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치유의 숲
치유의 숲.
이름만 들어도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처음에 그곳에 갔을 때는 어느 봄날이었다. 주말에 군산에서 어디 갈곳이 없나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이었다. 굽이굽이 국도를 타고 가다 어느 요양원 옆의 한적한 곳에 조용히 서 있는 치유의 숲.
숲의 시작은 대나무 숲이다. 서걱서걱 거리는 대나무가 바람에 쓸리는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걸으면 내 마음의 때와 모든 고민이 씻겨나가는 것 같다. 이 곳을 걸을 때면 왠지 목소리를 낮추게 된다. 나의 목소리를 낮춰야만 바람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대나무 산책로를 어느정도 걸어 올라가다보면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나도 모르게 와-하는 탄성이 날 정도로 마음이 뻥 뚫리는 호수가 나온다.
거울처럼 고요하고 맑은 작은 호수. 정지용 시인의 '호수'가 생각이 난다.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푹 가리지만
그리운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밖에."
나는 누가 그리워 이 곳에 왔을까. 이 아름다운 호수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나 찬찬히 마음을 둘러본다. 어쩌면 지금 생각나는 사람이 가장 그리운 사람이 아닐까? 호수 안은 물이 참 맑아 그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도 볼 수 있다. 사각거리는 바람소리, 내리쬐는 햇빛, 살랑살랑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니 물고기들이 부러워진다. "너희들 이렇게 좋은 곳 사니 참 복받았구나."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둘레길은 데크와 산책로로 이루어져 그 주위를 산책할 수 있다. 우리처럼 두 손을 꼭 잡고 천천히 산책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도 시간이 지난후에도 저런 모습으로 산책할 수 있을까 싶어 서로의 손을 더 꼭 잡아본다. 그렇게 산책길을 얼마나 돌다보면 치유센터가 나온다. 찾아보니 명상 프로그램, 숲 테라피 등을 진행하나보다. 나중에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해지면 참여해보고 싶다.
산책로 중간중간에는 풍욕을 할 수 있는 선베드들이 놓여있다. 남편과 나는 가만히 그곳에 누워본다.
오랜만에 야외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바람의 소리를 들어본다.
파도소리는 바다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숲의 골짜기를 따라 쓸고 오가는 바람의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내 마음에는 지금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바람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사라지는 소리.
햇빛이 나뭇잎에 부셔지며 밝히는 빛들.
나무가지들이 부대끼며 내는 사각사각 소리.
이 모든게 너무나도 축복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 자연 안에 지금 있다는 것, 나의 삶도 자연의 일부인 사실이 위로가 된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는 것처럼,
물고기들이 물의 흐름에 따라 헤엄치는 것처럼
태양계의 디자인에 따라 오늘도 해가 지고 또 뜨는 것처럼,
나의 인생도 자연의 주관자에게 맡긴다면 아무 문제 없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에 어디선지 모를 용기가 솟아난다.
숲길을 걷고 나오면 마음이 말갛게 씻긴것 같다.
목욕을 하고 나온 것처럼 얼굴색이 밝아지고, 마음 또한 가뿐하다. 또 한 주를 살아낼 힘이 생긴다.
그 숲에 가면 치유가 된다.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