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없는 예술인마을

치앙마이 반캉왓예술인마을에서 우리를 돌아본다.

by 김지선


난 꽤 괜찮은 공예작품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로 치앙마이로 갔다.
타이전통방식으로 염색한 인디고 직물, 란나 왕조의 중후함이 풍기는 푸른 색과 갈색빛 도는 실로 짠 자가드 원단,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태국 공예를 상상하며 기대감을 불렸고, 올드시티의 Kalm Village, 원님만의 Sangboon 샵을 구경하고, 아코르체인 호텔 객실에서 탐나는 옻칠 합을 보고 꽤 꿈에 부풀었다.

내가 기대하던 지역전통공예는 재료, 만든 방식에서 그 지역 자연과 사람의 흔적이 드러나는 진정성, 외국인에게는 독창적으로 보이는 어떤 특이성, 그리고 무엇보다 창작자의 존재가 드러나는 드라마틱한 순간이 작품에서 목격되는 것이다. 생각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이런 기대를 안고 반캉왓예술인 마을에 갔다.

나는 여기 들어가서 걷는 30분 남짓 시간동안 정말 깜짝 놀랐다. 관광버스에서 내려 줄지어 들어가는 관광객 무리에 우선 놀랐다. 각 가게마다 전시된 어디서 떼어 온 것 같은 공예품의 퀄은 그렇다 치더라도, 크고작은 공예품가게와 체험부스를 스쳐지나며, 이를 셋트장의 배경처럼 즐기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서 속이 점점 불편해졌다.

사실 공예가 어떻게 AI시대에 살아남을 것인가를 골몰하다 여행을 온 나는

내 자신이 이 쇼윈도에 투영되어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


이 곳에서 공예는 작품도 만든 이도 없는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존재했다. "이것이 예술가다, 수공예다"의 상투적인 어떤 이미지를 설정하고 이 공간전체가 기획되었다.

감성적인(중학생 딸은 이를 갬성이라고 했다) 분위기, 아기자기 올망졸망, 통키타 소리가 흐르고 사람은 줄 서서 갈 정도로 많은데, 누구하나 진지하게 작품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달뜬 분위기를 즐기는 듯 했다.

눈길을 끄는 좋은 작품을 발견하고, 이것을 만든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며, 마침내 작품을 구매하고 이 예술가의 향후 작업을 주의깊게 지켜보거나,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이 작품을 소장한 컨텐츠의 가치가 충분했던 내 컬렉팅 과정과는 정반대의 일이 여기에서는 일어나고 있었다.

공예의 환영이 너울거리나 주체나 실체는 없는 이 모습은 어찌보면 대단한 수공예 브랜딩의 성공이고, 어찌보면 드디어 증발해버린 인간 공예가의 모습이다.

그래도 좀 너무하지 않은가.

이 곳이 예술인마을이라니. 난 단 한 명의 예술인도 예술작품도 보지 못했고, 사람들이 모두 이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즐겁게 눈요기 중인 모습에 두렵고 슬퍼졌다. 동화속 난쟁이 마을처럼 꼬불꼬불한 골목길에 깔린 돌 위로, 사람들이 꽉 찬 곳은 치앙마이 시내 곳곳에 있는 유명 체인커피숍, 퓨전 이탈리안 음식점이었다.

공예가들,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이런 것인가.

"나는 여기있다"라는 존재감이 극도로 약화되고 언제나 엷은 미소를 띈, 속을 알 수 없는 가면을 쓴 누군가, 아무도 아닌 내가 되어 있는 공예가의 모습.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니 이 테마파크는 성공을 거둔 것을 다행이라 해야하나.

거기에는 그들이 없었다.

내가 아는 그들, 건강한 몸으로 확신에 차 하루를 시작해 아침 물레작업을하고, 간단한 점심을 먹고 다음 작업을 위한 흙을 준비하기 위해 토련기를 돌리고, 가장 잡념이 많은 식곤증 시간에 텃밭에 나가 일을 좀 하고, 해가 질 때쯤 가마 불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삶을 살아왔던 자존심 강하고 놀랍도록 성실한, 물레의 원심력을 견디듯 늘 한결같은 중심을 사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 도예가가 없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내 소중한 친구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잃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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