다.
연출가가 아닌 작가를 꿈꾼 것은, 드라마에서 펼쳐지는 세계 그 자체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촬영장의 세트, 카메라의 움직임,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대본을 토대로 움직였다. 드라마의 뼈대를 짓는, 대본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열망했다. 언젠가 먼 미래의 어떠한 작업실, 내 취향의 원목 테이블에서 차가운 음료를 먹으며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드라마를 접하고 나서 나의 장래희망은 언제나 한결같이 드라마작가, 극작가였다. 입시를 앞둔 열아홉까지, 나는 자잘한 글들을 쌓아 올렸고, 그 걸음이 나를 서울예대 극작과의 문턱 앞으로 이끌었다.
면접장 복도, 나는 그날의 온도를 잊을 수가 없다. 손에는 땀이 흥건했고, 펑퍼짐한 내 치마교복은 어디로 가야 할지 긴장으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면접장소 앞에는 과잠바를 입은 선배들이 나를 맞이했다. 긴장해서 얼어붙은 나를 보며 따뜻하게 웃으며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내심 그들이 걸친 과잠바가 부러웠다. 나도 저 잠바를 입고 이 복도를 걸으며, 소란스럽게 글공부를 하고 싶었다. 면접장 안에서 내 이름이 호명이 되어 문이 열리기까지, 나는 덧없이 선배들의 과잠바만을 응시했다. "오지수"라는 석자가 들리고 나서야 겨우 면접장 안을 쳐다볼 수 있었다.
10대의 나는 내가 글을 잘 쓴다고 확신했다. 모 기업 독후감대회에서, 학교 글짓기 대회에서, 대학 문예지에서 내 이름은 늘 불렸다. 큰 상은 아니었더라도 늘 도전하면 입상은 했으므로, 내 나이또래에 맞는 재능을 갖고 있음을 의심치 않았다. 그날 작가라는 노선을 잡고 난 이후에는 상장과 책이 쌓였다. 내 꿈이 작가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답했다. "그래. 넌 작가가 될 거야." 나는 나의 이 세계가 원고지와 펜, 혹은 노트북만 있으면 충분할 거라 믿었다. 방 안에 앉아 문장을 고르고, 이야기를 직조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글쎄. 그런데 인생이 내 뜻대로 되던가. 그 시절의 나는 당연히 몰랐다. 글쓰기 뒤에 숨겨진 세상의 언어들. 사회성, 의사소통, 리더십, 학업태도 그리고 성적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시에는 수상경력과 실기시험만 잘 준비하면 된다는 생각에 너무 안일했다. 글만 잘 쓰면 통과될 줄 알았던 세상은 예상보다 훨씬 더 복잡한 좌표를 요구했다.
서울예대 문창과 1차 전형, 실기시험은 통과했다. 그것은 당연한 결과처럼 느껴졌다. 주어진 주제에 맞춰 문장을 풀어내는 것은 수없이 연습했기에 자신 있었다. 손끝에서 익숙하게 흘러나오는 단어와 자연스러운 문장들.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환호했다. 나는 글쓰기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면접이 남아 있었다.
면접장에 들어서자 숨이 막혔다. 길고 딱딱한 책상, 그 뒤에 일렬로 앉아 계신 교수님들, 그리고 내가 앉아야 할 의자 하나. 나는 그 의자에 주저앉았다. "자기소개해볼까요?" 아주 간단한 질문. 하지만 내 입에서는 아무 말이나 흘러나왔다. 분명 연습했건만 생각처럼 잘 말하지 못했다. 심장의 쿵쿵거림이 귓가에 맴돌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었다. 평소 원고지에선 술술 써 내려갔을 문장들이, 입 밖으로는 단 한 글자도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대체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이 자리에 앉아있는가.
"왜 극작과에 지원했나요?" "어떤 작가를 가장 좋아하나요?" "최근에 읽은 책은 뭔가요?"
질문들이 파도처럼 쏟아졌다. 나는 분명 입을 움직였고, 뭔가 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제대로 된 대답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목소리는 떨렸고, 문장은 중간에 끊겼으며, 시선을 둘 곳을 찾지 못해 허공만 헤매었다. 한 교수님이 내 질문을 듣고 답했다 "상상력이 부족하네요" 나는 참으로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면접은 끝났다. 몇 분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짧고 영원한 시간이었다. 나는 몽롱한 채 면접장을 빠져나왔다. 복도의 형광등이 너무나 밝았고, 다른 지원자들의 웅성거림은 멀리서 들리는 소음처럼 느껴졌다. 학교 정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길거리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서있었다.
왜 나는 글이라는 지면 위에서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데, 입이라는 통로로는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는 걸까. 홀로 있을 때는 단단한 나인데, 사람들 앞에 서면 왜 이렇게 쉽게 부서지는 걸까. 내 글은 만득이처럼 만지면 모양이 잡히는 말랑하고 부드러운 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장에서의 나는 단 한 마디도 제대로 뱉어내지 못한 채 딱딱하게 굳어버린, 곧 폐기될 듯한 ‘폐기물 만득이’가 된 기분이었다.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예상된 결과였다. 서울예대 말고도 문창과로 넣은 몇 개의 대학에서도 쓰나 쓴 입시 실패를 맛봤다. 그날 이후, 나는 극작과가 아닌 다른 전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으므로 다른 방향으로 빠른 전환이 필요했다. 나는 작가라는 꿈을 꾸어오면서 글만 잘 쓰면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작가 또한 사람들 앞에 서야 했다. 책이 팔리면 인터뷰를 하고, 어쩌면 강연을 하고, 출판사와 독자들과 대화해야 했다. 작가로서의 성공 전에도 사람 간에 소통을 잘하고, 경험으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때의 나는 사회성이 전혀 없는 그냥 내 세상에서만 쓰기만 잘 쓰는 그냥 평범한 10대 여자였다. 그냥 책상에서 글을 끄적이는 게 전부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릴 적 장래희망 칸에 '작가'를 적을 때, 나는 항상 내 먼 미래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은 영업을 하며, 마케팅 기획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원하는 일이 맞느냐는 물음에는 쉽게 대답할 수 없지만, 잘하는 일이냐고 말할 때는 단호하게 맞다고 끄덕일 수 있다. 지금은 사람들이랑 소통을 잘하고, 갈등이 생기면 나름의 노하우로 잘 해소하지만 그때의 나는 너무 무던했다. 그래서 예전에 쓴 글을 보면 뭐랄까 단편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름 10대의 상상력이 귀여울 때는 있지만.
결론은 작가란 어느 자리에서 글을 쓰면 그게 작가라는 것이다. 꼭 문창과나 극작과를 나와야 하나? 오히려 그때 극작과를 가지 않은 게 나에게 더 맞는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지금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있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