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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Mar 04. 2020

굿바이, 쏘니

산남일기 #26

월요일 저녁, 허기져 집에 돌아와 저녁 준비해 먹기 바빴다. 밥 먹고 치울 때쯤 이미 날이 저물어 어둑해져, 우리 집 길냥이 쏘니가 궁금해졌다.


'왜 쏘니가 안 들어오지?'


내 질문에 남편과 아들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 곧 오겠지.


9시가 넘어서야, 내가 안달을 내기 시작했다. 애가 안 들어오는데 찾아보지도 않는다고 구시렁대었다. 새벽 근무를 앞두고 이른 잠을 청하던 남편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는 랜턴을 들고 쏘니를 찾아 나섰다.


쏘니는 이 동네 수많은 길냥이 중 하나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각별한 존재였다. 작년 11월 삐삐 마른 몸으로 우리 집에 스멀스멀 와서는 거의 우리 식구가 된 아주 독특한 길냥이다. 덩치 큰 마을 터줏대감 길냥이들이 그렇게 구박해도 우리 집을 떠나지 않았고 우리 가족의 비호를 받으며 거의 가족이 되었다. 집도 한 채 마련해줬고 함께 산책도 다녔다. 마당에서 쏘니가 젤로 좋아하는 새잡기 장난감 놀이를 해주면 천으로 만든 새를 잡아 보겠다고 껑충껑충 뛰고 날아올랐다.


못생긴 치즈 고양이 쏘니는 작은 얼굴에 표정을 담아서, 때로는 "끼 끼.." 하는 비둘기 소리를 내면서 우리 가족과 소통했다. 쏘니의 몸짓과 표정, 내뱉는 소리로 배가 고프다는 것인지, 놀아달라는 것인지, 즐겁다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남편이나 아들은 물론이고 집에서 반려 동물을 한 번도 키워 본 적 없고 심지어 개, 고양이를 무서워했던 나 조차도 집에 오면 쏘니 안부를 꼭 챙겼다. 작은 생명체가 뽀드득 소리를 내며 사료를 먹고 생명을 연장하는 모습은 참 경이로워 보였다. 육수 낸 멸치를 주면 어찌나 잘 먹던지, 주말이면 괜히 멸치 육수를 내어 쏘니의 간식거리를 마련하곤 했다.


작고 어려 보이던 녀석이 3주 전인가는 발정기가 와서 기막힌 꼴을 보이기도 했다. 동네 수컷 고양이가 모두 우리 집으로 몰려드는 진풍경에 볼썽 사나운 모습을 차마 보기 힘들어, 집을 내다 버리던지 해야 한다며 씩씩 거리기도 했다. 발정기는 곧 끝났고, 쏘니는 평온을 찾았고 길고양이들 왕래가 뜸해졌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쏘니 때문에 몇 번의 진지한 가족회의가 있었다. 처음엔 낯선 쏘니를 보자  동네 길냥이들이 어린 쏘니를 워낙 괴롭히고 텃세를 부리는 탓에 쏘니를 집으로 들여야 하나 고민했고 발정기를 지나면서는, 아무래도 한 두 달 후에는 TNR (중성화)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쏘니가 집을 나가기 전, 며칠 동안 유난히 집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했다. 거실에서 데크로 향하는 큰 창 밖에서 물끄러미 집 안을 바라보며, 왜 자신은 가족인데 집에 들이지 않는 거냐며 시위를 벌이는 듯 보이기도 했다.


쏘니를 집에 들이지 않은 건, 이 동네가 야생의 길냥이가 지내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캣타워 대신 소나무나 감나무에 오르고 시멘트 바닥이나 나뭇가지를 스크래처 삼았다. 텃밭이든 꽃밭이든 흙을 파면 바로 화장실로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와 노는 것도 좋겠지만 주변에는 고양이 친구들도 많아 데크에 집을 마련해주는 것으로, 훨씬 쏘니가 지내기에 좋은 환경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아주 가끔은 저녁에 마실을 나가 우리가 잠들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기에, 월요일 저녁은 그렇게 지냈다. 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쏘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 가족들은 무수히 많은 추측을 나눴지만, 어느 것도 현실성이 높아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 쏘니가 어느 날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아들은, 어차피 쏘니를 집에 들이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헤어졌을 거라며 가장 의젓한 태도를 보였다. 아마도 동네 누군가가 집으로 들여 들어가서 살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주변 동네 사람들은 쏘니가 우리랑 산책 다니는 고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과연, 며칠씩 쏘니를 집에 두고 있을까...


우리 집은 차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는 떨어져 있으니 적어도 끔찍한 사고는 아닐 것이라고 위안하기로 했다. 그래도, 그렇다면 왜...라는 질문은 남는다.


새벽 근무를 하는 남편은 집에 돌아와 낮잠을 자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낮잠을 자며 쏘니 꿈을 꾸었다고 했다. 마당 저 언저리에 서있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쏘니의 모습이 선명한 꿈이었다고 했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등장한 꿈과 흡사하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남편은 그렇게 쏘니와의 이별을 정리하고 있었다.


집 안 곳곳에 쏘니의 흔적이 남아 있다. 쏘니가 자주 널브러져 쉬던 데크, 토닥토닥 걸어 다니던 마당, 물끄러미 집 안을 바라보던 창 앞.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있었다면 진작 쏘니를 집에서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밖에서 사는 것이 쏘니에게 더 행복할 것이라는 가정은 나름 합리적인 듯 보였지만, 이제는 다 소용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 언젠가 이렇게 나도 세상을 떠나겠지.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내야겠지. 그렇게 마음을 접는 수밖에 없다. 다만, 어느 곳에서라도 쏘니가 행복하기를... 그 작은 영혼과 함께 한 지난 100여 일 동안 너무 행복했다고 전하고 싶다.


잘 가라, 쏘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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