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사색
어느 모임에서 어떤 사람이 내게 물었다.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그때 나는 사랑은 그 사람이 잘 먹고 잘 자는 게 좋은 마음의 모양새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의 안부가 괜히 신경 쓰이고, 하루가 어떻게 흘렀는지 궁금해지는 것. 그 시절의 나는 그게 사랑의 정의라고 확신했다. 그러다 생각했다. 20대 초반의 내가 그 질문을 받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20대 초반의 나는 눈빛 하나에도 심장이 뛰고,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던 시절이었다. 누군가 말한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들어진다느니, 종소리가 귓가에 맴돈다느니 하는 유치한 표현들조차 그때의 나는 이상하게도 사실처럼 느꼈다. 그 사람의 우주가 내 세계와 동기화되는 것 같았고, 내가 사랑하는 한 남자의 존재는 내 삶 전체를 덮는 큰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처음 맞이하는 이별은 상상 이상으로 아팠다. 정말 팔 하나를 잘라내는 것 같은 통증이었다. 무엇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로그아웃해버리면, 나는 빈 창을 멍하니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못내 서러웠다. 그땐 슬픔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친구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마치 그 말들을 흘려보내야만 마음이 조금 가벼워질 것처럼 굴었다. 평범한 20대 여자아이들이 겪는 평범한 이별의 방식이었다. 쓸데없이 시간이 흐르고, 감정이 소모되고, 후유증을 견디며 조금씩 나아지는 과정.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20대 후반의 사랑은 조금 더 현실적이었다. 그 사람의 세계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고, 이해되지 않아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곤 했다. 사랑은 서로의 모양을 억지로 아니, 마음으로 맞춰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그 생각을 따라가는 데 유난히 느렸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애써 건넨 배려는 때로 상대에게 전혀 닿지 않았고, 결국 서러움이라는 모양으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곁곁이 쌓인 마음들은 어느 순간 볼멘 말로 터져 나왔고, 이미 마음의 균열이 깊어진 뒤였다. 사람의 마음을 다 가질 수 없듯, 결국 놓아줘야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때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인정하는 순간, 20대 후반의 사랑도 조용히 끝이 났다.
그 뒤 몇 년간 나는 혼자였다. 단순히 혼자가 편했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고, 외롭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부터 바로 서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이 알아서 온다.” 그 말을 어느 순간부터 굳게 믿었다. 내 자리를 단단히 세우지 않으면, 어떤 감정도 안정적으로 머물지 못한다는 걸 조금씩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는 누군가를 만나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할 즈음 새로운 사람이 다시 내 삶에 찾아왔다.
30대의 사랑은 전보다 차분했지만 완전히 성숙한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귀엽게 어리광을 부렸고, 사소한 문제로 서운해했으며, 평범한 데이트를 반복했다. 작년에 엄마에게 울며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나를 자기 방식대로 맞추려고만 하고 나를 이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네 남자친구는 엄마가 아니잖아.” 그 말이 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그 누구도 나를 무조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에게 기대는 방식이 다르고, 서로가 채워줄 수 있는 부분과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이해와 타협 속에서 나는 또다시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서로가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결국 가치관의 차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과의 만남도 마무리되었다. 아무리 사랑의 힘으로 맞추려고 노력해도, 살아온 환경과 고정된 관념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또 한 번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만나는 동안의 나는 이전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믿는다. 만약 그 사람이 인생에서 조금 더 여유로운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면, 우리가 맞이한 결말도 어쩌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에서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관계는 내게 조용히 알려주었다. 서로의 시간과 가치관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결국은 같은 방향으로 걷지 못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사랑을 정확히 정의 할 수 없다. 사랑이 무엇인지는 나이가 들수록 확신을 담아 말할 수 없는 것 같다.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마음의 계절에 따라 끝없이 모양을 바꾸는 게 사랑이라는 것만 알 뿐이다. 그 수많은 변주 속에서 하나 남은 것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나의 성장의 흔적일 것이다. 서툼에서 성숙으로, 감정에서 관조로, 열정에서 이해로 나아가는 과정. 다양한 사람의 만남을 통해서 얻은 것이라고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라는 것뿐이다.
보다 확실한 것은, 이제 나는 나에게 다정하게 구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에 대해 서서히 명확해지고 있다. 말투가 부드럽고, 행동이 조용하고, 내 마음을 조심스럽게 다루려는 태도를 가진 사람.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보려 하고, 내 속도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나 역시 훨씬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내 시절에 맞는 사람이 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조용히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