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장석남
동백의 일 by 장석남
아흔아홉개의 빛나는 잎으로는
아흔아홉의 눈 마주친 얼굴들을 비춰 감추어두네
또 아흔아홉의 그늘 쪽 검소한 잎에는
숨어서 볼 수밖에 없던 사람의 이목구비나 손의 맵시들을,
연중 몇번 겨우겨우
짧은 햇볕 만나 젖듯 새기어두네
숨죽여 수년을 묵혀두면 그 내력 가장 가파른 순서가 생겨
꽃으로 차례차례 올려놓으니 그 빛깔이
정갈한 숯불 같을 수밖에는 없는 일
뻑뻑이 겹친 꽃잎의 메아리여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고
속으로 치솟아가는 메아리여
일생 사랑의 법칙이 그러하려니
한쪽 귀는 반드시 닫고서
그 곁에 앉아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