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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전씨 Feb 04. 2022

《IT 회사에 간 문과 여자》를 출간하며

책이 나옵니다. 그저 어떤 식으로든 토해내지 않으면 내가 통째로 소멸될 것 같아 쓰기 시작했던 글들이 책이 되었습니다. 원고를 꽤 긴 시간 동안 열심히 썼는데도 세상 밖에 나오니 마치 남의 책 같이 낯선 느낌이 듭니다. 책에 미처 담지 못한 소감을 담기 위해 글을 씁니다. 


책을 쓰기로 결정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편집자님 때문이었습니다. 출판사 모로의 대표이자 제 책의 편집자이신 은혜님과 저는 인스타 친구로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인스타 프로필에 브런치 링크를 걸어놨었는데 누군가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면서도 그걸 실제로 누군가 읽어주리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그런데 은혜님이 읽어보시고는 과분한 감상을 보내주셨습니다. 캡처해서 간직해두고 있었는데 다시 읽어봐도 실제로 만나서 그런 얘기를 들었다면 분명 울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후에도 너무 다정하게도 본인이 만드신 책도 보내주시고 만나자고도 해주셔서 연이 계속되었습니다. 은혜님이 출판사 대표로 독립하셨을 때에도 박수를 쳤습니다. 은혜님이 출간 제안을 하셨을 때에는 당연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은혜님이 그간 추천해주신 책들, 만드신 책들 모두 의연하고 담백하고 멋진 책들이었고, 무엇보다도 은혜님의 행보를 응원했기 때문입니다. 그 길에 제 글이 있을 수 있다면 정말 멋지겠다고 생각했고요. 다른 한 편으로는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이 많기도 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맹렬하게 일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더 많이 남기를 간절히 바라며 썼습니다. 답도 목적지도 없는 야망을 때려 부어 만들어가고 있는 이 커리어가 대체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됐건 저는 이것을 너무도 사랑하기 때문에, 혹여나 시작하지 않고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 더 용기를 내보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 어찌할 수 없는 착실함과 필요 이상으로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괴로우신 분들이 있다면 부디 멈추지 말고 계속 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덥석 하겠다고는 했는데 그 뒤로 겁이 났습니다. 저라는 인간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을 때 내게 돌아올 영향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여러가지 무서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첫째는 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인지 특정할 만한 내용도 꽤나 있는데 제 글로 누군가 상처 받게 되는 일이 가장 걱정되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제가 어떤 성취를 해왔는지에 관계 없이 그 어떤 것도 자랑스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최대한 누군가 다칠 만한 내용이 있지는 않은지도 열심히 살피고 돌아봤습니다. 둘째는 동료들에게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입만 살았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떳떳할 수 없다면 감히 종이를 쓸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쓰겠다고 한 뒤로 그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도록 더 죽도록 일했습니다. 셋째는 구시대적 마인드의 사람들이 혹여나 미래의 내 기회들을 앗아가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일터에서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대우를 바란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화살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면접 자리에서 “혹시 페미세요?”라고 묻는 사람이 현실에 어디선가 등장해서 제 앞길을 막지는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세번째 걱정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런 인간이 있는 곳이 제게 기회일리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또 다른 제 자신과 싸우며 차곡차곡 글을 쌓아나갔습니니다.


책을 쓰고 세상에 나오기 일보 직전인 이 순간, 저와 같이 걷고 있는 많은 다른 동료들 생각이 가장 많이 납니다. 저는 2000년대~2010년대의 가부장제가 남긴 자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일터의 또래 여자는 양손으로 셀 수 있는 정도의 자리, 공격수 역할을 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수비수 자리로 떠난 여자들만이 남은 자리, 여전히 공격수가 되고자 하는 여자의 뒤에 드세다는 말이 떠도는 자리였습니다. 그 세상에 막 입장한 저와 제 동기들은 다른 세상을 살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그렇게 7년 후, 이제는 저와 같은 선에서 출발했거나 조금 앞에 서 있던 언니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매 순간마다 본인의 일을 어떻게 지속할 것인지, 힘에 부쳐서 이 모든 것을 계속할 수 있을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왜 당연하지 않은지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며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다가 지워지기를 반복하다 결국 위로도 조언도 하지 못한 채 집에 돌아옵니다. 하고 싶었던 말을 다시 헤아려봅니다. 언니, 어디 가지 마, 세상이 언니 발목을 잡아도 멈추지 마, 계속 같이 가자, 이런 말들이 하고 싶었음을 그제야 깨닫습니다. 그들이 겪는 여러움을 저는 아직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감히 입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손을 꼭 붙잡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우리 앞 세대가 여자가 일하는 게 당연한 세상을 만들었듯이, 우리 다음 세대는 여자가 일과 가정을 택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해서, 사실 이 모든 것을 모두 제치고 스스로가 더 큰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역동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만두지 말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직 이 언니들이 어디 간 것도 아니지만 이러다가 내 앞의 많은 선배들처럼 사라지면 어쩌나 걱정하며 필요 이상으로 슬퍼졌습니다. 제가 쓴 글들의 상당 부분은 제 뒤에 오실 분들을 위해 쓰였지만 제 옆에 있어줬던 많은 여자들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책입니다. 이름을 모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언니들과, 같이 험한 말을 하며 매일을 싸우고 있는 친구들, 후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 책이 그들과 함께 지내온 시간의 기록, 나누었던 이야기의 변형으로 남아 앞으로 가게 하는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윤이형 작가의 <개인적 기억> 작가의 말을 좋아합니다. 상당히 다른 맥락이지만 책을 쓰면서부터와 지금의 제 마음이 내내 이랬어서 이 내용으로 소감을 마쳐봅니다.

이 이야기를 쓰는 동안 무력한 개인, 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떠올렸다. 스스로를 무력한 개인일 뿐이라고 여기는 사람들, 끊임없이 부조리한 일이 벌어지는 세계에 살면서 거대하고 절박한 윤리적 요구를 받고, 왜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계속 받지만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자기 삶의 무게만으로도 매 순간 충분히 위태롭게 휘청거리지만, 자신의 문제가 남들의 그것에 비하면 너무 흔하고 사소하며 ‘개인적’이라는 수치심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세계로부터 자꾸만 멀어지는 이유가 다름 아닌 부끄러움 때문이라는 건 슬픈 일이다. 그리고 자신과 세계 사이의 균형을 고민한다는 것은 결코 하찮거나 의미 없는 일이라 할 수 없다. 그들에게 굳이 이런 말들을 해주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쓴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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