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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Jul 05. 2019

도자기 선물하기 노하우 01.머그컵

돈 쓰는 것은 자신있는 세라믹큐레이터의

경기도에 세 개의 도자 미술관을 운영하는 문화재단에 입사하며 나의 도자기 컬렉션은 시작되었다.

20대 후반의 야망넘치는 어시스턴트 큐레이터였던 나는 손민영 작가의 대나무손잡이 컵을 박스채로 차에 싣고 다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선물했다.

요즘엔 쇼핑몰 광고에도 큐레이션이라는 용어가 종종 등장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낯설었다. 더구나 세라믹큐레이터라는 직업은 더욱 생소했던 터이다. 나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 싶어도 짧은 미팅 시간이 부족하고 뭔가 임팩트도 부족했다.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세라믹비엔날레에서 일하며 인류의 가장 오래된 유산이자 문화코드인 도자를 매개로 한 전시를 기획하는…” 이라는 거창한 설명보다는 이 아름답게 잘 빠진, 내구성있는 물질성 을 뽐내는, 한국적이면서 서구적인 머그컵 하나면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한 번에 설명해 주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특히 한국에 일하러 온 세계각국의 대사관 및 주재원 들 소위 VIP들은 이 작품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도자기 컬렉터, 도자기딜러로서의 내 이력은 이 작품과 함께 새롭게 시작되었다.



손민영, 대나무손잡이컵 Copyright Artist


하나둘 모아 다락방에 넘쳐나는 작품들로 온라인 갤러리를 시작한 지금도 나는 거의 모든 선물을 도자기로 한다.

업무상 뿐 아니라 각종 경조사에,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선물할 일이 참 많다. 고마움과 축하를 전하고 싶을 때 정성스레 포장한 컵을 내밀며 “제가 좋아하는 작가 작품입니다.” 라고 말하면 그 어떤 사람에게라도 잔잔한 감동을 줄 수 있다. 이 직업을 선택하고 가장 기쁜 점은 좋아하는 도자기를 양껏 사서 다락방 수장고에 쟁여놓고, 때때로 선물하는 일이다. 스타벅스 상품권을 사는 정도의 돈을 투자하면 되는데 그 효과는 놀랍다. 선물받을 사람의 이미지, 취향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애정까지도 보여줄 수 있으니 감동어린 칭찬이 돌아올 때가 많다.

손으로 만든 물건의 희소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으니 도자기 선물은 또한 특별하다. 온라인갤러리에서 판매를 시작한 후에는 선물할 작품을 추천해달라는 부탁도 종종 받게 되었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도자기 선물, 그 중에 머그컵 선물 팁을 방출하려한다.


 디테일을 중시하는 디자인 가구 매니아,

이 분들은 일명, 폼생폼사, 예쁘면 된다 라는 프렌치식 사고의 소유자인 듯 보이나, 사실은 미적인 것에도 논리성을 매우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다.  아이폰이 아무리 불편해도 초기 모델부터 충성을 다하며, 예쁘다는 이유로 타이머가 없는 선풍기를 사와서 나를 경악하게 했던 나의 배우자가 대표적이다. 본인 마음에 둔하거나 촌스러우면 보기만 해도 심기가 불편해지는 이 사람들에게는 모던하면서도 세련된, 그리고 기술적 디테일이 있는 작품이 제격이다.

또 등장하게 되는 손민영작가의 대나무손잡이 컵 시리즈이다.

프리츠한센 에그체어의 곡선을 배경으로 한 손민영 대나무손잡이컵(우), 이창화 청화주전자(좌)

백자, 청자, 진사(붉은 색)이라는 한국적인 색깔에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유연한 쉐이프를 가졌으며, 담양산 대나무의 긴장감있는 곡선이 도자기의 홈에 깔끔하게 조립된 이 작품은 미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감탄을 자아낸다. 공정또한 매우 까다로워 대량으로 생산할 수 없어 희소가치가 높다.

손민영작가 대나무손잡이 컵 4가지 색깔, 출처 : 이천시청
손민영, 대나무컵 오리지날 디자인 이미지, Copyright 씨드콜렉티브


디자인감성 충만한 독신남 이라면

디자인 갬성 ~좀 있는 분 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층이 있는데, 바로 독신남, 혹은 독신의 삶을 지향하는 남자들이다. 더구나 커피마니아이기도 하다면 현상화 작가의 작품을 추천한다.

인더스트리얼한 질감의 흙을 이어 붙인 자국이 그대로 보이는 몸체. 도자기를 구울 때 받침으로 쓰는  내열 금속을 그대로 꽂아 손잡이로 만들어 그야말로 쿨하다. 그래도 너무 차가울까 염려되었는지 맞춤제작한 손잡이 덮개를 씌울 수 있다.  매우 심플하면서도 기술적인 노력과 세심한 배려까지가 더해진 이 작품은 확실한 존재감과 스토리 덕분에 그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 이 컵 역시 설거지 할 때 입구 부분을 조심해야한다.


현상화, 작품 이미지, 출처 : 작가 홈페이지

개인적으로 나는 이 작품을 보면 홍콩이 떠오른다.  2014년 홍콩 K11 디자인스토어에서의 팝업전시를 기획할 때 처음 섭외한 작품이다. 당시, 홍콩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던 재벌가의 아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에 이 컵이 소품으로 등장한 여파인지, 작품을 완판하고 두 손 가볍게 돌아올 수 있었다. 얼마전에 화가에게 빌려온 그림을 돌려주며 고마운 마음에 이 작품을 선물했더니 무척 기뻐하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이 화가는 젊은 독신 남성 이다.

현상화, 빈티지머그 디테일, 출처 : 작가 홈페이지



도자기 좀 수집한다는 매니아 라면

이은범 작가의 청자 상감 시리즈를 추천한다. 예나 지금이나 청자 Celadon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신비로운 색과 다루기 힘든 재료의 성격 덕에 가격이 좀 비싸지만 그만큼 소장가치는 있다. 모던 청자의 독보적인 존재인 이은범 작가의 이 컵은 전통청자에  색깔흙을 집어넣어 무늬를 내는 상감기법을 사용하고 이를 다시 연마해서 매트한 질감을 얻어내는 과정을 거쳤다. 2018년 필라델피아 뮤지움 전시를 위해 한정 생산한 이 작품은 만드는 이 입장에서는 노가다의 최고봉이지만,  소장자의 입장에선 높지 않은 가격에 현대청자를 소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은범, 깊은 바다 청자 상감머그, copyright 씨드콜렉티브
이은범, 깊은 바다 청자 상감머그 와 무광청자접시 copyright 씨드콜렉티브
상감을 위해 몸체에 균일한 선을 음각하는 작업장면, 출처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동영상
이은범, 로투스 조형,  copyright 씨드콜렉티브


매사 절제된 매너에 점잖은 사람이라면

이영호 작가의 백자작품을 추천한다.

백자 중에서도 정제된 흙을 사용해 물레성형으로 만들어내는 이 작가의 작품은 세라믹 큐레이터들이 실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영호 작가의 작품이 십수년 전부터 좀 한다는 집안의 혼수와 결혼식 답례품, 저명한 스승의 퇴임선물 등 선물시장에서 각광받는 이유는 “정제됨” 때문이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공방 도자의 특성상, 약간의 비대칭이나 갈색 점들이 늘상 발견되고 이를 운치있게 여기기도 한다. 이에 비해 이 작가의 백자는 그야말로 입댈곳이 없는 깔끔함이 특징이다. 각종 명품을 섭렵하고 그 이상의 플러스 알파를 찾는 중후한 컬렉터들에게 검증받은 작품이다.

이영호, 갈색붓질머그, Copyright 씨드콜렉티브
이영호, 구름무늬 각진머그  Copyright 씨드콜렉티브
이영호, 둥근 구름머그 Copyright@씨드콜렉티브


얼마전, 평소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아이친구 엄마의 생일선물로 이영호 작가의 둥근머그를 드렸다. 어딘지 모르게 품위가 있고 늘 남을 먼저 배려하는 정갈한 인격의 소유자인 그녀에게 어떤 컵이 어울릴까 고심하다가 푸른 점이 포인트로 찍힌 둥근머그를 선물했더니,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생각난다.

선물은 많이 받아보았지만, 자신의 이미지까지 생각한 선물에 감동을 받았다는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이영호, 구름 홍차셋트, Copyright 씨드콜렉티브


화려하면서도 트렌디한 사람이라면

올해 메가 트렌드인 대리석문양에 골드, 은장까지 모든 것을 갖춘 컵이 있다. 양지운 작가의 작업은 이런 고급 소재를 그냥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금속, 도자, 스톤 각 재료의 물성을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다른 혁신적인 재료를 사용한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는 눈물겨운 수작업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간 주목을 받아온 이 젊은 작가의 작품은  최근 루이비통 사에서 운영하는 호텔에 디저트 식기로 채택되는 등 걸출한 이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양지운, 와이드머그 Copyright Artist
양지운, 금연마상감 플레이트 출처 : 양지운작가 홈페이지
양지운, 와이드 머그, 출처 : 양지운 작가 홈페이지



도자 선물의 가성비가 좋은 이유

도자작품은 같은 작가라 하더라도 언제든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한 10여년 전에, 지역축제에서도 넘쳐나던 좋은 도자작품들이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최근에 자연환경의 변화로 재료가 되는 흙의 성분이 바뀌어 어떤 작업장은 실패율이 높은 품목은 단종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또한 작가들이 나이들어 가며, 수작업 강도가 높은 일은 점점 줄여나가게 되어 작품의 가격은 날로 오르고 있으니 그 희소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나는 다락방수장고에서 한 품목이 다섯 개 이하의 수량이 되면 선물도 판매도 멈추고 소장품 목록에 넣는다.


도자는 천 년이 지나도록 멀쩡하다. 오히려 세월의 흔적으로 고풍미를 더하여 유행을 타지 않는 품목이다. 수공이 많이 들어가고 클래식한 형태일수록 그렇다. 사실, 공정상의 까다로움 때문에 자의반타의반으로 언제나 클래식한 형태가 나올 수밖에 없으니, 꽂힌 도자작품이 있다면 당장 사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이 가장 쌀 때이다.


도자 작품의 가격은 다른 소비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폭넓은 층의 숙련작가들이 활동해 왔으며, 이를 소화하는 시장의 구매층도 두텁다.  수작이라 할 만한 작품의 가격도 유럽, 아시아 다른 나라보다 매우 낮은 편이다. 숙련도와 미적감각 면에서 평균적 수준이 높다는 것이 한국공예의 특징이라고까지 회자된다. 적은 돈을 투자해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고,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도 높아지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10년전에 수집한 작품이 지금도 인기리에 팔리고 있으며, 또한 빈티지임이 더욱 자랑이라면 이 물건의 가치는 이미 검증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자 작품이 값진 선물이 될 수 있는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들여 만든 작가의 노력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작품을 만드는 도예가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는 이은범 작가의 다음 코멘트로 글을 마무리 한다.


나는 손이 많이 간, 정성을 다해 보듬은 작업들을 좋아한다.
재치 있게 풀어나간 작품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으나, 옆에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을 만큼 만든 이의 애정과 정성이 전해지는 작업이 좋다. 보는 이, 사용하는 이를 위한 따뜻한 마음이 담긴 작업에 늘 고맙고 감사하다.
내 손끝으로 만든 작품들이 그러하길 바라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 한다.
딸아이와 지내며 가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내 어머니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럴 때면 내 어머니의 손길이 지금 내 손길과 같음을 느낀다. 그 마음으로, 그 손으로 매 순간 기도하듯이 작업한다.
- 이은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작가노트 중-  
이은범, 천 개의 그릇, copyright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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