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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Jan 27. 2023

우붓에 온 판교엄마 01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마시는 커피

아이를 서당에 보내고 마시는 차.


수백년 전 중국에서

차 마시기 좋은 때 Tea Time 을 노래한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기진맥진한 부모라면 이 시간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행복한 지 격공감할 만하다.

그만큼 학교가는 일이란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5번째 한 달살기 여정에서 

발리Bali 우붓 Ubud 의 학교 앞에 마련된 이 커피테이블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를 들여보내고 바이크를 기다리거나 담소를 나눌 부모를 위해 각종 차와 컵, 에스프레소 기계가 놓여있다.



이 별 것도 아닌 친절에 판교에서 온 엄마는 감동을 받는다.

불과 며칠 전까지 분당 학원가의 길에서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몇 시간이나 아이를 기다리거나

주차전쟁을 뚫고 학원건물로 들어가도 앉을 곳이 없어 복도의 버려진 쇼파에서 쪼그리고 하원시간을 기다리던 엄마에게 이 얼마나 따뜻한 환영인가.


서로 얕보일까일까.

언제나 긴장이 계속되는 사교육시장에서 약자인 부모에게 소박한 커피 한 잔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손님에 대한 작은 배려, 진정한 글로벌스탠다드인지는 차치하고라서도, 큰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왜 우리는 여유있게 품위있게 서로를 대하면 아니 될까 이런 생각이 든다.


아이를 데려다 놓고 젊은 엄빠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각자의 일터로 집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나는 혼자 감동을 음미하며 마음에 드는 컵을 골라 커피를 마신다.

담벼락 너머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천국이 따로 없다.


한국의 방학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다.

아이가 둘이고 집에서 일하며 집안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수입이 고만고만한 나란 엄마에게는.

3시간 정도 아이를 맡길 여름캠프가 있는 학원에 아이 둘을 보내면 2주에 한 달 수입에 해당하는 금액이 들어간다.

그런데 점심도 안 먹고 라이딩도 직접 해야하니, 차라리 집에서 떡이 되어 있고 만다. 매우 괴롭다.

그래서 나는 물가가 싸며 아이를 보낼 단기스쿨링이 있는 나라, 말레이시아에서 한달살기를 시작했다. 

첫째가 여덟살 때의 일이다.




5번의 한 달 살기 끝에 아이는 12세가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영어유치원 안가고도 영어로 의사소통하는데 거리낌이 없기를, 무엇보다 열린 마음을 가지기를  바랬다.

나는 육아와 집안일, 일상잡다한 일에서 해방되어 다음 일을 구상할 시간을 가졌고

아이 영어 발음을 면밀히 봐 줄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무엇보다 디지털노마드 생활을 슬기롭게 해 나가는 전세계의 엄빠들을 만났다.


이제 다시 바이크 타고 아이를 데리러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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