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 자가격리 전문 호텔 방에 앉아 강제로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 내 지난 20대를 돌이켜본다. 솔직히 내 나이의 앞 자리가 3이 된다는 것에 대해 전혀 아쉬움도 없고 감흥도 없다. 젊음이라든지 어쩌구 저쩌구 모든 미사여구를 덜어낸, 그저 내 지난 10년치 시간의 덩어리라고 생각해보면 그 10년은 조금 짠하고 못났고 등짝을 한 대 때려주고 싶다가도 그 등을 쓸어주며 같이 울고 싶은 그런 10년이었다. 나는 불안했고, 외로웠고,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고, 채워지지 않는 나의 공허함을 해결하지 못하고 많은 것들로부터 마음의 벽을 쌓아놓은채 살았다. 그렇지만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고 내게 주어진 모든 레이스를 전력으로 질주했고, 머쓱해질 게 두려워 티내고 싶지 않았지만 내 인생에 만난 많은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사랑했다. 지난 10년 동안 나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정신 똑바로 차려”였지만, 다시 그 순간들로 돌아간다면 “그렇게까지 애쓰지는 마”라고 말할 것이다.
전세 대출 처음 받을 때
아파도 힘내서 약국에 갔을 때
내가 나 스스로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방법을 알게 됐을 때
싫어하는 사람과 웃으면서 대화할 수 있게 됐을 때
좋아하면 몇 번이고 들여다본다. 예전에는 늘 새로운 것을 보고 싶었고 한 번 지나온 것을 돌아보는 일이 없었다. 사소하게는 한 번 본 영화를 이제는 마음에 들면 여러번 본다. 올해는 내 최애 넷플릭스 쇼 <그레이스&프랭키>를 4번 돌려봤다 (총 78개 에피소드). 올해 초에 사랑에 빠졌던 <런온>은 연달아서 3번 돌려봤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도저히 그 세계에서 나올 수가 없는 그 느낌, 그 세계에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고 싶은 그런 느낌이 나이가 들면서 훨씬 강해졌다. 어렸을 때보다 덜 산만해져서인가? 다른 한 편으로는 남을 상처주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됨을 알게 되었기 때문도 있는 것 같다. 그 안에서 내가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정말 많은 것들을 통제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그냥 그러려니, 계획대로 안 되면 그 안에서 방법을 찾겠거니, 한다.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데에 집중해서 하나 하나 해내가는 것이 언제나 정답이라는 것, 불필요하게 걱정하고 골머리 썩는 것은 그저 내 손해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J였는데 최근에 P가 됐다는 뭐 그런 말...
내 몸을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몸이 생겨온 역사를 느끼게 된다. 이게 아픈 거구나, 이게 부은 거구나를 알게 된다. 예전에는 의사를 만나러 가는 날은 정말 죽기 일보 직전의 날이었다. 치과 치료로 치면 뿌리가 너무 깊게 썩어서 양 옆의 치아까지 상해버리는 그런 수준. 사실 그보다도 곤혹스러웠던 것은 아픈 느낌을 물어볼 때이다. 시려요? 부은 것 같아요? 등등 나에게는 아프다는 것으로 퉁쳐지는 그런 것들의 분류를 나눠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근데 이제 알겠다. 충분히 아픈 경험이 쌓이니까, 아 이런 게 아린 거구나, 이런 게 부은 거구나 이런 식으로 좀 판단을 할 수 있게 됐다. 뭐 운동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내 양팔꿈치가 꺾이는 각도가 다르다는 것, 많이 걷고 나면 이상하게 엉덩이 윗부분이 뭉친다는 것 정도도 알게 됐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면 정치적 이념이 다른 사람들, 나와 일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 조금 너그러워진달까. 정외과 다니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당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 정책을 보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 정책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효과들을 이제 좀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XX한 사람들 절.대. 이해 안돼!! 였다면 절대까지는 아닌 정도...
남들의 성취를 남몰래 질투하는 게 아니라 축하해줄 수 있게 됐다. 그들이 거기에 쏟았을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이제는 이해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내가 나 스스로를 너무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일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내 주변 사람들이 실제로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게 되면서 그런 사람과 함께 있는 내 인생이 정말로 좋다고 느껴진다.
겁이 정말 많아졌다.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아. 소중한 연인, 소중한 친구들, 소중한 가족이 너무 많아졌다. 내가 그간 행복하게 살았다는 반증이겠지만,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인 것 같다. 내 선택과 성취의 연속 뒤에 따르는, 우리가 주로 ‘나이 먹음’의 고리타분함으로 얼버무려버렸던 슬픔인 거지..
혼자인 게 싫다. 왜인지는 정말 모르겠다. 예전에는 무슨 배짱이었는지 혼자서도 무서운 게 하나도 없었다. 이상하게 요새는 혼자인게 싫다.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아버려서 그런 것 같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이제는 라면을 먹거나 밀가루가 점철된 것을 먹으면 배에 가스가 차고 영 시원치가 않다.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다를 뿐,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사람들은 비슷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전히 남들이 좋다고 해서 하는 건 좋아본 적이 없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해본 호캉스, 취미, 운동, 인터넷에 유명한 맛집... 언제 어디서든 나만의 것을 찾는 데에 집중하는 게 답이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나에게 맞는 것을 탐색할 기회조차 없으니까 귀는 여전히 잘 열어두며 살아야지.
나는 3년차가 됐을 때 가능성이 아니라 내가 가진 실력으로 평가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가능성이라는 건 내가 나이가 먹어갈 수록, 연차가 쌓일 수록 빛이 바래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짧지 않은 시간 일을 해왔으니 이제는 뭔가가 쌓였어야 했다고도 생각했고. 이제는 그만큼의 시간이 더 쌓여 7년차. 아직도 나는 가능성으로 평가 받는다. 물론 이제는 내가 지나온 시간과 내가 해온 노력들이 내 얼굴 역할을 하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다. 그렇게 조급한 때의 마음을 잘 붙잡고 꾸준히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 이런 건 자연스레 채워진다. 몇 년이 어떻게 지나도 인간은 언제나 가능성이다. 내 이름 뒤에 붙는 가능성이라는 말에서 달아나려고 하지 말자. 이 말을 현명하게 쓰자.
나는 오랫동안 내가 개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이름표가 달릴 모든 일은 최고 등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필요하게 소음도 만들었고 불필요하게 싸우기도 했다. 아직도 사실 뭔가를 대충하는 법을 잘 모르겠다. 대충하며 살아본 적이 아직까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잔뜩 긴장하거나 힘 빼지 않고서는 뭔가 하는 법을 모른다. 일이든 관계든 뭐든. 그 이면에는 그저 사랑 받고 싶을 뿐인, 불안함에 떠는 내가 있다. 이걸 나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20대 초반에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너무도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줬던 것 같다.
하늘이 도운 덕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지난 10년을 돌아봤을 때 조각조각 찢어진 청춘 드라마 같은 장면들을 혼자 오래 들여다본다. 친구의 대학 축제에 굳이 찾아가서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갔던 일, 생일에 혼자 있고 싶다고 했으면서 아니라고 와서 축하해달라고 울면서 징징거렸던 몇 해의 생일들, 긴 일탈 같았던 연희동의 카페 알바 시절, 늘 친구들 클럽 가기 전에 혼자 집으로 돌아왔던 길들, 이상한 남자들과 했던 이상한 데이트들과 그 시절의 나와 늘 함께해주었던 언니들, 업무 시간에 땡땡이 치고 갔던 카페와 빵집들, 갑자기 표를 끊어 홀연히 제주도로 떠나 친구들과 야외에서 들었던 음악... 이 기억들이 나를 오래도록 살게 할 것 같다. 30대에도 멋진 일들을 미친듯이 해내고 멋진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야지.
어렸을 때 엄마랑 목욕탕을 자주 다녔다. 어떤 추운 날이었다. 내가 무슨 드라마를 봤던 것 같은데 혼자 사는 주인공이 너무 멋져보였다. 그래서 언제부터 혼자 살아도 되냐고 목욕탕 가는 길에 엄마에게 물었다. 그때 내가 한 10살 정도 됐던 것 같다. 엄마가 잠깐 생각해보더니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28살 정도가 되면 혼자 살아도 되겠다고 했다. 만으로도 28세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에누리 없이 엄마의 법에 따라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그렇게 살 것이다.
30대에는 더 오래, 더 멀리까지, 지속가능한 속도로 달리는 인간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