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저기 봐, 초여름이야!

이 아름다움을 빌려, 다른 시선을 가진 엄마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고

by 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로 초여름을 꼽는 이유는
아직은 움트고 있는 봄이나, 모든 것이 떨어진 겨울과 달리,
이제 막 태어나 새롭게 자라난 것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계절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단연 밖으로 나가야 한다.


초여름의 어린 자연을 즐겨야 한다는 나의 재촉에 못 이겨, 남자친구인 구와 함께 관악산을 올랐다. 관악산 초입은 넓은 공원과 호수가 조성되어 있어, 아이와 노인들도 산책하기에 좋았다. 산 초입에 이런 곳도 있구나. 놀라기도 잠시, 바삐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가파른 관악산 정상에 닿았다. 관악산 정상은 한눈에 서울시 남부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경관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정상에서 내려오지 못할 정도로 경치 구경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자 구와 함께 산에 오르며 감탄했던 자연의 모습을 엄마인 남 여사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허리 수술을 받아 격한 운동이 힘든 남 여사에게 관악산 등산 소식을 전하니 내심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관악산 초입은 평평한 공원이어서 걷기 좋다는 말로 여러 차례 강조하고 나서야 야외 활동에 두려움이 있는 남 여사를 끌고 나올 수 있었다.


망설인 것도 잠시 오랜만의 외출에 남 여사는 꽤 신이 난듯하다.

보통 이럴 때 남 여사가 제안하는 것은 ‘저기 봐’ 게임이다.


남 여사는 들뜬 목소리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궁금한 것을 발견하면 ‘저기 봐. 저 나무는 왜 하얄까?’ 하고 묻는다. 그럼 정답을 모르는 나는 ‘그냥 껍질이 벗겨진 거 아닐까?’라고 늘 모호한 문장으로 답한다. 또는 열매가 아직 맺히지 않아 구분이 어려운 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저기 봐. 저거 무슨 나무게?’ 묻는데, 내가 모르면 ‘저거 대추나무인데.‘ 하며 정답을 불쑥 내놓는다.


신이 난 남 여사는 결국 이 거리를 거니는 몇 백 명의 등산객들 사이에서도 길가에 조용히 웅크려 있는 두꺼비를 제일 먼저 발견하고 만다. 남 여사가 ‘저기 봐’하며 가리키는 곳에 시선이 닿은 나는 놀란 목소리로 ‘와- 두꺼비다!’라고 외쳤다. 자세히 보니 엄마 두꺼비가 새끼 두꺼비를 등에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새로워 잔뜩 신난 우리가 시끄럽게 떠들어대자, 주변을 거닐던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일제히 우리의 시선을 쳐다보며 호기심을 가졌다. 두꺼비 모녀는 웅크려 있다가도 느리게 한 발짝을 뗐는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경탄이 쏟아졌다.


결국, 군중이 모여들자 엄마는 내 귀에 대고 자랑하듯 속삭였다. ‘거봐.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도 내가 제일 먼저 찾았지?’ 그렇게 엄마는 대규모 인파의 ‘저기 봐’ 게임에서도 승자가 되었다.


두꺼비.jpeg 자세히 보면 보여요. 남 여사가 발견한 두꺼비 모녀가 사진 속에 있습니다


그 뒤로도 남 여사는 전날 내가 바삐 정상에 올라가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을 하나씩 짚어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관악산 공원의 호수에 돌아다니는 오리 가족부터 어쩐지 나무껍질이 벗겨져 흰색의 속살이 훤히 드러난 나무까지. 엄마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늘 내가 보지 못했던 무언가 있었다. 이렇게 큰걸 어떻게 나는 못 봤을까. 스스로 놀랄 정도로 큼지막한 발견들도 이따금 이어졌다.

참 신기하다. 같은 길을 거니는데도 이다지도 보이는 것이, 시선을 붙잡는 것들이 다르다니.


나는 놀람을 금치 못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말했다.

‘엄마 눈에는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잘 보여.’

그러자 시골에서 자란 남 여사가 ‘나는 평생 이런 것만 보고 자랐잖아.’라며 답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엄마는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태어나, 나무에 핀 가장 밝은 초록을 먼저 발견하거나, 길가에 조용히 웅크린 짙은 초록을 내게 알려주는 사람으로 자랐으니까.


어쩐지 엄마가 삶을 살아가며 갈고닦은 그 능력이 조금은 부럽다.



엄마가 초여름 내 자연을 읽어주는 것에 대한 보답으로, 나는 글로 자연을 전해주고 싶었다.

책장에서 이 계절을 잘 표현하는 문장들이 모인 책 하나를 골랐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엄마에게 내가 초여름을 좋아하는 마음을 문장으로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남 여사를 꼬드기는 일은 쉬웠고, 낭독의 장소로 가까운 공원 데이트를 제안했다. 돗자리를 펴고 누워 책을 꺼내자마자 남 여사에게 생전 처음 글을 읽어준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런. 순식간에 어색한 마음이 올라왔다. 용기를 끌어 모아 내가 책 읽어줄까 하고 물어보니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한 번 해보는 거야. 책을 펼친 나는 마치 라디오 DJ처럼 문장들을 또박또박 발음하는 일에 집중하며 읽어 내렸다. 혹시 남 여사가 지루해할까 걱정하는 마음에 문장의 강세를 조절하기도 했다. 읽어 내린 책에는 5,6월에 피는 잎이 하얀 꽃나무를 구분하는 법이나 앞마당에서 햇고사리를 뜯다가 문득 자연에 감탄하는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남 여사는 익숙한 시골의 일화가 들려오자 ‘그렇지.’ 하며 동조한다. 반응이 들려오자 그제야 안심하며 책을 내려놓았다.


꽃반지.jpeg 내가 낭독을 하는 동안, 남 여사는 손을 꼬물거리더니 어느새 꽃반지 하나를 만들었다.


서로 다른 언어지만, 초여름은 그렇게 우리 사이를 이어주었다.

초여름은 엄마와 내가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나누는 계절이다.

푹 익은 엄마의 짙은 초록과 아직은 어린 나의 밝은 초록이 교차하는 계절.


그렇게 우리 모녀는 그저 같이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대화가 많아지고 가까워진다.

그 시간 속에서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이 아름다움을 빌려, ‘다른 시선’을 가진 엄마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었던 것 같다고.


초여름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신기한 마음이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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