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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수 Aug 17. 2022

승무원은 귀신을 자주 본다고요?

[질문 있어요 #25]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 다답


당황스럽지만, 이런 질문도 가끔 받는다. 그러나 나는 대답할 수 없다. 왜? 무서우니까. 그래도 용기를 내어 들은 이야기들을 전해 보겠다. 물론 사실이 아닐 거다. 아니라고 믿는다. 큐.  




대부분의 승객들이 잠든 어두운 객실. 점프시트에서 비몽사몽 졸린 눈을 비비며 한 승무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너편 점프시트에 앉아있는 선배 승무원을 향해 "워크 어라운드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내 말을 듣기나 했는지, 고개를 숙인 채 손바닥만 살짝 들어 보여주었다. 조용히 커튼을 젖히고 객실 복도로 나온 그녀. 오늘따라 손님이 적어 자리도 띄엄띄엄, 적막하기까지 하다. 간혹 모니터를 켜놓고 잠이 든 손님의 얼굴 위로 대체 무슨 영화를 보다 잠든 건지 화려한 불빛이 분주하게 춤을 추고 있다. 심야 비행을 즐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고 얼굴을 찡그리거나 파묻은 채 힘든 잠자리를 괴로워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기체는 작은 미동조차 없었고 웅웅 거리는 기체 소음이 장송곡처럼 흐르고 있었다.


승무원은 뒤쪽 한구석 창가 자리에 잠들지 못한 할머니를 한 명 발견했다. 아무 움직임도 없었지만, 어둠 속에 눈동자가 차갑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할머니, 안 주무세요? 물 좀 가져다 드릴까요?"


할머니는 천천히 그 승무원을 바라보더니, 두 번 손사래를 쳐 보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승무원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뒤쪽 갤리를 향해 계속 걸어갔다.



커튼 너머 갤리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아무도 없나? 왜 불을 이렇게 환하게 켜 두었지? 그녀가 갤리에 들어가기 위해 커튼을 젖힌 순간,


"핡!!"


다리가 후들거려서 쓰러질뻔했다. 그곳에 한 할아버지가 고개를 숙인 채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손님! 간 떨어질 뻔했어요. 여기 이렇게 계시면 안 돼요. 어서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정신이 번쩍 들어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에게 다그치며 말했다. '손님에게 이렇게 막 말해도 되는 걸까?'라고 후회하면서. 그 할아버지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으나 눈길을 주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승무원은 쪼그리고 앉아 눈높이를 맞추며 다시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어디 편찮으세요? 뭐 드릴까요?"


할아버지의 얼굴은 그녀와 마주 보고 있었지만 눈이 향하는 초점은 어디인지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상냥하게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자리가 어디세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할아버지가 팔을 앞으로 뻗치며 어딘가를 가리키려 하는 것 같았지만, 그 방향은 객실 쪽이 아니었다. 답답한 승무원은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다. 할아버지의 팔은 가늘고 차가웠으며, 새털처럼 가볍게 느껴졌지만, 좀처럼 몸이 일으켜지지 않았다. 분명히 저항하는 힘은 없는데 이상하게도 마치 엉덩이에 자석이 붙은 것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당황한 승무원은 다시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할아버지, 누구와 함께 비행기 타셨어요? 여기 할머니도 계세요?"


할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떡여 보였다.


"할머니요? 여기 할머니 함께 타셨어요?"


다시 한번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떡였다.


"잠깐만 계세요. 제가 모시고 올게요."



그녀는 다시 객실로 돌아가 할머니를 찾기로 했다. 어렵지는 않았다. 오늘따라 적은 승객 중에 보호자 할머니로 추측되는 손님은 몇 명 없었고, 조금 전 손사래를 치던 할머니가 유력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녀는 그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할머니, 죄송하지만 혹시 할아버지와 함께 여행하시나요?"


"맞아. 무슨 일이지?"


"아, 할아버지 지금 어디 계신지 알고 계세요?"


"알지... 저기 뒤에."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뒤를 가리켜 보였다.


"아휴, 다행이다. 할머니 맞으시네요. 할아버지 저렇게 불편하게 뒤에 계시면 안 돼요. 할머니가 좀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씀해 주세요."


할머니는 잠깐 동안 물끄러미 그녀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영감이 목마른 가보지. 아가씨가 물이라도 한잔 가져다주면 조금 있다가 자리로 돌아갈 거예요."


"그래도... 보호자께서 직접..."


할머니는 더 이상 대화하기 싫은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야속한 할머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승무원은 머쓱해하며 말했다.


"네. 그럼 일단 물 한 잔 드려볼게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다시 갤리로 갔다. '목이 마르면 말을 해 주시지...' 커튼을 열고 갤리에 돌아오자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할아버지가 사라진 것이었다. '어디 가셨지?' 갤리에도, 화장실에도 없었다. 그새 자리로 가셨나? 궁금했지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원래 자리인 중간 갤리를 향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할머니 옆자리는 비어 있었고, 할아버지는 아직 자리로 돌아가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 자리로 돌아갔으면 복도에서 나와 마주쳤어야 하는데...?' 승무원은 할머니에게 다가가 다시 물어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자리로 안 오셨어요?"


할머니는 돌아보지 않은 채 덤덤하게 말했다.


"자기 자리로 갔을 거야. 아가씨."


"할아버지 자리 어디신데요? 여기 아니에요? 따로 앉으셨어요?"


"할아버지 자리 저기 뒤쪽이야."


승무원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눈동자가 커지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어.. 어디요?"


할머니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더니 길게 처진 눈을 그녀와 마주치며 차갑게 말했다.


"우리 영감 죽어서 화물칸에 태워 데려가..."




조금 각색을 했지만, 이 이야기는 승무원들 사이에 회자되는 대표적인 항공 괴담이다. 본 사람은 없지만 들은 사람은 수없이 많다는 그런 이야기. 사실 승무원들의 일상은 괴담이 탄생하기에 꽤 적합하다. 야간비행, 승무원 벙커 침상, 밤새 쌓인 피로, 호텔 생활 등등...


어떤 부기장은 지방의 한 호텔에서 기장이 무섭다고 같이 방을 쓰자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곳은 승무원들 사이에 귀신이 출몰하는 곳으로 꽤 유명한 호텔이었는데, 목격담은 많지만 직접 봤다는 사람은 25년 비행 생활 동안 아직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다. 도대체 사실은 무엇일까? 그 호텔에 워낙 괴담이 많다 보니, 이야기가 와전되어 승무원 체류 호텔이 다른 곳으로 바뀐 뒤에도 새로운 호텔로까지 이어졌다. 지금의 바뀐 호텔은 괴담과 전혀 상관없는데도 불구하고, 호텔 이야기를 할 때 '라OO 호텔'처럼 고유의 이름을 부르는 대신 취항 도시를 붙여 청O호텔 이라고 부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더구나 이런 이야기는 재밌지 않나? 잘 퍼진다. 하지만 바뀐 호텔은 좀 억울하겠다. 자기네 괴담도 아닌데.


많은 이야기가 탄생한 실제 호텔, 그러니까 새로 바뀌기 이전 OO 산성에 있던 바로 그 문제의 호텔에는 정말 귀신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린아이, 소녀, 예비군 등 귀신 모습의 묘사도 꽤 디테일이 있고, 커튼 뒤에 숨어 있다거나, 크루 가방을 뒤진다거나 하는 행동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하지만 정말 오싹한 것은 그 호텔 각 방마다 벽에 걸려 있는 액자이다. 그 액자를 뒤집어 보면 귀신을 쫓는 부적이 붙어 있다고 하는데, 내 주변에도 그것을 직접 확인한 사람이 꽤 있으니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그 호텔 주변에 굿 방이 꽤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곳에 영적인 무언가가 있긴 있나 보다.




외국에도 승무원 체류 호텔 귀신 이야기는 많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네팔의 카트만두이다. 그곳에 있는 크OO 호텔은 여러 항공사의 승무원들이 함께 묵는 레이오버 호텔인데, 이곳에 어린아이 귀신이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불교의 나라이고, 히말라야의 음기가 압도하는 곳이다 보니 이런 이야기들이 탄력을 받는 것 같다. 이 호텔에는 구관과 신관이 있는데, 특히 구관에서 자주 출몰한다고 알려져서 체크인할 때 구관으로 배정받은 승무원들이 신관에 배정받은 동료에게 같이 방을 쓰자고 부탁하는 일이 자주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경험했다는 대표적인 이야기들은 조금 귀여운 편이다 '신발 정리'가 대표적인 레퍼토리인데, 밤에 자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 보면 대충 벋어 던져두었던 신발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레퍼토리는 아이가 깔깔 웃는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한다. 자다가 보면 가끔 복도에서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까르르까르르' 하고 웃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데, 문을 열어보면 아무도 없다.


'어, 아무도 없는데...'


하고 다시 문을 닫으며 방안을 향해 고개들 돌리는 순간...




나도 승무원 생활을 하면서 더위를 날려버리는 오싹한 경험을 한 적이 가끔 있었다. 호텔에서 암막 커튼을 치고 겨우 잠에 드는가 싶다가도 갑자기 가위에 눌려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 그 순간 끄지 않은 TV에서 행여나 영화 '링'의 귀신이 나오지 않을까, 열어놓은 화장실에서 '나이트메어'의 프레디가 나타나지 않을까 긴장하며 꽁꽁 얼어붙은 몸을 발버둥 쳐 깨우곤 했다. 자기 전에 침대 옆에 있는 의자를 어디로 치울지 고민도 하고, 옷 장문을 열기 싫어 유니폼은 그냥 의자에 걸어두기도 했다. 매번 그러는 것은 아니고, 그냥 가끔씩 호텔 방에 들어설 때 이유 없이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불을 켜고 자야 할지, 끄고 자야 할지 어느 쪽도 안전하지 않아 보여 도무지 결정할 수가 없다.



귀신 이야기는 아니지만 승무원들만 꾸는 악몽 중에 이런 것도 있다. 조종사들의 경우 대표적인 것이 정글이나 도심에서 택시(Taxi: 지상 활주)를 하는 것이다. 거대한 여객기를 테헤란로 한가운데서 택시 하면서 행여나 전봇대나 간판에 날개가 부딪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맞은편에서 트럭이나 버스가 다가오면 꼼짝달싹 못하게 되어 망연자실한다.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 모두에게 해당하는 대표적인 악몽은 지각하는 것이다. 비행기가 곧 출발할 시간인데 가도 가도 공항에 도착하지 못하는 것이다. 때로는 유니폼을 못 찾아서 대신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가기도 하고, 부기장에게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일단 네가 이륙해. 내가 곧 따라갈게."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꿈속에서는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미션 임파서블처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이제 여름이 지나고 있다. 더위를 식혀야 하는 것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으니 더 이상 귀신 이야기는 노 땡큐. 하지만 승무원들만의 오싹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제발 나는 경험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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