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태어난 어린 여름처럼 아직 서투른 것들을 다정하게 기다려주는 것
처음을 뜻하는 대표 한자에 初(초)가 있듯,
‘초’로 시작하는 말에는 어린 기운이 묻어난다.
초등학교, 초등학생, 초급, 초보, 초심...
심지어는 초콜릿, 초콜릿우유까지.
모두 하나같이 어리고 연한, 초여름의 초록을 닮았다.
나는 그 초록처럼 ‘시작하는 것들’을 유독 사랑했다.
유튜브에서 아기가 첫 발을 떼는 영상을 보면, 아무 연고도 없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결혼식이나 프러포즈, 새로운 도전을 알리는 영상도 마찬가지였다. 휴일에는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참 주책이다.)
직장에서도 그랬다.
익숙한 루틴보다 낯선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걸 좋아했다.
아직 업무에 서투른 신입 후배가 무언가를 물으면, 내가 아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해주고 싶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위해 퇴사하는 선배를 보면, 속으로 깊이 응원하게 되었다.
어쩐지 내게는 익숙하게 내딛는 걸음보다, 서툴지만 어색한 첫발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되는 마음이 있었다.
누군가의 시작을 응원하는 일은, 어린아이의 걸음마를 지켜보는 마음과 닮아 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에도 눈길이 가고, 그 어설픔마저 도와주고 싶은 여린 마음이 올라왔으니까.
그렇게 초심자에게 다정해지는 건,
초록을 좋아하는 내 마음처럼 나도 모르는 새에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어느 초여름, 이 계절과 마음을 따라 강원도 원주의 아동복지센터로 봉사를 갔다.
대학교 선배가 후원하는 단체의 프로그램이었고, 같이 가지 않겠냐는 선배의 제안을 덥석 수락한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그곳은 가정폭력과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상담·치료하는 곳이었다. 피해아동들이 놀이를 통해 마음을 풀고 사회성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날, 봉사자로는 나와 선배를 포함해 여섯 명이 모였다. 담당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차례차례 자기소개를 했는데, 나는 긴장했는지 굳이 묻지도 않은 사실을 대뜸 꺼냈다.
"오늘이 첫 아동봉사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봉사자를 안내하는 담당 선생님이 미소 지으며 내게 하나의 안내를 해주었다.
"아이들의 삶에 지나치게 깊이 관여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좋아요."
몇 주만 함께하는 봉사자가 아이와 친해진 뒤 “내일 또 올게”라고 약속하고 오지 않으면 아이들이 더 외로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 자립해야 할 아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내 마음을 주는 일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봉사는 순간의 마음이 아니라, 받는 이의 긴 시간을 헤아리는 배려가 필요했다.
선생님의 안내로 한 교실에 들어서자 스무 명이 채 안 되는 아이들이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봉사자 여섯 명은 책상 사이사이에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과, 지나치게 관여하지 말라는 조언이 엇갈리며 나는 잠시 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망설였다.
그러나 고민할 틈도 없이, 맞은편에 앉은 영서(가명)가 내 손을 덥석 붙잡았다.
영서는 금세 눈에 띄는 아이였다.
목소리도 크고, 손도 바빴다. 무언가 하고 싶은 게 많아 보였다.
프로그램의 순서에 따라 수업이 거실에서 강당으로, 또 식당으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내 손은 여전히 가장 시끄러운 아이, 영서의 차지였다.
거실에서는 선생님의 설명에 따라 퍼즐을 맞췄는데, 영서는 자신이 조립할 거라며 친구의 조각을 뺏어갔다. 큰 강당에 모여 다 함께 큰 천을 나눠 잡고 돌다가, 선생님의 구호에 맞추어 천 밑으로 일제히 숨는 프로그램에서도, 영서는 제일 먼저 숨겠다고 부산스러웠다.
나는 영서에게 이끌려 다니면서도, 봉사자에게 다가오지 못하는 다른 소심한 아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누군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만 비로소 잡을 수 있는 아이들이. 자기주장이 큰 영서는 원하는 것을 다 차지할 텐데, 다른 친구들은 어쩌나 하는 걱정이 스쳤다.
하지만 영서는 내 마음을 알 리 없었다. 모든 수업이 끝나자 손을 힘껏 흔들며 물었다.
“언니. 재밌는 거 더 없어?”
당황한 나는 머릿속에서 익숙한 게임 하나를 떠올렸다.
“~자로 시작하는 말 게임 알아?”
주변을 둘러보니 원주의 훤한 초록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릎을 굽히고 영서에게 물었다.
“초 초 초자로 시작하는 말~”
그러자 영서의 입에서는 初(초)로 시작하는 어려운 한자어 대신에 달콤한 단어들이 나온다.
“초콜릿! 초코우유! 초콜릿케이크!”
영서는 세상의 모든 초코 음식을 외칠 기세였다. 게임 규칙은 번갈아 말하다가 막히면 지는 건데, 영서는 생각나는 대로 내뱉기만 했다.
“초콜릿아이스크림! 음… 초코밥! 초코호빵!”
영서가 거의 모든 초코 음식을 말하고 잠시 고민에 빠질 즈음, 선생님이 다가와 내가 돌아갈 시간이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영서가 같이 더 놀자고 떼를 쓸까 걱정이 되었지만, 영서는 잠시만 기다려보라며 뜀박질을 하며 멀어졌다. 밝게 멀어지는 영서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영서만 계속 챙겨준 게 잘한 걸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때 선생님이 말을 건넸다.
영서는 아버지의 가정폭력 때문에 이곳에 잠시 맡겨진 아이라고 했다. 욕심이 많아 친구들이 잘 다가가지 않고, 물건을 빼앗는 일도 잦아 봉사자들조차 조심스럽게 대한다고 했다. 오랜만에 누군가 마음껏 놀아줘서 영서가 무척 기뻐했을 거라며 고맙다는 인사도 대신 전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타인의 ‘처음’을 섣불리 판단했음을 깨닫고 부끄러워졌다.
관계에 서툰 아이들을 응원한다고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했던 건 내 손을 끝내 놓지 않던 영서였다.
선생님과 인사를 마쳤지만 영서는 보이지 않았다. 복지센터 바깥에서 잠시 기다리자, 헐레벌떡 달려온 영서의 손에 석고로 만든 작은 이빨 하나가 들려 있었다.
“엊그제 이빨 빼고 만들었어. 석고로 만든 거야.”
“이거... 나 주는 거야?”
“응. 언니 거야.”
손 안에서 석고 이를 굴리자, 영서의 작은 어금니 모양이 또렷이 드러났다. 날카롭지만 귀여운 어린 이였다.
“고마워. 이건 ‘초니’다. 처음으로 난 이니까.”
내 말에 영서가 와하하 웃으며 “그것도 초로 시작하네!”라고 답했다.
“언니 잘 가. 이거 보면서 나 기억해야 해.”
영서는 나보다 작별 인사에 익숙해 보였다.
다음에도 오라는 말 대신에 기억하라는 말로 대신하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석고 이를 다시 건네며 말했다.
“그래, 언니가 영서를 꼭 기억할 수 있게 이름을 적어줄래?”
그렇게 석고 이의 바닥에는 ‘영서(가명)가 지은언니에게’라는 글씨가 휘갈겨졌다.
석고 이를 다시 건넨 영서는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선배와 복지센터를 떠나 걸어 내려오는 길에 문득 돌아보았으나, 영서는 벌써 점심을 먹으러 가버린 뒤였다.
영서가 사라진 자리를 보며, 나는 석고 이를 쥐여 준 영서의 마음을 상상해 본다.
시리고 아프게 빠진 첫 어금니를 석고로 남겨둔 것처럼, 영서는 낯선 언니에게 서투르게나마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픈 기억이 조금씩 아물며 한 뼘 더 자란 어린 마음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영서가 서 있던 곳을 상상하며 못다 한 작별 인사를 마음속으로 건넨다. 잘 있어. 영서야. 첫 네가 빠지고 새로운 이가 나는 것처럼, 영서가 아픈 관계를 지나 다시 새로이 웃을 수 있길 바랄게.
그럼 걱정하지 말라며 와하하 웃을 영서가 눈앞에 선하다.
그 아이의 석고 이는 여전히 내 서랍 맨 위에 자리하고 있다.
그날, 서투르게 서로의 친구가 되었던, 영서와 나의 마음을 멈추지 않고 여전히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을 품은 채 사회인이 된 나는 첫 월급과 함께 아동 후원을 시작했다. 매달 몇 만 원의 기부는 어느새 다섯 해 동안 이어지고 있다. 첫 회사를 퇴사하고 수입이 끊겨 큰 고정 지출을 정리해야 했던 시기에, 기부를 잠시 멈춰야지 마음먹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영서의 석고 어금니 하나가 그날의 마음을 꾹 붙잡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초여름의 봉사센터에서 그 아이의 석고 이를 받은 건,
타인의 처음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고, 모든 서툰 걸음을 품으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초여름, 내가 할 일은
막 태어난 어린 여름처럼 아직 서투른 것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저 다정히 기다려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