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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May 07. 2020

봄에는 땅을 판다

산남일기 #27

쏘니가 떠나고 모든 것이 심드렁해졌다. 언제 그렇게 고양이를 좋아했다고... 고양이를 본격적으로 키워볼까 하는 마음에 고양이 카페도 이곳저곳 가입해봤지만 아직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훌쩍 지나갔다. 마침 일도 바빠져 다른 신경 쓰지 못하고 지나쳤다.


봄기운이 본격적으로 느껴질 때쯤 무기력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지니 땅에서 솟아나는 봄의 기운이 나를 불렀다. 텃밭을 정리해서 상추와 겨자잎을 심었다. 딸기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란다고 하기에 몇 포트 곁들이고 바질, 고수까지 데려 왔다. 바질은 4월의 한기에 얼어서 죽었다.



지난해 잔디 걷어내고 자그마하게 만든 꽃밭에는 겨울이 되기 전 알뿌리로 심어 놓은 튤립이 튼실하게 꽃대를 올렸다. 아무 생각 없이 심은 튤립에서 오묘한 색의 꽃이 피어나자, 나는 '가드닝력'이 올라간 듯한 마음에 저절로 어깨를 으쓱 대었다. 에버랜드 튤립축제에서 보는 꽃보다 훨씬, 훨씬 예뻤다.



정원이 꽃으로 화사해지기 시작하고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서도 희미하게 녹색 잎이 올라오니, 틈날 때마다 화원에 가서 꽃모종을 사 왔다. 소담하고 예쁘게 사온 수국을 사 왔는데 그만 도중에 4월 추위가 몰려와 밤 마나 짚더미 덮어주느라 분주했다. 그래도 가지 몇 개는 얼어서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언 가지 정리하고 날씨도 풀리니 이제야 수국다워졌다. 



부엌 쪽 데크 앞을 장미밭으로 꾸밀까, 잔디는 이제 그만 파내고 꽃을 더 심을까.. 수많은 생각이 오고 갔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불빛을 보고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드는 나방처럼 봄기운에 취해 땅을 파고, 심고, 잡초 뽑는 일을 연휴 내내 했더니 급기야 몸살 기운까지 느껴졌다.


그래도 마당에 서면 저마다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내는 아이들이 예쁘고 고맙다. 상추는 또 어찌 그리 쑥쑥 크는지...


새삼 이 나이 들어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땅의 섭리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다니. 더 늦지 않은 것이 어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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