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염전씨 Nov 25. 2023

두 번째 서른

30대가 정말 기대돼. 진심이야!

이제 2주 뒤면 두 번째로 서른이 된다. 약 2년 전에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면서 쓴 글이 있지만 그동안 너무도 큰 사건들이 많이 발생해서, 새로운 한국 나이 / 국제 나이로 서른이 되면서 한 번 더 나의 20대를 정리하고 싶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서른 소회를 한 번 더 쓰기 씩이나 하겠느냐면.. 2022년. 첫 책 출간과 북토크, 강연, 기고로 한 해를 시작했다. 영원할 줄 알았던 S와 약 5년 반의 연애를 끝냈다. 인생의 20%를 같이 한 사람과의 이별이었다. 미국으로 이사를 왔다. 틴더를 아주 열심히 했다. 새 연인 D와 연애를 시작했다. 전에부터 친했던 H과장님과 인생 첫 동거를 시작했다. 처음으로 아마존의 6 Pager를 쓰고 이행해 봤다. 첫 리인벤트를 세션 디자인부터 실제 발표, 결과 follow up까지 모두 해보았다. 2023년을 살벌한 대량해고 소식으로 시작했다. 매니저와 주요 관련자들과 밑바닥까지 보여주며 싸웠다. 시니어로 승진했다. 건강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운동과 요리를 시작했다. 이것들을 꽤 오래 잘 유지하고 있다. 두 개의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오픈했다. 두 번째 리인벤트 발표를 준비했다. 미국 와서 사귀기 시작한 연인과 헤어졌다. 한 사람 인생에 이렇게 많은 일이 갑자기 줄지어서 일어날 수 있나 싶은 시간들이어서.. 한참 바라보다 이제야 꿀꺽 삼키고 소화를 시도한다.


나의 가치라는 것이 뭘까, 사회적 성공이라는 것을 위해 전력 질주하였지만 그것이 없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20대의 끝에 도달하면서 계속해서 묻게 되었다. 나를 앞으로 가게 하는 게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결핍, 거기서 나오는 인정욕구, 누구를 위한 것일지 모를 완벽주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들 덕분에 많은 것을 이루기도 했지만, 이렇게만 살 수는 없다는 것 역시 본능적으로 알았다. 성취 자체가 이제는 더 이상 기쁘지 않은 때가 찾아왔다. 그렇게 승진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사실 그다지 즐겁지 않았고 목표가 사라져 불안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 스스로가 천진하게 살면 좋겠어서 계속 물을 수밖에 없었다. 너는 일하는 사람이 아니면 어떤 사람이냐고. 이제는 정말 어떻게 생각해도 일적인 목표가 바닥나서 내 인생의 목표를 물어봐야 하는 시기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나에게 20대 동안 있었던 일

내가 나 자신의 이력서가 되어주는 일

20대의 나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능력을 갖고 싶었다. 불안해 눈물을 흘리면서도 늘 계속 달리고 있었다. "빨리 배우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것을 보여줄 증거가 없었다. 나의 능력은 뛰어난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쉬지 않고 가는 것에 있었다. 그렇게 약 9년을 가니 나에게는 track record 가 남아있었다. 솔직히 누구에게나 자랑스러울 만한 프로젝트가 있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는 여전히 조금 부끄럽다. 그렇지만 내가 지나온 길이 내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시간이 걸릴지언정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의 궤적은 남기며 왔다. 그저 과거의 나에게 고맙다고,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아서 정말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는 나의 가치

어떤 사람이 강하다는 건, 정확히 무슨 말일까? 3대 500을 치거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강하다는 것일까? 그 모두 강함의 단면들이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강함은 나의 기분과 태도를 타인이 결정하게 두지 않음에서 온다. 나의 20대는 그런 면에서 정말 약한 시기였다. 나는 나의 자아를 늘 회사와 회사 사람들에게 위탁하여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년을 지내면서 그래도 너 정말 이 부분은 마음에 드는 자식이야 라고 말해줄 수 있는 부분들이 생겼다.

나는 정직하다. 정확히는 뭔가를 잘 숨기지 못한다. 나의 이 점을 아주 오랫동안 싫어해왔다. 나도 여우 같이 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늘 어설프게 실패한다.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것이 얼마나 얕은 짓인지 잘 알고 있고, 그저 정직하는 것, 그저 진정으로 모든 것을 대하는 것만이 모든 어려움에 대한 열쇠임을 안다. 잘 다듬어서 나의 가치로 쓸 것이다.

나에게는 깨어지지 않는 낙관이 있다. 아빠는 나에게 안되면 되게 하라는 의지를 주었고 엄마는 나에게 그러다 쓰러지게 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낙관을 주었다. 나도 결혼한다고 하면 몇 억씩 턱턱 꺼내주는 부모가 있으면 좋겠다고 은밀히 상상하지만, 값을 매길 수 없는 유산을 이미 받아 살고 있음을 안다. 나는 내 인생이 언제나 더 좋아질 것이라고 순진할 만큼 믿는다. 부모님의 인생에서, 짧은 나의 인생에서 배우고 굳혀온 귀한 낙관이다.

아직 멈추지 않는 호기심과 모험심이 있다. 나는 늘 새로운 도전과 가보지 못한 곳 앞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늘 두렵기보다는 흥분감을 주체하기 어려워하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이 가진 것은 아님을 긴 시간에 걸쳐 배웠다.


나의 욕망을 승인하기

20대 동안 있었던 가장 큰 일은 내가 나 자신과 화해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나는 늘 서로 모순된 것들을 원했다. 사람들에게 더 이상 나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선을 긋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나만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나에게는 내 생과 나에게 주어질 행운을 떼어 덜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존재가 많이 있었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해 주는 나 자신이 너무 약하게 느껴져서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독립적이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혼자서 하루를 채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누군가에 의존하고 계속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멋없다고 말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한다. 나는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늘 남편감인 사람들만 골라서 나에게 헌신할 것을 요구한다. 나는 내 인생에서 원하는 것을 안다고 건방지게 말하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납 가능한 것일 때에만 받아들인다. 짧게 말하자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절절매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펀쿨섹 하지 못한 나 자신을 좀 봐주기로 했다.


30대에 원하는 것

나는 그저 유일하고 싶다.

남들이 좋다는 것은 참고만 하고 언제나 '나다운 선택'이란 뭘까 고민한 뒤 답할 것

전체적으로는 헐랭하지만 어느 구석에서는 서슬퍼런 독기와 날카로움이 있으면 좋겠다

나는 생각하면 해야만 한다. 계속해서 이렇게 살 것. 해결되지 않은 호기심을 가지고 영원히 산다는 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다.

배움을 멈추지 않고 나 자신의 앎에 대해 언제나 도전하고 의문을 던질 것. 내가 아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는 걸 알고 늘 배우는 자세를 갖고 싶다. 어리고 약한 사람들에게서 늘 배우고 싶다.

정직할 것. 자신의 실수를 기꺼이 인정하고 바로잡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

꾸준히 밀도 높은 글을 쓰면 좋겠다. 일상에서 만나는 생각 덩어리들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생각의 수렴, 정돈된 발산을 반복할 것

질문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늘 필요한 말만 할 것, 떠벌리기보다는 좋은 질문을 할 것, 진실되게 경청할 것, 어떤 현상에 대한 남의 의견을 비판 없이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것

솔직하고 앞뒤가 다르지 않은 나. 여전히 모든 사람에게 오픈북이었으면 좋겠다. 꼭 필요하지 않다면 소리 내어 먼저 말하지는 않지만 누가 묻는다면 잘 벼려진 의견을 말할 수 있을 것.

어떤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때 그것이 정말로 선한 의도를 가지고 하는 말인지 자동 필터할 것.

그 결과 결국 말을 하게 된다면 그 말을 반드시 지킬 것

일이 주는 보람, 성장, 기술을 더 나누는 데에 기여하는 일을 할 것

건강한 취미가 있을 것

근거 없이 찾아오는 힐난과 공격에 상관하지 않을 것. 진심으로.




20대는 10대의 상처 만을 안고 시작했다. 30대는 20대의 내가 빚어온 선물들과 함께 시작하니 얼마나 멋진 일이야? 20대의 문을 열며 읽은 책이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였다. 이제 그 문을 닫으며 이 아저씨의 다른 멋진 작품을 인용하고 싶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작가의 이전글 나 동양인 여자라 뽑은 거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