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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에 온 판교엄마 06 여백 포비아

애가 집에 있는 꼴을 못보는 한국엄마

by 김지선


발리에 한 달살기 하러 왔는데,

중학생 아이가 호텔에 혼자 있다.

초등생 둘째는 현지 학교로 이른 아침에 가서 수영수업까지 받고 오후에 오니,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것 같은데,

큰 아이는 받아주는 학교가 많지 않아 한 학교에서 trial week가 끝나고 오늘은 하루이지만, 할 일이 없다.


중 2 아이는 이건 이래서 저래서 싫다 가리는 것도 많아서 한 번 데리고 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집에서 혼자 있고 싶다는데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아. 끊임없이 또 할 것이 없나 체험수업이 없나 눈빠지게 검색한다.


왜 나는 애가 집에 있는 걸 그냥 보는 게 힘들까.


긴 겨울 방학이 되기 한 달전 여백이 생기기도 전에 학원 특강 신청 문자가 쇄도 한다. 다니던 영수 학원 뿐 아니라, 역사, 과학, 영어문법특강 종목도 다양하다.

마치 이번 방학에 하나라도 놓치면 다음 학기에 큰 일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고, 특강때문에 여행계획을 잡지 못한다는 말도 한다.


이 모든 것을 뿌리치고 비행기를 타고 발리까지 왔건만

나는 또 여백을 견디지 못하고 검색을 거듭힌다.

아무래도 무엇을 위한 활동인가보다는 공백을 견디지 못하는 습관적인 불안증 같다. 난 그런 엄마가 아닌 줄 알았는데. 어찌된 일인가.


애가 집에 가만히 있는 꼴을 못보는 불안증은 왜 생겼고, 이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여기와서 시간도 많은데 한 번 생각해본다.


외국에 한달살기 와서 short term schooling하다보면 유독 한국아이들의 행동이 눈에 띈다.

안 그런 아이들도 많으나 대체로 아래와 같은 점이 눈에 띈다.

무리짓길 원하거나 배타적이다.

주눅들어 의존적이거나 제멋대로 버릇이 없다.


무리를 지어서 다른 아시아 국적 아이를 구분짓고 혐오 발언을 하는 애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한국의 초등교실에서도 특정 나라는 싫다는 말을 하는데, 여기와서도 한국인 친구무리만 있으면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조롱하기도 한다.

큰일날 행동이다. 소위 국제감각없이 좋게 말하면 촌스러운, 이 날 것 그대로의 아이들을 조용히 피해 다니는

게 상책이다.


물론 안 그런 아이들도 심심찮게 있다. 이런 애들은 현지에서 친구를 며칠만에 잘 사귀고 짧지만 강력한 bonding을 형성한다.


한국에서 아이들은 해야할 일이 많다.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버거운 사교육을 시키다보면, 성과가 안 날까봐 초조한 엄마는 아이에게 애원하거나 윽박지르는 일이 많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갑과 을의 역할을 반복하는 법을 배운다.

꾸역꾸역 힘든 학원을 다니는 의무를 다하는 대신 - 을의 역할-

하기싫은 일을 하게 하는 엄마의 애원과 보상심리에 익숙해져 상전노릇을 하는 - 갑의 역할 -

이 두 가지가 이원화된 모습이 종종 발생한다.


이런 아이는 일견 버릇없게 보이기도 하지만, 실상 본인의 만족감이 높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고, 엄마에겐 측은한 상전이다.


엄마입장은 어떠한가.

애가 집에서 노는 꼴을 못보는 나도

이거해볼래 저거해볼래 하고 자꾸 떠먹이려고 하면서 애한테 저자세로 나가다 문득 뭐하는 짓인가 싶어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학령기를 지나며 점점 아이와 사이가 나빠지고 아이들은 밖으로 돈다. 이러다가 입시가 끝나고 성인이 되면, 자존감이 낮거나 부모 원망을 하거나 누구도 바라지 않는 정서상태가 되는 일을 많이 본다.


남의 집 버릇없는 애 일인줄 알았는데, 해외에 나와보니 내 모습이 보인다.

그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경험하는 중인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 엄마로서 문득 슬프다.

이런 내 모습을 한 발 떨어져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이 여행의 또 다른 성과인가 싶다.


이것 봐라. 또 성과 타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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