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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Feb 07. 2022

버티는 삶에 대하여

<스토너> - 존 윌리엄스

윌리엄 스토너는 미주리 대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수도자처럼 문학에 전념했다. 히스테릭한 아내와의 불화로 가정이 무너져도, 직장의 정치에 희생양이 되었을 때도, 늦은 나이에 불같은 사랑을 시작했을 때도  그의 심장 가까이엔 문학이 있었다. 미주리 대학교에서 문학 교양수업을 듣기 전까지 그는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 일했으며, 당연히 그래야 한다 생각하고 행동했다. 농사를   짓기 위해 입학한 대학교에서 그는 영문학 수업을 듣는다. 괴팍해 보이는 아처 슬론이 그에게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스토너는  순간 사랑에 빠졌다.


마치 피학적일 정도로 거의 모든 감정과 행동에 수동적인 그가 분노하며 대립각을 세웠을 때가 단 한번 있었다. 그 정도로 문학은 그의 종교이자 세계였다. 문학에 대한 비정직, 문학이 정치적 타협과 무기로 변하는 것을 그는 참지 못했다. 문학은 그에게 세상이자 전부였다. 소중한 딸이 아내의 히스테리에 희생당하는 모습을 지켜만 봤다. 한 달 만에 실패한 결혼이라는 판단이 설 정도로 아내와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결혼을 깨지 못했다. 문학을 벗어난 세계는 그의 의지가 닿지 못했다. 아내에게 이렇다 할 반격조차 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나는 무척 슬펐다. 끝내 결혼을 깨지 못했던 것은 딸 때문이었을까. 자신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스토너에겐 이혼이라는 옵션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혹할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디스에게 더 이상 줄 것이 남아있지 않은 그가 자신에게 내린 형벌이자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속죄로 느껴지기도 했다.


마흔 줄에 접어든 스토너는 영문학 전문가로 실력을 갖추게 된다. 실력이 뒷받침된 자신감 있는 태도는 학생들을 끌어들인다. 학생들은 그에게 홀린 듯 빠져든다. 오직 문학만이 삶을 지탱했던 사람의 강의는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봤다. 수많은 군중 가운데서 자신의 언어로 공간을 채운다는 것. 어쩌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일 것이다.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와중 한 교수를 만나게 된다. 로맥스는 하버드 출신으로 학벌과 실력 모두를 가진 능력자다. 하지만 그는 신체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 스토너는 묘하게 그에게 끌린다. 문학으로 또 다른 세계를 찾은 공통점으로 둘은 순간 우정을 피울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예감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로맥스는 스토너에게 강한 적의를 품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스토너의 겉모습과 그가 이루고 있는 가족, 저택에 열등감을 품었을 수도 있고, 오직 문학만을 파고든 그의 지식의 깊이에 패배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오직 문학만을 좇던 사람에게도 적이 생긴다. 직장에서의 정치는 희생양을 가리지 않는다. 약해 보이는 인간을 집요하게 물어뜯는다. 직장은 야생이다. 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에서 조차.

문학 덕분에 얻은 사랑을 문학 때문에 지키지 못했다.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낀 스토너는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급격히 노화한다. 학과장 로맥스의 횡포로 1학년 수업만 전전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직분을 묵묵히 해나간다. 그의 문학에 대한 일념은 감정의 극한에 가닿아도 무너지지 않는다.


문학은 한 사람의 삶을 뒤바꾼다. 나 역시 문학을 만나기 전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대학에 입학하고 취업 직전까지 내 삶과 문학은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다. 책이라곤 기껏 해야 시간을 죽이기 위해 읽었던 추리소설이 다였다. 당시 내 주변 친구들과 나의 관심사는 오직 대기업이었다. 돈과 물질이었다. 그곳에 가면 다른 세상이 열릴 줄 알았다. 좋은 차에, 좋은 집, 예쁜 여자를 만날 거라 기대했다. 아주 많은 돈이 곧 행복이라 여겼다. 1500원짜리 점심으로 배를 채우고 600원짜리 조지아 캔커피를 마셨다. 몇 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비루한 삶을 버텼다. 하지만 나는 실패했다. 대기업에 가지 못했다. 현실과 타협했다. 어디서 들어봤을 법한 기업 계열사에 입사했다. 적당한 연봉을 받고 적당한 자부심을 얻었다. 이십오년 가량 노력한 결과가 목걸이 사원증과 월 300만 원이 채 안 되는 월급이었다. 대학생 때 꿈꿨던 삶은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현실은 공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폭언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강압적인 문화와 강권하는 술로 인해 내 정신은 무너져 갔다. 높게 날았던 이상이 추락했다. 현실에서 추락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오피스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매섭게 찬 새벽바람에 정신을 다잡았다. 그때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아마추어적 열정, 오직 흥미로만 점철된 독서는 무너진 정신에 축대를 쌓는 작업이었다. 몇 번의 취업 실패 후에 지금의 직장에 입사했다. 여전히 관심 없는 전공을 살려 취업했지만 직장의 나와 퇴근 후의 나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미주리 캠퍼스를 혼자 걷는 스토너를 상상한다. 건물이 있던 자리 잔해가 사라지고 한가운데 고독하게 서있는 제시 홀의 기둥을 지나며 거친 삶에서 작은 숨을 내뱉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스토너가 평생을 몰두했던 문학은 예술로 확장되기도 한다. 예술은 삶을 확장시킨다. 미주리 대학교, 컬럼비아에서 거의 모든 생애를 보낸 스토너는 문학으로 300년 전의 셰익스피어와 만났다. 그리고 농부가 아닌 영문학자로 살았다. 사랑을 했고, 실패를 했고, 성취를 했고, 기쁨을 얻었다. 상처를 받았고, 상실을 경험했으며, 절망했다. 다시 사랑을 했고 이별했다. 분노했고 초연했다. 누군가는 외적으로 보잘것없어 보이는 삶이라 평가할 것이다. 실패한 가족, 우정의 부재, 뚜렷한 학문적 성취, 업적이 없던 사람, 그저 그렇게 지나간 어떤 조교수라 기억할 것이다. 그의 생애를 읽은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내겐 오직 자신의 세계에 집중했던 그의 삶이 뜨겁게 와닿는다. 버티는 삶에 대하여, 세상에 피투 된 한 인간에게 삶을 버텨낼 수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한다. 거대한 세계보다 자신의 작은 세계에 집중했던 사람. 스토너가 임종 직전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이 내게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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