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대학을 나와, 조금 힘든 취업 준비 기간을 보내고, 아슬아슬한 직장생활을 1년 6개월째 진행중인 평범한 여자 사람이다.
나의 부모님은 20살 동갑내기로 처음 만나, 22살부터 30살까지 8년간의 긴 연애를 마치고 결혼하셨다.
그런 길고 긴 연애를 하고 결혼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늘 길고 긴 연애 끝의 결혼을 꿈꿔왔다.
두 분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아빠가 A라면 엄마는 Z랄까.
아빠는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영어 선생님이다. 어릴때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첫 모습은 거실에서 아빠가 신문을 읽거나, 성경을 읽거나, 책을 읽는 모습이었다. 나는 늘 아빠를 선비라고 불렀다.
엄마는 미술을 전공한 삽화가였다. 어렵게 대학교를 들어가서 취업을 일찍 한 엄마는 전공을 살려 신문사에서 정치 관련 풍자 삽화 (요즘엔 많이 없지만)를 그리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늘 톡톡튀고 실수하면 아빠 뒤로 쪼르르 달려가 숨었다.
엄마가 아빠에게 반한 건, 잘생긴 외모(정말 인정!)와 큰 키 그리고 지적인 카리스마라고 했다.
아빠가 엄마에게 반한 건, 순수함(정말 인정!)과 사랑스러움이라고 했다.
지금도 서로 '니가 나에게 먼저 반했네' 라며 투닥거리는 두 사람은 22살에 교제를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아빠는 군대에서 허리를 크게 다쳐 큰 수술을 하고 장애 6등급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아빠에게 아이도 가지지 못할 거라고 했고, 운전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늘 허리에 보조기구를 차고 살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아빠는 엄마에게 헤어지자고 했지만, 26살이었던 엄마는 울면서 3년동안 아빠의 병간호를 했다. 3년간 곁에 있어주는 엄마를 보며, 아빠는 엄마를 죽을때까지 책임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0살이 되던 해 (당시에는 늦은 나이의 결혼이었다 한다) 두 분은 결혼을 했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몇 명의 아이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고, 어렵게 나와 내 동생을 만나게 되었다.
남자친구와 최근 연락이 안되고, 열흘간 그가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연락이 안되는 시간동안 이유를 몰랐던 나는 그에게 나의 감정만을 쏟아냈고, 그는 오롯이 그말을 받고 있었다.
혼자 있어야 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에게는 큰 고민이 있었으나 나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앓고 있었다.
며칠 후, 그가 입을 열어 자신이 연락하지 못했던 이유를 어렵게 털어놓았다. 다 듣고 난 후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엄마가 아빠를 기다린 3년이 떠올랐고, 내가 기다리지 못한 3일이 부끄러웠다.
돌이켜보니 그는 늘 나를 기다려주었고, 들어주었는데 나는 그 3일을 기다리지 못했던 것이다.
긴 연애의 공백기동안 나는 준비되었고, 배려하고, 이해하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와의 연애를 통해 나의 연약함에 다시 한번 부딪히게 되었다.
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의 연약함과 이기심을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웃으며 '아니야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노트를 꺼내 아래의 시를 찾아 적어두었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서정윤, 사랑한다면
그의 날개를 꺾어 내 곁에 두려 하지 않는 것, 그에게 쉼과 힘이 되어주는 것.
엄마가 아빠에게 보금자리가 되어 날아갈 힘을 주었던 것처럼, 그런 사람이 되어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