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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Dec 30. 2022

아스팔트 클라쓰

이사를 하게 되면서 차로 출퇴근을 하게 됐다. 이전엔 항상 직장과 가까운, 지하철 세네 정거장 정도의 거리에서 살아온 나에게 나름 큰 변화인 것이다. 왕복 사십 킬로미터의 길, 두 시간 남짓의 운전은 내게 주어진 새로운 공간과 시간이다. 매일 운전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피곤하고 지루한 출퇴근 시간이기도, 부유하는 잡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기도 하다. 고정된 시간을 어떻게 체감하는가에 따라 시간은 다르게 소화된다. 누군가는 빠르게 추월해 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차선을 물고 진득하게 가기도 한다. 도로 위에 제 혼자만 있다는 듯이 소란스레 다니는 차가 있고, 다른 차량의 상태를 관찰하며 조용히 다니는 차가 있다. 반년 남짓 도로 위를 누비며 드는 생각은 도로 위 자동차들이 꼭 사람들 같다는 것이다. 같은 도로 위를 달리면서도 차들은 모두 제각각의 행동을 보인다. 차의 종류, 색깔뿐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고 차선을 변경하는 등의 모습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겹쳐 보인다. 


흔히 ‘운전을 잘한다’는 말은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기본적으로 탑재된 귀여운 허세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 속에 내포한 함의는 굉장히 흥미롭다. 그들 스스로 관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사람 모두 개성을 가지고 각자의 자아가 있는 듯이, 운전할 때도 사람의 고유 성격이 드러난다. 평소 생활 방식이 얌전한 사람인데 운전대만 잡으면 과속에 경적에 입에 걸레를 무는 사람의 예는 흔히 들어봤을 것이다. 이와 같은 극단의 사례도 있겠지만 평소 생활 방식, 사용하는 언어와 말투는 그 사람의 운전 자아를 측정해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은 아랑곳 않는 이들이 있고 역시 도로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하는 차량들이 존재한다. 도로가 정체하는 합류 구간에서 이를 악물고 합류 차선들의 차량을 끼워주지 않는 이들이 있고, 차선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 의해 정체는 조금씩 해소된다. 그 가운데 감사함을 표시하는 이들이 있고, 또 그것을 당연히 여기는 이들이 있다. 나는 도로 위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았다. 


타인의 평가와 시선에 광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대한민국에서 아스팔트 위에서의 행동은 조금은 모순적으로 보인다. 자신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운전 자아'가 껍질 안에 숨어 있는 진짜라는 생각에 조금은 서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리 대부분은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혹은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 자부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좋은 평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며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가 그 사람을 규정하게 된다. 헌데 요즘은 소유한 차량과 거주하는 아파트 가격, 직장에 의해 판단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껍질이 벗겨지고 난 후, 차에서 내린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결국 전자로 판단될 것이다. 타인에 규정된 나의 모습.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인지에 대한 답은 결국 자신만이 알고 있다.


운전을 잘한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보통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을 떠올린다. 돈을 많이 버는 것, 내 집을 가지는 것, 좋은 차를 타는 것에 대해 과하게 집착하는 이들과 겹쳐 보인다. 주변 차량의 속도는 무시한 채 제 멋대로 차선을 바꾸고 추월해 간다. 자신의 기준에 느리다고 생각하는 차들에 바짝 붙어 위협하거나 소란스러운 경적을 울리기도 한다.(물론 고속도로 1차선은 추월차선이며, 정속 주행은 엄연한 교통 법규 위반이다.) 이들은 정확히 우리 삶 가운데도 존재한다.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도로의 상황보다 자신의 목적을 좇는 이들은 사회에서도, 도로에서도 늘 위험한 존재이다. 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사건 사고는 이들이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음을 재확인시켜준다. 운전을 잘한다는 것. 핸들을 잡고 액셀을 밟으면서 이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 각자의 목적지를 향하는 가운데 도로 위 사정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닐까. 옆 차량이 차선을 변경할 것 같으면 앞 공간을 살짝 내어주거나 신호와 차선, 속도와 교통 법규를 준수하는 것. 정해진 공간에 주차를 하는 것. 동승자들이 불편하지 않게 운전하는 것. 정확히 우리 생활에 대입해 보자. 나는 운전을 잘하는 사람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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