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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Sep 12. 2018

피노느와 내 사랑

프랑스 여행기 06

와인은 신기한 술이다. 첨가물을 넣지 않고 포도 만으로 맛을 내는데 지역에 따라 포도가 자란 연도에 따라 (대체로 품종과 기후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 심지어 같은 해에 같은 사람이 생산한 와인이라도 얼마나 지나서 먹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공부하면서 마시려면 끝이 없는 술이다. 많이 알수록 좀 더 잘 즐길 수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어서 와인에 대해서는 유독 아는 체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다 보니 돈이 많이 드는 고약한 취미에 빠져 나도 와인 꽤나 마셨다. 그러다보니 ‘프랑스 와이너리 투어’를 버킷 리스트에 넣는 철없는 생각에 빠지게 됐다.

어쨌든 ‘꿈은 이루어진다’는 다소 막연한 환상을 품고 산 덕에 꿈을 이루었다. 지금 프랑스 부르고뉴 마을에서 와인 레이블로만 보던 지명을 두루 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와인을 엄청 좋아하고, 특히 피노느와 젤로 좋아하는 건 맞지만 부르고뉴 와인을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신의 물방울에서 ‘호숫가를 나비가 날아다닌다’느니 ‘바람에 꽃잎이 하늘 거린다’는둥 몽환적이나 매우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을 가장 많이 했던 와인이 부르고뉴 와인이었음을 기억한다.

까버네 쇼비뇽과 멀롯을 주로 블렌딩해서 만드는 보르도 지역에 비해 부르고뉴는 피노느와 100%로 만들기 때문에 포도 자체의 작황과 맛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솔직히 와인 애호가들이 들으면 무식하다 하겠지만 난 피노느와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부르고뉴 보다는 미국 오레곤 와인을 좋아한다. 내가 처음 와인에 맛을 들인 것이 미국에 있을 때였고 미국 오레곤 피노느와를 많이 마셨기 때문일게다. 날씨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변화가 심한 부르고뉴 와인에 비해 미국 나파나 오레곤 피노느와는 맛이 단순하고 좀더 파워풀하다. 섬세함을 구분하는 재미로 마신다는 부르고뉴 피노 보다는 언제나 일정한 기대치를 채워주는 미국 와인을 선호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내 취향은 ‘가성비’를 고려한 것임을 인정한다. 부르고뉴 피노느와를 잘 못 사면 신 맛이 너무 강하고 바디감이 없어 정말 맛없는 경우가 많다. 대개 싼 와인이 그렇다. 피노 특유의 풍부한 향에 밸런스, 바디감까지 갖춘 부르고뉴 와인을 마시려면 큰 맘 정도 먹어야 한다. 그래서 친해질 기회를 갖지 못했다.


프랑스에 와서 부르고뉴 와인은 가볍다는 내 고정관념을 완전히 깼다. 바디감도 제법 있고 향을 갖춘 피노가 무척 많았다. 그것도 합리적인 가격에!

와인이 좋아서, 그런 와인을 매 끼니마다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지만 프랑스 시골 마을의 정취를 느끼는 것 또한 큰 기쁨이다. 밭에서 포도는 영글어 가고 마을 마다 일꾼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미국 나파밸리를 갔을 때는 와이너리가 시음과 판매의 장소였는데 이곳 부르고뉴 마을의 도맨(=와이너리)는 그야말로 와인을 만드는 ‘생산’의 공간이었다. 테이스팅룸이 없는 곳도 꽤나 많았다. 혹은 테이스팅룸이 있어도 문을 잠그고 일에 열중하는 곳도 많았다.

와인이 ‘생활’인 이 곳 - 와인이 ‘호사’ 이거나 ‘허세’였던 곳과는 다르다. 곧 그 곳으로 돌아갈테지만 이 곳에 있는 며칠 동안만이라도 생활 속의 피노느와와의 사랑을 거부하진 않을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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