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회사에 간 문과 여자》펀딩 이후 약 두 달 후기
"우리 실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
제 랜선 멘토 모니카님이 팀원들에게 이야기 했던 것이 아주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말을 들을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그 말이 지금 저를 대변하게 될 것이라고는....... 저는 저 스스로를 늘 관종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관심을 받으니까 도무지 어찌해야 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이 축하를 해주고 어떻게 읽었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300번 정도 고민하고 링크드인에 책 홍보를 올렸는데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폭발적인 호응을 받아서 정말 좌불안석 하고 있습니다. 3일째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조용히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내향형 인간인가봅니다. 사람들이 책을 쓴 게 대단하다고 해주지만, 저에게는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겸손 떠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저는 지금 굉장히 무섭습니다.
2월에 와디즈 크라우드 펀딩이 시작된지 한 달이 지났고, 3/18에 정식으로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온라인 서점에서도 구매를 할 수 있고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갈 수록 사실 훨씬 더 무서워집니다. 첫째로 가장 두려운 것은 제가 친구들에게나 진솔하게 말해왔던 가치관, 회사에서 느꼈던 부당한 일들, 저를 화나게 했던 사건들, 저를 상처줬던 말들을 여과 없이 아주 적나라하게 써놨다는 점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고 나를 다르게 보게 되면 어쩌지, 나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고 나쁘게 말하고 다니면 어쩌지, 온갖 걱정이 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기분 나빠하면 어쩌지, 하는 것입니다. 최대한 정제하고 개인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그래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말 큰 걱정이 됩니다. 마지막 하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말과 관심들에 자꾸만 마음이 두둥실 떠오르는 저 자신입니다. 계속해서 저를 다잡습니다. 실력은 없는데 수레가 요란해서 실체없는 두려움이 자꾸 몰려옵니다.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에 너무 취하지는마, 오만하지마, '작가'라고 생각하지마, 처음 글을 써야 했던 그 마음을 잊지마, 니가 무너져내릴 때 옆에 있어줬던 사람들을 절대 잊지마...... 이제 두 차례 남은 북토크만 잘 마무리 하고 다시 단조롭고 성실한 일상으로 돌아가야지, 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잘해준다고 어리광피우지마!! 다시 열심히 살아!!
북토크까지 와주신 분들, 링크드인에서 보고 연락 주신 분들, 개인적으로 감상을 보내주신 분들, 모두에게 말로 다 하기 어려운 감사를 전합니다. 모든 감상들이 마음에 많이 남았지만 특히 다른 분들과 나누고 싶은 분들의 이야기를 몇 가지 정리했습니다.
저와 가까운 친구들과 회사 입사 동기인 언니들이 책을 읽고서는 감상을 보내주었는데, 그걸 보고 말로 이루할 수 없는 찡함이 올라와서 카톡에 뭐라고 답해야 하나 생각하며 한참을 핸드폰을 바라봤습니다. 그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속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대견하기는 한데, 그리고 자신에게도 참 큰 힘이 되기는 하는데, 동시에 속상하고 짠하다고 하더군요. 뭐라고 해야 할 지 몰랐던 이유는 제가 그들을 보면서 똑같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저렇게 버티고 있지, 대단하다, 무너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라고 저도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그 말을 저에게 해주니 말문이 막혔던 것 같습니다. 정말 한 명 한 명 모두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때 나를 위로해주지 못한 것을 속상하다고 했던 많은 친구들&언니들아, 그때 나를 웃게 해준 것 자체가 나한테 필요했던 가장 큰 위로야. 우리 진짜 오래 가자, 각자가 원하는 모습 대로 성공하자, 좋은 인생을 살자..!
몇 번을 다시 보게 하고 생각하게 되는 후기가 있었습니다. 한 블로거님이 써주신 글이었는데, 옆 자리 차장님이 해주는 얘기 같았습니다. 울적해하는 저한테 "지원씨 커피나 마시러 가자"하고 나와서 제 손에 커피 한 잔 쥐어주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래도 그렇게 행동하지는 말았어야 했다고 등짝 한 대 살짝 때려주는 차장님. 그러면서 "근데 나도 참 많이 울었다"라면서 등짝을 때린 그 손 그대로 등을 쓸어주는 따뜻함에 괜히 울게 되는 그런 후기였습니다. 그 자체로도 너무나 감사했는데 댓글들을 보니 마음이 더 울렁울렁 했습니다. 그 서평을 써주신 분이 울었던 경험과 시간들 때문에 저자(나)는 다독이고 붙여준 것 아니겠냐는 댓글, 이제 은퇴를 바라보는 부장인데 이 책을 주문하는 것을 보니 그동안 자기도 많이 외로웠던 것 같다는 댓글...... 자신들 모두가 강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작은 일들에 미쳐버릴 것 같고, 그것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더 미칠 것 같다는 말,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게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자주 힘이 난다는 답글....... 제 앞에 서서 가고 있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 짐을 지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외로운지 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어서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힙니다. 제가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어떤 식으로든 보시게 된다면, 정말로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에 저 같이 뒤에서 가는 여자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조금 더 원하는 일을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음을 꼭, 꼭 알아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냥 정말로, 그들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니 부디 힘내어 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버텨주신 만큼 저도 잘하겠다고, 혹시 딸이 있으시다면 당신들의 딸이 사는 세상은 더더 좋은 곳이 되도록 저 역시 잘 버티고 서있겠다고, 제 모든 마음을 담아 감사하다고도 말하고 싶습니다. 단 한 점의 꾸며냄 없이 진심으로. (+언캐니밸리 당장 주문했고 앉은 자리에서 절반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네요ㅠ)
인상이 깊었던 다른 후기는 아빠 친구들의 것이었습니다. 아빠 친구가 하시는 오락실에 놀러가기도 하고, 미국에 교환학생 갔을 때는 아빠 친구들이 주변 구경을 시켜주시기도 하고 했었습니다. 연락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빠를 통해 서로가 어떻게 지내는지 근근히 아는 정도였습니다. 아빠가 가까운 친구들 몇 분에게 증정본을 보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락실 사장님이었던 아빠 친구의 감상문이 제게 도착했습니다. "문과생이 IT 회사에 가고 미국 본사로 이직하고 하는 특이한 얘기보다는 세상과 미래를 바라 보는 눈, 그리고 수많은 차별과 사회적 통념에 맞서 끊임 없는 자기계발을 무기로 용감하고 지혜롭게 싸워 나가는 자랑스러운 딸로 성장한 것에 찬사를 보낸다. 지원이처럼 회사에서 똑같은 일을 겪고 있을 내 딸들 생각에 울컥했다." 이 분 뿐만 아니라 많은 아저씨들이 분명히 예전에 오락실에 놀러왔을 때에는 밥을 잘 먹는 통통한 아이였는데 언제 이렇게 컸냐며, 언제 글을 이렇게 쓰게 되었냐며 놀라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일단 저는 책을 쓰면서 60대 남성을 단 한 번도 떠올리지 않으며 글을 썼기 때문에 그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상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제 책을 좋아할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회사를 다니며 싸워온 사람들은 주로 4050 남성들이었기 때문에 대충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들을 아버지들이 읽을 때에는 죽을 힘을 다해 사는 딸들의 모습을 볼 수도 있구나, 그들이 이해하고 사랑해줄 수 있는 이야기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크게 감동 받았습니다. 제가 여자이다보니 여성중심적인 관점으로만 어쩔 수 없이 얘기하게 됩니다만, 제가 무너질 때 손 잡아주신 많은 남자 어른들과 저와 함께 달려주는 남자 동료들 생각이 많이 납니다. 그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또 많은 연대와 사랑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해주신 단 한 사람, 사장님이자 편집자이신 제 이야기의 제 1독자인 은혜님. 앞으로도 많은 일들이 저와 은혜님에게, 특히 은혜님에게 더 많이 남아있겠지만 그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인생을 낭비하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제 인스타그램은 사실 은혜님을 만나게 해줬다는 미친 아웃풋을 내버렸고... 제가 닿을 수 없던 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과 글로써 닿을 수 있게 해줬습니다. 은혜님은 제 글 때문에 도망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과분한 말을 해주시지만, 저야말로 은혜님과 책을 준비하고 발간하고 세상에 알리면서 더 이상 숨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터에서는 늘 나의 존재를 소리치며 살고 있었지만, 모순되게도 제가 절대 있는 그대로의 모습 대로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라고 믿고 있었나봐요. 마치 저를 외양 만으로 평가했던 많은 사람들처럼, 제 자신을 절대 믿지 못해서 제 진짜 모습을 드러내야 할 때는 늘 숨어왔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숨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이렇게 출간 후기를 쓰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용기를 받았다고 하시는 분들을 뵐 때마다 벅차오르는 것은 그들이 제게 더 큰 용기를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은혜님이 없었다면 저 혼자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왠지 우리들의 인생이 모로 가고 있는 것 같더라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은혜님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서, 우리가 가진 아주 조금의 온기라도 나눌 수 있어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이제 공식적으로는 두 번의 북토크가 더 남았습니다. 가진 힘이 너무도 미약하지만, 아는 것이 너무도 없지만 가진 선에서 최대한 나누며 살겠습니다. 책은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고, 혹시 자주 가시는 서점과 도서관에 없다면 입고 신청을 해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혼신의 책 홍보)
예스24: https://bit.ly/3pSBEen
교보문고: https://bit.ly/35LudPk