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언어 유희

유희에게, 언어가.

마음이 다치고 닫히다.

by Sabina

Prologue.


평소에 안아주었던가?

칭찬을 들은 적이 있었나?

품에서 자 본 적이 없고, 몸에서 악취가 나도 공중목욕탕에 혼자 보냈는데 말이다.

정상적인 두 개의 발로 걸어 다니는 아이여도 일곱 살 나이에 혼자서 공중목욕탕을 갈까?

나무 목발 고무는 물에 취약한지라 그날도 나는 물기가 많은 공중목욕탕에서 네 개의 다리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끌고 사람 없는 구석에서 혼자 목욕을 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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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시작되니 가슴이 빵빵해지고 허리는 잘록해졌다.


왜 그날이 기억날까?


일곱 살부터 공중목욕탕 세신사(洗身士), 즉 때 밀어주는 아줌마와 정분이 날만큼 자주 갔던 그곳에 사춘기 소녀가 되어야 엄마는 처음으로 나와 함께 목욕을 했다. 백수남편 대신 안 해본 일없는 엄마는 돈을 잘 벌기 시작할 때부터 목소리가 커졌고 거친 인부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배운 것이 욕설인지, 엄마에게 등을 보이고 앉아있는 사춘기 소녀는 아마 잔뜩 긴장했으리라.

"여자는 말이야, 몸 관리를 잘해야 해. 구석구석 씻어라. 밑구녕은 더 철저하게 씻어야 돼!"

"아... 엄마, 제발 조용히 말해"

"정미야, 여자는 젖꼭지가 중요한데 말이야. 어디 보자."

"아..."

"젖꼭지가 커야 남편 복이 있대"

"아! 엄마, 좀!"

"왜, 어때서 이년아. 그런데 넌 젖탱이는 큰데 젖꼭지가 좀 작다. 큰일 났다"

큰 목소리와 욕설이 무서워서 참기에는, 공중목욕탕에 장애인 딸 혼자 보내고 이제 겨우 등 한번 밀어준다는 엄마에게 반항할 마음 꽉 차있고, 다리 한쪽이 부실해 몸매에 신경이 잔뜩 쓰이는 사춘기 소녀는 젖꼭지가 작으면 남편 복이 없다는 말에 발끈했다.

엄마, 그게 말이야? 소야?


그게 딸에게 할 소리냐고 한번 더 소리치고 싶은 그때, 엄마는 말했다.

말이다, 이년아!



그때 이후로 엄마와 목욕을 한 적이 없다.


첫 책을 내고, 소설을 써보고 다시 에세이를 쓰고 원고(原稿)를 투고(投稿)하는 날, 웃음이 예쁜 개그맨의 부고(訃告) 소식을 들었다.

햇빛 알레르기 지병이 있었던 그녀는 늘 민낯으로 방송을 했지 아마.

그녀가 내뱉는 개그 언어는 시간이 지나야 웃긴 블랙코미디였는데, 어느새 그녀의 말과 말 사이에 진짜 어둠이 드리워지고 방송에서 보이지 않을 때쯤 옛날 중국 기(杞) 나라에 살던 한 사람이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 하고 침식을 잊고 걱정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는 기우처럼 걱정했더랬다.

그런데 그녀가 죽었다. 햇빛 알레르기 지병이 원인인지, 삶의 회환인지, 연예인으로 살아가면서 받는 악플때문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미 우리는 가짜 뉴스에 무섭게 질려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평소 이슈 없던 그녀에게도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는 수많은 댓글, 그 선플과 선플 사이에 악플이 있었다.

-햇빛이 무서워서 안 나왔나?

-그 정도 가지고 죽냐?

-그래서 화장을 안 했구나...

그리고 나는 읽었다. 태양을 피하고 싶다는 가수의 노래를 인용하며 이미 죽은 그녀에게 아무렇지 않게 칼날을 휘두르며 -언어유희였습니다.라고 쓴 말장난을...

말을 재미있게 꾸미는 표현법으로 동음이의어의 활용, 유사 음운의 활용, 도치, 발음의 유사성을 활용하는 방법이 언어유희인데 말이다.

그들은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는 마음 없이 언어를 마음대로 조작하고 쓰면서 자극적 재생산을 하고 있었다.


비단 연예인뿐이랴.

상담사로 살아가는 지금, 부모로부터, 형제로부터, 친구로부터, 사회로부터 받은 언어에 의해 마음이 다치고 닫힌 사람들이 찾아온다.

사실, 언어유희는 문장 안에서 언어가 춤을 추듯 노는 것인데 어째서 비꼬는 말이, 말도 안 되는 미신이, 아무 말 대잔치처럼 쏟아지고 있냐 말이다.


어찌 보면 그 옛날 흥부전에 등장하는 놀부 심보의 언어유희는 문장을 살리고 상황을 살리고 웃음을 살리는 해학이 있으니 다행이다.


술 잘 먹고 욕 잘하고 게으르고 싸움 잘하고 초상난데 춤추기,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해산한 집에 개 잡기, 우는 아이 똥 먹이기, 늙은 영감 덜미 잡기, 우물 밑에 똥 누기, 논두렁에 구멍 뚫기, 비 오는 날 장독 열기, 똥 누는 놈 주저앉히기(...) 물통이고 오는 부인 귀 잡고 입 맞추기-{흥부전]


일반적인 사람들은 오장육부를 갖고 있지만, 놀부는 장기 주머니만 한 심술보가 있어 오장 칠부라고 했단다.

도대체 그 옛날 놀부 심보보다 못한 마음으로 쉽게 말을 하고 쉽게 상처를 주는지...


선생님이었고, 작가이며, 상담사인 나는 마음이 다치고 닫힌 사람들을 그냥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물을 주고 비료를 잔뜩 먹여 주었던 화분이 두 동강 날 때 결심했다.

시원하게 두 동강 난 나의 화분에서 보았다. 벌레가 바글대는 흙덩이 내부를.

징그럽고 억척스럽고 비대해진 뿌리들이 뒤엉켜서 결국은 순박한 토기 화분을 두 동강 내고 흩뿌려 놓은 잔해를 보고 결심했다.


바르게 써야 한다. 뿌리만 비대해진지도 모르고 이 말 저 말 다 먹어치우고 순박한 화기를 두동강이를 낼지도 모르니 말이다.

사랑한다고 미신을 들이밀며 부모의 아픔을 투사하는 부모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익명의 가면을 쓴 채 아무 말이나 쓰는 자에게 용기 내서 말해야겠다.


중국 주나라 말기 전국시대의 유물론적 경향의 유가(儒家).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대하여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순자는 말했다.

소인과 성인의 이론이 있는데, 작은 이론으로는 사물의 단서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고, 사물의 단서를 드러내는 것보다는 사물의 본분을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작은 이론은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게 하고, 사물의 단서를 드러내면 분명 해지지만 사물의 본분을 드러내면 조리가 서게 된다.(...) 먼저 생각하고 일찍이 계획하여 잠깐 동안의 말이라도 들을만하며 무의가 있으면서 실속이 있고, 해박하면서도 바른 것, 이것이 선비와 군자의 이론이다-순자 [군자필변]<<을유문화사>>


그의 말을 풀어보면,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은 거짓이 많고 하는 일이 없으며, 위로는 명철한 임금을 따르지 않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화합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내게도 일침이 되는 문장인데, 상담을 하는 사람이니 크게 다가오는 문장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글을 바르게 쓰고 말을 부드럽게 하며 느리고 아픈 자의 문장을 그들의 속도로 들을 것이다.


공중목욕탕에서 들은 엄마의 미신이 설령 맞아서 지금도 그날이 생생할지라도, 장애인의 걸음이 특이해서 몰래 훔쳐보는 사람이 싫어 대로(大路)에서 걸어보지 못했을지라도 이제는 상처 받은 언어를 회복시켜주고 싶다.


언어는 잘못이 없다. 언어는 춤을 추고 싶었을 뿐이다.

아무 말이나 내뱉는 사람들의 말장난, 유희에게 참고 있던 언어가 일침 한다.

그게 말이야? 소야?


말인지 소인지 모를 수많은 언어를 상처 받은 웅덩이에서 꺼내 말끔하게 씻어주려고 한다.

이제 내가 쓰는 글에서 언어가 제대로 빛을 발해 군자의 언어가 되기를 바라며 미약한 나의 언어에게 손을 내밀어 본다.

자, 춤을 춰 보자. 언어야..

자,

네 번째 원고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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