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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Feb 27. 2023

작별들 순간들, 배수아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글쓰는 카페 운영자, 심리상담가, 작가, 선생님..참, 다채롭네. 다양한 직업군을 소화하기 위해 1인 CEO라는 거창한 프레임을 걸고 살아 온 시간이 3년이 넘어간다.


네이버 카페, 블로그, 인스타그램에 글을 쓰고 나를 홍보하는 시간, 나의 브런치는 '브런치 북' 발행 시기에만 열리는 숨겨진 일기장 같은 곳이다.


배수아 신간 산문집 [작별들 순간들]을 읽다가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또다른 책의 제목이 나의 문장이 되어, 비밀 일기장 같은 이 공간에 나의 작별, 나의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덩치가 제법 큰 내가, 다이어트에 늘 실패했던 내가, 어느새 납작 엎드려 긴 한숨을 토해내는 어린 아기의 움츠림을 닮아갔고 영화 속 비련의 주인공처럼 울고 웃다가...그렇게 아파하다가 살이 제법 빠졌으니, 숨겨 놓은 나의 일기장에 적어도 그 이유를 솔직하게 쓰고 싶었다.


오늘이 그날이다....


시절마다 다른 인연이 있었다. 짊어진 삶의 무게를 한결 가볍게 해주고 싶었다. 에니어그램으로 분석하고 무의식에 숨겨놓은 과거를 하늘에 풀어 놓을 있도록 돕고 싶었다.


상담을 하는 시간은 그들의 호흡보다 더 정결하게 나의 호흡을 달랜다.전이되지 않도록 나의 마음을 토닥여할 만큼, 사실 나는 상담사로 살아가기에 턱없이 아기같다. 나를 분석하고 나를 드러내는 훈련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상담할 때마다 내담자의 슬픔에 같이 울어버릴 정도로 나약했을 것이다. 나를 지도했던 교수는 상담하기에 마음이 너무 여리다고 했고, 살아 온 무게가 있어서 역전이가 될 거라고...상담사로 살아가는 것이 꽤 힘들 거라고,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조언했다.


시절마다 인연이 다르듯, 그 인연이 가지고 오는 사연이 너무 다르고 무거웠다. 상담이 끝나면 와인 한 잔에 '취해가는 거 맞죠? 이 정도만 마셔도 이미 취한 거 맞죠? 졸린 거 맞죠...?'그렇게 나를 위로하고 달래다가 잠이 들었다. 기도하는 권사라는 또다른 프레임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와인을 마시는 나를 합리화 했나보다.


에니어그램 7번 유형은, '보살핌을 받을 것이다' 라는 메시지가 잃어버린 메시지이다. 균형이 깨진 가정에서 극한의 가난을 몸에 체감하기까지 '장애인'이라는 시대가 준 질병까지 있으니 '폭음, 폭식'이라는 죄성과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광적인 도피'를 하는 왜곡된 삶까지...참 두루 두루 구구절절했다.


다행인건, 7번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5번 유형을 지향해야하는데 작가로 살기위해 책을 읽고, 눈을 풀어 삶을 관조하며, 시간을 정해 사색하고 사유하니...이렇게 이렇게 삶을 정갈하게 유지했다.


고요.회색.

얼마전 우리는 동시에 로베르 팽제의 책[르 리베라]를 읽기 시작했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 같은 책을 두 권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곧 이 책이 팽제의 다른 책인 [파사칼리아]를 위한 일종의 사전 작업임을 알아차렸다-배수아/작별들 순간들P193


한 겨울의 복판에 그를 만났다. 내 책을 읽고 내 블로그 글을 읽고 내 인스타그램을 보았던 그는 이미 다채롭지만 아픈 화려하지만 쓸쓸한 나를 겨냥했다. 그렇다 '사랑'이라는 미묘한 감정을 건드렸지만 그는 겨냥했다.


화려한 삶을 내려놓은 밤에 고요한 공간을 찾아서 회색의 커텐으로 다시 암막을 만들어버리는 나의 쓸쓸한 몸 구석구석을 겨냥했다. 결국 나는 그에게 항복했다.그가 가진 배경과 환경을 잊고 그의 품에서 행복했다.


고요.회색

이것은 [파사칼리아]의 첫 문장이다.[파사칼리아]를 읽는 경험은 독특한데, 그것을 읽는 동안 나는 그와 별개인 또다른 언어의 세계를 여행하게 된다. 그것을 읽는 동안 나는 서로 다른 톤으로 서로 다른 내용을 속삭이는 두 개의 목소리를 동시에 듣는다.-배수아/작별들 순간들 P194


책을 덮는다.


배수아가 전하는 고요하고 회색인 문장들이 다른 톤으로 들린다.

마치 그가 건넨 목소리처럼.


그와 헤어지고

사람들은 물었다.

아마,

괜찮냐는 질문에

아무렇지 않다고 말했던 것 같다.


네 말처럼, 세상에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같은 사람은 없어. 누군가 떠나버린 이유에 다른 누군가는 찾아오지. 누군가 내다 버린 것들을 다른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들여놓는 것 처럼. 그래서 우리는 영영 혼자는 아닐지도 몰라.-가랑비메이커 장면집/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나란히 바라보았던 풍경을 잊기위해 사진첩 그의 흔적을 지우려는 나의 손가락이 잠시 흔들렸다. 사람은 가도 흔적은 남는다는데, 함께 들은 음악 위로 어차피 추억은 살아날텐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집을 지울 필요가 있나...

언젠가 머물렀던 추억, 어느 틈에 놓쳐버린 그날을 기억해도 된다. 그때 다시 펼쳐보자. 그래, 그래도 돼...


배수아 작가는 말한다. 책을 덮으면 사라지는 목소리, 그래도 아무것도 기록할 능력이 없는 채로, 또다른 특정할 수 없는 목소리 속으로 여행하면 된다고.

배수아 작가가 어둠 속에 웅크린 채로 가방을 들고 나가는 의식을 치루듯 나 또한 희박해지는 태양빛에도 다시 고요와 회색을 찾으며 고요한 침잠의 시간을 가지려한다.


정확하고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그와 상반된 5번 유형을 지향하지 않으면 삶의 탄력이 사라진다고 하지 않는가.


유난히 버거웠던 겨울, 간신히 이겨낸 나의 계절이 끝나간다.


다시 오겠지


나의 시절인연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말라는 노랫말이

입가에 맴도네.


때가 되면 찾아올 거야

새로운 시절인연.


https://cafe.naver.com/healingspacesabina/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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