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출간될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
목숨을 위협받는 순간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나 자신이 가장 나다울 수 있게 해주는 정체성이 이타심인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의인’이라 부른다. 이들에게는 달려오는 열차도 흉기도 뜨거운 화염도 두렵지 않다.
타인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이들의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이들의 가족이었다. 이들의 초인적인 의로움과 안타까운 죽음보다 가족이 겪을 슬픔이 먼저 다가왔다. 고인들처럼 살신성인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우리 사회가 인간성의 가치를 잃지 않은 채 진일보할 수 있지만,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은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내 가족이 타인을 구하고 숨졌다면, 의로운 행동과 별개로 고인을 원망하는 마음이 컸을 것 같았다. 고인이 참담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로 인한 괴로움, 고인의 부재로 느껴지는 뼈아픈 그리움 때문이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이들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됐다. 죽음이 삶의 연장선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타인을 먼저 생각한다는 건 이타심이 그들의 정체성이고 그들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순간에도 정체성을 지켜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그들 자신으로 산 것이다. 그런 마음을 존중하게 됐다.
이런 깨우침을 통해 나는 ‘그’를 더없이 존경하게 됐고 그리워하게 됐다. 2018년의 마지막 날 오후 진료를 마무리할 무렵, 환자에게 살해된 고 임세원 교수님이다. 그는 예약 없이 찾아온 자신의 환자를 배려하는 마음에 당일 진료를 수락했다가 살해됐다. 업무 매뉴얼 대로 예약 환자 외에 당일 접수 환자 진료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환자가 급하게 병원을 찾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내 머리가 언제 터질지 몰라요. 병원에서 내 머릿속에 폭탄을 심어놨으니까!”
환자는 흥분해서 흉기를 꺼내며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을 공격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옆문으로 피했지만, 위험을 알리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다가온 간호사 뒤로 몸을 피할 수도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본인이 살려고 했으면 살 수 있었을 텐데도. 그는 환자가 간호사를 공격하려 하자 달려가 의료진과 대기 환자들에게 위험을 알렸다. 환자는 그가 있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고 그는 살해됐다. 그의 마지막 순간은 그를 아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큰 슬픔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이기심과 분노로 가득 찬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그는 생전에 환자들에게 깊은 애정을 쏟았던 것으로 유명했다. 마음이 병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당시 빈소가 마련된 병원에서 유족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여기서도 그가 얼마나 환자들을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의 자랑이었던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의 안전이 지켜지고,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적절한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생전에 그는 정신질환자들이 편견에 시달리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했다. 고인의 가족은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때 유족이 보여준 품격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크게 감동받았다. 유족은 가해자를 향한 원망 대신 ‘우리 함께 살아보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가 발생하지 않길 바랐던 그의 뜻을 더 널리 전하려는 움직임이 커졌다.
그의 의인적 모습은 우리 사회에 묵직한 울림과 함께 의료인의 진료 중 안전 보장이라는 과제를 던져 줬다. 국회는 의료기관 내 의료인과 환자의 안전을 강화하고 의료인 폭행 시 가중 처벌하는 내용의 일명 ‘임세원법’을 2019년 4월 통과시켰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 9월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했다.
의사자 - 직무 외의 행위로 위해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신체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 행위를 하다가 사망한 사람.
나는 그와 만난 적은 없다. 대여섯 번의 전화 통화, 그리고 조만간 뵈러 가겠다는 약속만 했던 사이였다. 그의 친한 친구 몇 분과 친분이 있었기에 첫 통화 때도 어색하지 않았다. 전화 취재를 마치면서 나는 이 말을 뱉어버렸다.
“교수님, 저 우울증을 겪었어요. 지금은 다 나았고요.”
“진짜 괜찮으신 거죠?”
“네. 제가 읽으면 도움이 될 만한 책 좀 추천해 주세요.”
“…”
몇 초간 침묵하던 그가 단호하게 외쳤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하하. 그 책은 교수님께서 쓰신 거잖아요. 본인 책을 추천하셨어요.”
본인 책 제목을 외칠 줄이야. 우리는 한참 웃었다. 그를 알게 된 건 의료진으로부터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책을 추천받고서였다. 당시 나는 그가 우울증 명의라서 그 책은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담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책은 본인이 우울증을 겪으면서 쓴 경험담이었다. 그는 우울증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투병 사실을 세상에 알린 것이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향한 그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몇 차례 더 통화하면서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가교 역할을 꼭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함께 나아가자고 했다. 곧 보자고 하고서 두 달 후 세상을 떠났다.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만든 ‘자살 예방-청년 편’ 공익광고에 출연했을 때, 한국형 자살 예방 교육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이 그가 동료들과 함께 개발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떠난 뒤 알게 됐다. 그는 세상에 없지만 우리가 각각 걸어온 길에서 교차하는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그가 그리웠고 가슴 아팠다.
“Today is the best day of my life.” 그의 휴대전화 메신저 프로필 대화명에 있었던 문장이다. 2018년 마지막 날 오후 뉴스 속보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진료 중에 의사가 살해됐다는 걸 확인했을 때 떨리는 손으로 메신저에 접속했다. 그 시간대 진료 의사가 그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 비극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대화명도 이 문장이었다. ‘오늘이 내 생애 최고의 날’이라는 건 그가 환자들에게 마지막까지 전하고 싶은 메시지일 수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삶을 포기하지 말라는, 인생에서 유일한 ‘오늘’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지 모른다.
그의 마지막은 아프지만 치열하고 아름답게 살다 간 삶의 자화상이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겨야 할 장면이다. 죽음은 삶의 연장선상이라는 게 맞았다.
★삶과 죽음의 존엄을 생각할 수 있는 책은, 이달 중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매거진에 실린 글들은 책에 담지 못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