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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길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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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Sep 20. 2020

부전자전

길냥일기 #03

아지트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어. 배를 채우고 데크에 앉아 오랜만에 그루밍을 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더라고.


“달건이니?”


아지트 아줌마의 놀란 목소리에 나도 놀라 돌아보며 나도 모르게 왼쪽 눈을 찡그렸던 모양이야. 이건 사실 아빠로부터 그대로 배운 것이지.


“아이고, 맞네!! 달건이, 어디 갔다가 이제 왔어? 통 오질 않아서...”


반가운 인사를 건네던 아줌마는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지.


‘달건이가 아닌가... 덩치가 작은 것도 같고...’


결국 아저씨를 불러 한 참 토론을 한 끝에 내가 ‘달건’의 자손이라는 걸 놀랍게도 알아 보더라고. 두 사람이 결론을 내릴 때쯤 나는 스윽 자리를 피했지.


내가 ‘달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도 아줌마는 내게 변함없이 잘해 줬다. 다시 아줌마를 만났을 때 난 아파트 중딩들이 던진 괴물체에 맞아 왼쪽 얼굴에 피가 흐르고 상처가 있었거든. 그날 이후 아줌마가 나만 보면 특별히 캔을 따주곤 했는데 며칠 캔을 먹고 나니 신기하게 상처가 낫더라고. 아침마다 흐르던 눈물도 없어지고. 캔에서 좀 이상한 맛이 나긴 했는데.. 길냥이가 뭐 맛을 가릴 건 아니라서 참고 먹었지.


사실 아빠는 심학산 최장수 길냥이에 속했고 체격이 좋아서 어디서나 눈에 띄었지. 젊었을 땐 인물도 좋아 동네에 지나다 보면 어딘지 남 같지 않은, 모습만 보아도 아빠를 닮은 고양이들이 많은 편이긴 해. 길에서 살다 보니 말년에는 왼쪽 눈이 항시 좀 찌그러져 있어 함상 궂은 인상이 되었지만..


그래도 묘연이라는 게 있는지, 밥자리 아줌마들이 아빠를 무서워하고 싫어했는데 - 사람들은 무조건 고양이는 귀여워야 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잖아 - 아지트 아줌마는 아빠에게 ‘달건’이라는 이름도 주고 각별하게 챙겨 주었어.


가끔씩 볕 좋은 데크에서 아줌마는 뜨개질을 하거나 야채를 다듬으며 아빠와 수다 떨기도 했지. 아마 이 세상에서 아빠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을 게야.


아줌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거든..  


달건이가 생긴 건 저래도 신사야. 다른 고양이들이 밥 먹으러 오면 스윽 자리를 비켰다가 다 먹고 가면 그제야 밥을 먹는다니깐!”


그래, 아빤 마음이 비단결 같은 사람이었어.


아지트 아줌마에게 나도 아빠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그렇게 결심했지. 내 이름 또건이가 뭐겠어, ‘또 달건이’니까! 이곳에 오면 아빠의 기운이 느껴져. 특히 아줌마가 “또건이 왔니!”하며 나를 부를 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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