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녹색의 완두콩을 먹고 자라 연녹색을 가장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초여름부터 만날 수 있는 연녹색은 한자로 부드러울 연에, 콩 두, 빛 색을 쓴다.
즉, 초여름은 완두콩의 빛깔과 같이 연한 초록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성인이 되어 콩밥은 전혀 먹지 않게 된 나에게, 완두콩과의 유일한 추억은 어린 시절의 초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초여름, 엄마는 완두콩이 제철이라는 핑계로 어김없이 연녹색의 동그라미가 듬뿍 올려진 밥을 지었다.
나는 완두콩이 싫었다. 완두콩은 우물거리기만 해도 입안에서 저절로 으깨어졌다. 그 사이로는 달콤한 과즙 대신 퍽퍽한 알갱이들이 새어 나왔다. 겨우 꿀꺽 삼키고 나면, 질긴 껍질과 조각난 알갱이가 목구멍으로 다 넘어가지 못한 채 입안에서 맴돌았다.
식탁 위에 완두콩밥이 올려지면, 나는 흰 쌀 사이로 숨어있는 연녹색의 동그라미를 하나하나 찾기 위해 눈싸움을 해댔다. 내 매서운 눈초리에 모습을 들킨 완두콩들이 어김없이 밥그릇 가장 아래에 차곡차곡 숨겨졌다. 그렇게 나는 흰 쌀을 숟가락 위에 골라내며 밥을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완두콩을 한 입에 털어 넣어 꿀꺽 삼켰다. 먹기 싫은 알약을 억지로 모아 한입에 삼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어쩐지 어릴 적 내 식탁에는 유독 완두콩이 많았다.
어릴 때 가족과의 외식은 십에 여덟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가졌다. 내가 살던 지역에는 <하늘지기>라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가장 유명했는데, 입구에는 ‘돈가스가 맛있기로 유명한 바로 그 집’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가게였다. 메뉴 고민 없이 돈가스를 시키면, 큰 접시 위에 추억의 경양식 돈가스와 양배추 샐러드, 피클 등이 올려졌다. 그리고 마요네즈 소스에 버무린 완두콩이 동그랗게 모양을 만든 밥 한 스쿱 옆에 자리했다.
학교에서 소풍을 나가 도시락통을 열어보면 우리 엄마의 메뉴는 대부분 오므라이스였다. 가지런히 올려진 노란색 달걀 이불 위에 햄버거 가게에서 얻은 소포장 케첩을 뿌린 뒤, 도시락용 작은 숟가락으로 한 입을 퍼서 입안에 가득 넣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어김없이 완두콩 두 알이 튀어나오곤 했다.
아이들의 식탁에 완두콩을 올리는 건 어떤 마음일까?
완두콩이 없는 도시락이나 돈가스 접시는 어쩐지 초록이 없어 심심하다. 보기 좋은 빛깔처럼 건강하고 무럭무럭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일까. 아니면 먹기 싫어도 조금씩 곁들여 먹어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뜻일까. 어린 시절 맛본 완두콩은 분명 맛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완두콩을 버리지 않았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 접시 한쪽으로 밀어둔 채 마지막까지 미루다가 콕콕 포크로 찍어 먹었던 완두콩이 내 안에 들어왔다.
좋아하는 연녹색이 완두콩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완두콩을 억지로 삼키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완두콩을 먹지 않고 자랐다면 나는 초여름의 연녹색 대신에 다른 색을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을까? 나는 연녹색의 완두콩을 먹고 자라 연녹색을 가장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요 근래 식탁에서 완두콩을 본 게 언제였는지 가늠해 보지만, 잘 생각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이후로, 엄마가 싸준 오므라이스 도시락을 먹지도, 좋아하지 않는 완두콩 밥을 누군가 억지로 차려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을 먹으며 살다 보니 어릴 적 선호하지 않던 몇 가지 재료들을 먹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그 시절의 기억처럼, 오랜만에 퍽퍽한 완두콩 알갱이들을 다시 내 안에 담아보고 싶었다.
그다음 해 봄, 나는 완두콩을 심었다. 초여름의 싱그러움을 가득 안고 터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완두콩의 파종시기는 3월 중순부터 4월 초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엄마의 말을 들으면 완두콩은 겨울에 심어야 한다. 그럼 땅속에 묵혀 있다가 봄에 싹을 틔운다고.)
완두콩은 키우기 쉽다. 순 따기도 순 지르기도 하지 않고, 그냥 자유롭게 자라도록 두면 된다. 그저 심어 놓고 지주대와 지주 줄만 매어 주었는데 병도 발생하지 않고, 벌레도 꼬이지 않는다. 그렇게 파종으로부터 80~90일 후인 6월 중순이 되면, 완두콩을 수확할 수 있다. 납작하던 완두콩 꼬투리가 통통해지면서 여물어간다. 조심스럽게 만져보면 탱탱한 촉감이 손에 느껴진다. 꼭 어린아이의 맨 엉덩이처럼 귀엽고 동그랗다.
다 익은 완두콩을 깨끗하게 씻어 오랜만에 볶음밥을 만들었다. 완두콩은 쌀과 함께 지으면 노랗게 색이 변하기 때문에, 다 지어진 밥에 완두콩을 따로 섞어야 한다. 그럼 우리가 기억하는 연녹색의 완두콩을 무사히 만날 수 있다. 나는 볶음밥 재료를 사각으로 예쁘게 썰고, 흰쌀밥을 다 지은 뒤에야 완두콩을 볶음밥에 부었다. 작고 동그란 완두콩들이 밥과 채소들 사이로 들어가며 자리를 찾아갔다. 납작한 접시에 볶음밥을 옮겨 담아 식탁에 앉은 채 한입을 먹어본다. 아삭아삭한 당근과 파프리카가 함께 섞인 퍽퍽한 완두의 맛이 어쩐지 맨밥과 먹었을 때보다 조화가 좋다.
배불리 먹은 뒤에 볶음밥 그릇을 내려다보니, 어쩐지 편식하지 않았는데도 완두콩 두 알이 접시 한구석에 남아있다. 작고 동글동글한 완두콩들이 접시 안에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탓이다.
분명 어릴 적이라면 편식이 아니라, 완두콩이 도망친 것이라는 핑계로 먹지 않았을 것이다. 식탁을 일어서는 어린 내게, 깨끗이 그릇을 비워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들려오면 나는 또다시 알약처럼 꿀꺽 삼켰겠지.
어릴 적의 기억처럼 숟가락 위에 완두콩을 한데 모아 한 입에 삼켜보자, 어쩐지 고소하고 달큼한 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늘 도시락 구석에 떨어진 완두콩 두 알이. 내 입으로 잘 들어가지는 않아도 엄마는 내 밥그릇에 기어코 완두콩을 넣었다. 잘 먹지는 않아도 그렇게 바랐을 것이다.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거라.
그렇게 연녹색은 초여름을 머금고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