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는 위아래로 새빨간 정장을 입고 있었다.
엄마는 부어오르는 오른쪽 뺨을 늘 '볼거리'라는 말로 넘겼고, 터질 듯 부르트는 입술도 단순한 '스트레스'쯤으로 여겼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치과에서 큰 병원을 가보라는 말을 들었고, 그곳에서 진단받은 병명이 '치주암'이었다.
아빠 말로는, 조직검사를 위해 살을 떼어낸 순간부터 엄마의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고 했다.
첫 병원은 복음병원. 차도가 없자 백병원으로 옮겼고, 그 뒤는 너무 빠르게 끝이 났다.
암 진단부터 사망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석 달.
열 살 아이에게 3개월이라는 시간은 방학 한 번이면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엄마는 영영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엄마. 잘 가."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내가 알던 엄마와 아주 달랐다.
머리카락 하나 없이 비어버린 두피와 없어진 눈썹. 그리고 퉁퉁 부은 얼굴. 제대로 감지도 못한 눈에서는 노란 물이 흘러내렸고, 산소 호스를 문 입은 치아 뿌리까지 손상돼서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았다.
엄마는 이미 죽어가는 몸이었지만, 병원에서는 끝까지 엄마를 붙잡으려 애썼다.
그러다 12월 16일. 유난히 춥던 겨울날, 엄마의 심장은 더이상 뛰지 않았다.
장례식은 조촐했다. 엄마의 친구들은 대부분 너무 멀리 살았고, 외가에서는 외삼촌 하나만이 찾아왔다.
"마지막으로 엄마 보러 가자."
몸보다 훨씬 큰 상복을 입은 나에게 손을 내민 사람은 큰고모였다. 고모는 나와 오빠를 '영안실'로 데려갔다.
어렴풋한 기억 속의 그곳은 무척이나 춥고, 기묘한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엄마...."
옆에 있던 오빠가 비죽거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오빠는 반듯하게 누운 엄마를 보고, 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나는.... 그저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기만 했다.
진짜 엄마인가?
우리 엄마가 이렇게 컸나?
장의사의 손길로 반듯하게 누운 엄마의 모습은, 나에게 마치 길쭉하게 늘려 만든 엄마의 모형처럼 낯설었다.
"은채야, 엄마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
큰고모가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나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그 손을 휙 뿌리쳤다.
허공에 튕겨진 내 손이 엄마의 잠시 엄마의 손을 스쳤다. 그 짧은 순간에 느껴진 것은 엄마의 보드라운 살결이 아니라 얼음장 같은 차가움과 딱딱함이었다.
우리 엄마가 아니야.
엄마가 나를 두고 갈 리가 없어.
그런 내 투정 섞인 모습에도 어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들의 눈에는 어미를 잃은 열 한살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화장터로 갔다. 모든 것이 끝나고, 할머니가 우리를 보살피게 되었다.
엄마의 49제를 열흘쯤 앞둔 어느 날이었다.
아빠가 '여자'를 데려왔다. 너무나 태연하게, 마치 이제부터 이 여자가 우리 엄마라도 된다는 듯이.
"안녕."
여자가 나를 향해 살포시 웃었다. 나는 엄마보다 훨씬 큰 '그 여자'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짧은 숏컷 머리에 동그랗고 포실한 얼굴, 짙은 쌍꺼풀과 조금 낮고 뭉툭한 코.
어느 하나 엄마와 닮은 구석이 없었다.
"네가 지은채구나?"
여자가 아는 체라도 할 것처럼 나에게 손을 건넸다. 나는 그 손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여자의 손등 위로 보이는 강렬한 붉은색이 너무나도 화려했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상을 치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집에 아주 새빨간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어찌나 붉었는지, 어릴 때 손에 베였던 핏방울이 떠오를 정도로 여자의 옷은 무척이나 강렬한 빨강이었다.
상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집에, 피 같은 붉은 정장을 입고 나타난 여자.
그리고 믿기지 않게도, 여자는 엄마의 49제 날에도 똑같은 붉은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49제를 끝내고 다시 영락 공원에 왔을 때, 그 여자는 이전과 똑같은 새빨간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그것도 목에는 커다랗고 하얀 진주 목걸이를 차고, 귀에는 화려한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단 체 말이다.
"니 진짜 미쳤나!"
여자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는 할머니의 호통이 들렸다. 사촌 언니는 행여나 내가 그 광경을 볼세라, 나를 데리고 근처 슈퍼로 갔다.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슈퍼에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여자는 사라지고 난 후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던 날, 큰고모가 나를 따로 불러 세웠다.
"은채야, 너네 엄마가 나한테 부탁하더라. 너네 남매만큼은 계모 손 밑에 크게 하지 말아 달라고. 지도 계모 밑에서 구박받으면서 커서 얼마나 힘든지 안다 카더라."
엄마가 계모밑에서 컸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계모라는 외할머니는 우리가 찾아가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니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말하래이."
큰고모가 내 어깨를 꽉 쥐었다.
"새엄마는 싫다고 해라. 알았나? 느그 엄마 불쌍하지도 않나!"
큰고모는 나에게 몇 번이나 확답을 받은 후에야 나를 놓아주었다.
내 나이 열한 살.
나는 아빠가 데려온 여자가 '싫다'라고 말해야만 하는 어른들의 요구를 떠안게 되었다.
엄마를 잃은 어린아이였음에도, 죽은 엄마의 마음을 대신 생각해야 했고, 남은 어른들의 상황을 이해하며 따라야 했다.
나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가 나를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시간 말이다. 하지만 아빠는 갑자기 새 여자를 데려왔고, 나는 그 새여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아빠와 언쟁을 벌여야 했다.
그 동안에, 나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우는 시간을 놓쳤다. 다시는 부를 수 없는 '엄마'라는 단어를 되뇌이며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릴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만큼 엄마와의 기억은 빠르게 흐려졌다. 열 한살의 나이면 엄마를 기억하고도 남을 나이였지만,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은 '엄마'라는 존재를 떠올리면 뿌연 안개가 낀 것 처럼 흐릿하다.
엄마와의 추억은 앨범에 있는 사진으로만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는 기억이 아니라 앨범의 사진을 기억하는 것 이었다.
이따금 엄마가 슬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내가 엄마를 잊어버려서, 더는 기억할 수 없어서 엄마가 서운해하면 어쩌지.
하지만 우리 엄마라면 이렇게 말해 줄 것 같다.
"네 탓이 아니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후로 울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너무 힘들면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된 순간부터 나는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또다시 급작스럽게 바뀌는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나 역시 기대하지 않았다.
울어도 달래줄 사람이 없는데, 울면 뭐 해, 이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있었으면 내가 달라졌을까?
부질없는 질문을 해보아도 모르겠다. 엄마가 있었더라면, 정말 내 인생이 달라질 수 있었을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엄마가 있었다면...내가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돌아가서 쉴 수 있는 집. 친구들 보면 다들 본가로 돌아가서 쉬다 오던데. 그게 그렇게 부럽더라. 사회에서 다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그런 집. 언제든지 돌아가면 온전한 '내'가 될 수 있는 집.
나도 그런 '집'이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