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일기 #31
아들을 보러 설 연휴에 호주로 가려던 계획이 무산되면서 이어지는 연휴는 활력을 잃었다.
1월 28일, 이른 아침 부터 서둘러 공항에 도착했는데 결국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호주 퀸즈랜드 주정부가 해외 여행객 입국을 허용한다는 발표에 조금은 들뜬 채로 계획한 호주 여행이었다. 공항에서 탑승수속이 안될 때는 이해를 할 수 없어서 호주 대사관, 영사관, 외교부, 호주 정부에까지 전화를 걸어 본 후 알게 된 사실은, 코로나-19로 인해 ETA 관광비자로 호주를 방문하는 해외여행객은 반드시 직항으로 호주에 입국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방법을 찾아봤지만 결국 이번 설 연휴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렇게 시작된 연휴가 편안하고 즐거울 리가 없었다.
그래도 침울하지는 않았다. 최대한 외출을 삼가고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으며 보냈다. 술도 마시고, 골프 연습도 하고, 하마터면 집사들 없는 집에서 일주일 넘게 고생했을 고양이들에게 위로도 받으며, 가능한 한 호주 여행 불발 사건을 머릿속에 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렇게 지냈다.
아들이 살고 있는 브리즈번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Noosa Heads Beach라는 휴양지에 멋진 숙소를 예약했었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주변에 바다 전망의 예쁜 샵, 식당이 늘어서 있고, 어딘가에 Farmers Market도 있어서 신선한 식재료로 음식도 해 먹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휴양지 예약이 취소 기한을 넘겨 멋진 숙소는 아들 부부와 친구들이 짧은 여행을 가는 것으로 했다. 그곳에 도착한 아들이 저녁에 친구들과 술 마시다가 전화를 했다. 눈가가 촉촉했다. 엄마, 아빠, 동생 만난다고 꽤나 기대를 했던 모양이라며 울먹였다. 순간 나도 눈물이 터졌다. 모처럼 아들과 오래 통화를 했다. 이번에 호주 가면 물어보려 아껴두었던,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이국땅에 살면서 무엇이 힘든지, 그럼에도 어떤 이유로 계속 그곳에 있으려고 하는지... 서로 만나 술잔 부딪치며 나누었을 얘기들을 차분히 풀어내다 보니, 아쉬움이 조금은 해소되는 듯했다.
아들은, 그 사이 많이 성장해 있었다. 생각도 단단해지고, 의젓해졌다. 착하고 여린 마음도 여전히 소중하게 잘 간직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모이고, 만나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 명절의 진짜 중요한 의미일 텐데, 역설적으로 우리 가족은 만나지 못해서 오히려 가족의 소중함을 깊게 느끼게 되었다.
호주는, 다시 일정 잡아가면 된다. 아름다운 휴양지의 매력도 잠시 조금만 더 숙성시켜 두어도 된다. 충분히 가족의 마음을 느끼고 의미를 되새긴 명절이니 그것으로도 되었다. 저전력 모드로 지낸 덕분에 편안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