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 책상 앞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다. 안중근 선생님께서 했다는 그 말이 부쩍이나 마음에 들었는지 그걸 예쁘게 손으로 적어서 책상 앞에 붙여 두고는 늘 책을 읽었던 거 같다. ㅋ
5-6학년 즈음에 명랑소설이 막 유행했었는데
최영재 작가의 별난 시리즈들을 유독 좋아했었다.
방귀봉 아빠가 나오는 별난 가족, 반동강 선생님이 나오던 별난 학교.
정말 아직도 그 에피소드 하나하나 다 생생하게 기억이 날 만큼 좋아했었기에 우리 애들에게도 읽게 해주고 싶어서 얼마 전 검색을 해 봤다.
별난 가족, 별난 학교 책은 이미 절판된 지 오래고 최영재 작가는 서울 신원초 교장선생님으로 은퇴를 하셨다는 소식도 듣고 진짜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느꼈다.
요즘 들어 귀신 책(뱀파이어 등등)에 몰입하는 딸이 맘에 안 들어 친정 엄마에게 푸념 섞인 이야기를 했더니 울 엄마는 웃으면서 딱 한마디 하신다.
“like you!!!”
하긴 나도 귀신 책부터 온갖 잡다구리 책을 읽기는 했다. ㅋㅋ 지금도 기억에 남는 꽃 전설이야기는 여전히 잘 써먹고 있는 나의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그때부터 손에서 놓지 않았던 책이 지금도 여전한 거 같다.
애들 넷을 키우던 바쁜 와중에도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늘 재주가 없는 방 정리나 요리가 아니라 맘을 가다듬기 위한 책 읽기였으니까.
애들에게도 열정적으로 책을 읽어주기 위해
임신하자마자 막 사들인 전집,
또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몰랐던 초보 엄마에게 이런저런 지식을 알려주던 육아 지침서,
아이들을 키우다가 내 맘같이 잘 커 주지 않는 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각종 아동 마음 읽어주기, 육아 달인들의 저서를 읽으며 늘 배우고 익혔던 거 같다.
그리고 지금은 나를 위해 책을 읽는다.
나연이가 떠나고 허했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책 읽기가 또 나에게 큰 힘을 주고 있다.
가끔 어떤 책을 읽으면 좋냐는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음이 기쁘고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이 참 행복하다.
왜 책을 읽나 했더니 그게 나의 소통의 도구였던 거 같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쓸 기회가 오다니 나에게 책은 그저 즐거움인 거 같다.
아이들이 어릴 때 읽어주던 책 중에 도서관이라는 책이 있다. (사라 스튜어트 작, 시공주니어 )
주인공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책을 엄청 좋아하는 소녀.
깡마르고 눈도 나쁜 그녀는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녀의 책 사랑은 계속되고 결국 그녀의 집은 책으로 가득 차서 그 집을 도서관으로 기증한다는 내용의 이야기.
아이들에게 그 책을 읽어주면서 이건 나의 꿈인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도 내가 나연이를 위해 무엇을 해 주고 싶은가 늘 고민하는데 나연이 이름으로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
서대문 형무소 옆에 있는 이진아 도서관처럼 나연이를 기억하는 도서관을 언젠가 만들고 싶다.
책을 좋아하던 소녀가 엄마가 되어 이루고 싶은 꿈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