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지수 Aug 22. 2022

비행기도 야간에 쌍라이트를 켜나요?

[질문 있어요! #26] 잡다한 비행 이야기 일문다답


쌍라이트가 뭐야 격 떨어지게. 상향 전조등이란 좋은 말 있잖아. 영어로 하면 하이빔. 똑같지는 않지만 비행기에도 쌍라이트와 비슷한 게 있다. 그럼 어디 한 번 비행기의 외부 조명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쌍라이트 켜고 큐.



비행기의 헤드 라이트라 하면,

 

비행기에 헤드라이트라 하면, 택시 라이트(Taxi Light)와 랜딩 라이트(Landing Light)를 꼽을 수 있다. 택시 라이트는 말 그대로 지상에서 택시(Taxi)할 때 쓰는 라이트고, 주로 노즈 랜딩기어에 달려있다. 자동차로 치면 하향 전조등이다. 지상에서 이동하면서 다른 비행기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유도로를 향해 아래로 빛을 밝힌다. 이륙하면 랜딩기어를 모두 접어 넣으니 공중에서는 쓰지 못한다. 반면 랜딩 라이트는 자동차의 상향 전조등과 같다. 이착륙할 때 수평으로 빛을 훤히 밝혀주는데, 특히 착륙할 때는 활주로를 밝게 비추어 조종사가 착륙 조작을 하는데 도움을 준다. 랜딩 라이트는 택시 라이트와 마찬가지로 노즈 랜딩기어에 달려있거나, 혹은 노즈 랜딩기어와 양쪽 날개에 각각 하나씩 달려있다. 대부분의 대형 운송용 항공기는 양쪽 윙 루트(Wing Root), 즉 날개 어깨 쪽에는 랜딩 라이트가 있어서 랜딩기어를 올린 후 공중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헤드라이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상에서 회전할 때 좌우 옆을 비추는 턴오프 라이트(Turn-off Light)도 있다. 택시 라이트처럼 노즈 랜딩기어에 달려있는 기종도 있고, 동체 좌우측이나, 혹은 랜딩 라이트처럼 날개에 달려있는 기종도 있다. 비행기가 클수록, 그리고 공항이 어두울수록 이 라이트가 유용하게 쓰이는데, 택시 라이트와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사용하므로 하향으로 빛을 비춘다.

정면을 보는 라이트가 택시 라이트와 랜딩 라이트이고(큰 전구가 랜딩라이트), 양쪽 옆을 바라보는 것이 턴오프 라이트이다.

랜딩 라이트는 택시 라이트나 턴오프 라이트보다 더 밝다. 비행기에 제일 센 라이트, 그러니까 랜딩 라이트가 바로 쌍라이트다. 너무 밝아서 활주로를 빠져나오면 이 라이트는 꺼버린다. 그러지 않으면 지상에 있는 다른 비행기나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오래전에 조종사가 실수로 랜딩 라이트를 게이트에서 켜버렸는데, 하필 정비사가 라이트 앞에 서있다가 시력을 크게 다쳤다고 한다. 그 후로 게이트에서 라이트를 다룰 때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스위치를 상호 확인하는 절차를 만들었다.


쌍라이트가 워낙 강력하다 보니 공중에서도 유용할 때가 있다. 보통 10,000피트(3,000미터) 이하에서는 랜딩 라이트를 켜고 비행하는데, 앞을 잘 보려고 켜는 것은 아니고 다른 이유가 있다. 사실 공중에서는 전방에 비치는 사물이 없으니 라이트를 켜도 딱히 보이는 것이 없다. 허공에 플래시 라이트를 비추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고도에서 랜딩 라이트를 켜 두는 이유는 첫째, 비행기들이 서로를 쉽게 식별하여 충돌하지 않도록 조심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날아다니는 새들이 놀래서 도망가라는 것이다. 새들과 부딪히면 자칫 비행기가 고장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죄 없이 제명에 못 가는 새들도 불쌍하다. 특히 저고도에서 랜딩기어를 모두 내린 이착륙 단계에서는 택시 라이트, 턴오프 라이트 등등 용도와 관계없이 모든 외부 라이트를 다 켜버린다. 공항 주변에는 새들이 많이 서식하는데, 쌍라이트뿐만 아니라 라이트란 라이트는 모두 켜서 겁을 주는 것이다. 물론 새 뿐만아니라 다른 비행기들에게도 경고를 주는 의미가 있다. 이착륙은 가장 크리티컬한 비행 단계이기 때문이다.



라테는 비행 중에 쌍라이트를 켜는 것이 낭만이었다?


10,000피트를 넘어 높은 고도에 올라가면 랜딩 라이트도 꺼버린다. 앞서 말했듯이 허공에 비출 것이 없으니 켜 둘 이유가 없다. 하지만 달빛도 없는 칠흑 같은 밤에는 구름을 확인하기 위해 가끔 랜딩 라이트를 켜보기도 한다. 라이트를 켰을때 허공에 랜턴을 비춘 것과 같으면 구름이 없는 것이고, 뿌연 안개가 보이면 주변에 구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구름 속, 혹은 구름밖에 있는지 구별하는 정도로만 쓸 수 있고, 멀리 선더 스톰 구름을 비추어 회피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라이트가 아무리 세도 그렇게까지 멀리는 가지 못한다.


예전에는 항로에서 마주오는 비행기를 발견하면 상대를 향해 랜딩 라이트를 켜곤 했었다. 한쪽 비행기가 먼저 켜면 다른 쪽 비행기도 대답하듯 켜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사인을 주고받은 후 라이트를 다시 끈다. 원래는 비행기가 가까워지고 있으니 서로 주의하자는 뜻이지만, 드넓은 하늘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하는 의미도 있었다. 이제는 항로에 워낙 비행기도 많고, 기술 발전으로 내비게이션 화면에 주변의 비행기가 모두 디스플레이되다 보니 이런 낭만도 거의 없어졌다. 이제는 나도 상대 비행기 조종사에게 오해를 살까 봐 쌍라이트를 켜지 않는다. 쌍라이트 켰다가 유턴해서 쫓아오면 어떡하나.         


모든 라이트는 주간에도 똑같이 사용한다. 그런데 야간에만 켜는 라이트는?

이런 외부 조명은 비행단계에 맞게 주간, 야간 상관없이 사용한다. 법적으로 주간에도 꼭 모든 라이트를 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항공사는 주야간 구분없이 똑같이 라이트를 켜도록 절차를 갖춘다. 그러니까, 비행기 라이트는 단지 조종사 시야를 밝히기 위해서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주변에 경고를 주거나 항공기 상태를 표시하는 목적으로도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주간에 자동차 라이트를 켜는 운전자들이 간혹 있는데, 미국의 일부 주에는 이것을 법으로 강제하는 곳도 있다. 주간에 헤드라이트를 켜면 교통 사고율을 줄이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야간에만 사용하는 라이트가 하나 있다. 바로 꼬리날개를 비추는 로고(Logo) 라이트다. 수직 꼬리날개에 회사 마크나 심벌을 비추는 라이트인데, 지상에서 어느 항공사 비행기인지 식별할 수 있게 하고 플러스 알파로 회사 홍보도 된다. 비행에 직접 사용하는 조명이 아니다 보니 주간에는 지상에서도 켤 필요가 없고, 공중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으니 주야간 모두 쓸 필요가 없다. 그렇다 보니 항공기 제작사에서 이륙하면 자동으로 꺼지는 옵션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항공사들은 대부분 지상이건 공중이건 야간에는 항상 로고 라이트를 켜 둔다. 70~80년대 냉전시대에 소련의 요격기에게 두 번씩이나 미사일 격추를 당한 트라우마가 있다 보니 민항공기임을 환하게 밝히는 로고 라이트를 절대 끄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근거가 비약한 '설'이다.


충동 방지 등, 알고 보면 쌍라이트보다 더 강렬하다.

앞을 비추는 것이 아니라 오직 경고의 목적으로 밝히는 라이트가 있는데 바로 충돌 방지 등(Anti-Collision Light)이다. 대형 비행기에는 두 가지 충돌 방지 등이 있는데, 비콘 라이트(Beacon Light)와 스트로브 라이트(Strobe Light)이다. 둘 다 켜 두면 번쩍번쩍하며 분당 40회에서 100회의 속도로 강하게 점멸하는데, 특히 스트로브 라이트는 순간 조도만 따지면 비행기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낸다.


비콘 라이트는 동체의 아래와 위 두 군데에 있으며, 붉은색으로 번쩍번쩍 점멸하지만 사실 자세히 보면 경찰차처럼 라이트 안에서 뭔가 빙글빙글 돌면서 불을 번쩍이고 있다. 지상에서 이 불이 점멸하기 시작하면 비행기가 곧 움직이거나 엔진 시동을 걸 것이라는 의미가 되며, 지상이든 공중이든 운항 중 항상 점멸하도록 켜 둔다.    


스트로브 라이트는 양쪽 날개 끝에 있다. 흰 불빛으로 매우 강하게 점멸하는데, 워낙 자극적이다 보니 공중에서만 사용한다. 이륙할 때 활주로에 들어서면서 켜고, 착륙 후 활주로에서 빠져나오면 꺼버린다. 야간에 공중에서 외부를 감시할 때 반짝이는 별 빛처럼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스트로브 라이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비콘 라이트는 지상에서, 스트로브 라이트는 공중에서 더 유용하다.


글의 컨셉이 원래 '일문 다답'이므로 좀 더 TMI 하자면, 공중에서만 사용하는 랜딩 라이트와 스트로브 라이트를 지상에서도 가차 없이 켜는 상황이 하나 있는데, 바로 활주로를 횡단할 때다. 활주로는 비행기가 고속으로 이착륙을 하는 곳이므로 조심해서 건너야 한다. 따라서 공항의 지상 관제사가 횡단을 허가했을 때, 가장 강렬한 이 두 가지 라이트까지 모두 켜고 활주로를 건넌다. 쉽게 말해서 파란불이 켜졌어도 유치원생처럼 손을 번쩍 들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다.        


좌익과 우익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비행기에는 양쪽 날개 끝과 꼬리 끝에 항법 등(Navigation Light)이 있다. 다른 말로는 포지션 라이트(Position Light)라고도 하는데, 주야간 상관없이 올타임 온이다. 심지어 주기 중에도 켜 둔다. 양 날개와 꼬리, 즉 비행기의 맨 끝단에 불을 켜 둠으로써 어두운 주기장에서도 비행기 말단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한다. 항법 등은 원래 선박에서 사용하는 것을 비행기에 도입한 것인데, 서로 바라보았을 때 상대방의 위치뿐만 아니라 이동하는 방향까지 알 수 있게 한다. 날개의 왼쪽에는 붉은색, 오른쪽에는 녹색, 꼬리에는 흰색 불을 밝히는데, 다른 색의 불빛들이 각각  어느쪽에 있는지 보고 비행기의 움직임을 추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녹색 등만 보이면 비행기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것이고, 붉은색 등만 보이면 반대 방향으로 날고 있는 것이다. 또한, 비행기 오른쪽에 녹색, 왼쪽에 붉은색 불이 보이면 같은 방향으로 날고 있는 것이고, 반대로 오른쪽에 붉은색, 왼쪽에 녹색 불이 보이면 서로 마주 보며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배던 비행기던 우측에 있는, 혹은 우측에 보이는 에게 통행의 우선권이 있다. 왼쪽에 있는 비행기나 선박이 양보를 하고 피해야 한다. 서로 정면으로 다가올 때는 서로 오른쪽으로 피해야 한다.  경우 서로의 불빛을 보고 누구에게 우선권이 있는지, 어느 쪽으로 피해야 하는지 구별하는 것이다. 철저하게 관제하는 여객기를 타면 이렇게 서로 양보하고 피할 일이 거의 없지만, 시계 비행을 하는 경비행기는 이런 식으로 상대 비행기와의 충돌을 피한다.



 

깜빡이나 브레이크 등은 비행기에는 없다.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아쉽다. 자동차의 사이드 미러도 좀 부럽다. 실없는 이야기는 그만 됐고, 무겁게 정치 이야기로 마무리 해 보겠다. 맞다. 좌익과 우익 이야기다.


정치 이데올로기로써 좌익과 우익의 어원은 18세기 프랑스혁명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의회에 앉은 자리의 위치 때문이라고 하던가, 뭐라던가? 좌파와 우파 정치에 언제부터 날개를 달아주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비행기의 항법 등 색깔 때문인지 좌우 날개가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잘 날아간다 하며 정치와 비유를 하는 것 같다. 비행기와 선박의 항법 등 색이 이념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도 없을 것 같다. 없다에 오백 원 건다), 미국에서는 좌익-우익보다 리버럴(Liberal)-컨서버티브(Conservative)란 단어가 더 익숙하다고 한다. 정치가들은 비유나 상징은 좀 그만하고 명확한 말과 메시지를 사용했으면 좋겠다. 조종사로서 뭐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밤늦게까지 힘들게 글을 써서 까칠해진 건 절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도 또한 말할수는 없는 입장은 단연코 아니라고, 이 연사 힘주어 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승무원은 귀신을 자주 본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