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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Dec 02. 2019

겨울 여행_깨달음

산남일기 #18

불교 신자라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인생의 중대 갈림길에 설 때마다 법당을 찾았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며칠씩 절에 가있던 경험도 있다. 대학 지원서를 내고, 취업 시험을 본 이후에, 혹은 뭔가 간절한 바람이 있을 때 주로 법당에 앉아 부처님께 소원을 빌었다. 부처님이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법당에서 내 마음속 절박함을 확인하곤 했고, 절박함의 깊이가 있을수록 부처님의 힘은 발휘되는 듯했다.


이번 가족 여행 중 기장에 있는 해동용궁사를 찾았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절에 갔고 버릇처럼 법당을 찾았다. 해동용궁사 부처님은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을 이해해줄 것 같은 인자함 보다는 중생 스스로가 어리석음을 깨닫도록 인도하는 슬기로움을 갖추신 분으로 느껴졌다.



삼배를 마치고 부처님 앞에 앉았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말했다. 순간, 부처님이 내게 말을 건네셨다.

[너는 항상 법당에만 들어서면 복을 구하는구나. 어찌하여 그러는 것인가?]

순간 적으로 어찌 답해야 할지 몰랐다. 나 또한 어찌하여 그러는지 알지 못했다. 내 마음에 되묻고 있는 사이 다시 물으셨다.

[너의 그 소원이 이뤄지면 다른 것은 모두 괜찮아지는 것이냐? 그 후에는 더는 바랄 것이 없느냐?]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면 또 다른 번뇌의 파도가 몰려올 것이고 나는 그것을 피하거나 뛰어넘을 다른 소원을 마음속에 키우게 될 것이다. 바람과 걱정은 바닷물과 같아서 자꾸 바라고 걱정하면 그만큼 갈증은 더 커질 뿐이다. 그 모든 것을 버텨 낼 마음의 근육이 필요할 뿐이다.


어렸을 땐, 법당에서 내 마음속 바람의 간절함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다음을 살아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간절함의 유효기간이 찰나와 같다는 것을 익히고 배워 알고 있다. 그렇게 내뱉는 간절한 소원이 내 마음의 평온을, 혹은 내 삶의 에너지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한동안 법당에 앉아 지금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해보았다.


다시 회사를 시작했다. 십 년 전, 이십 년 전이라면 '대박'을 기원했겠지만, 이제는 내 마음을 다해 일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그 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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